전라남도 광양
장도(粧刀)의 시작은 언제 부터일까? 청동기 시대 도검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 크기가 작달막했기 때문에 단순히 짧은 칼로 치자면 칼의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성싶다. 경주 금령총에서 발견된 순금으로 된 남성용 짧은 칼에서 짧은 칼이 장식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삼국 시대에 이르리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고려사>에도 작은 칼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장도로 생각된다.
하지만 장도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 초기로 여겨진다. 성종 16년에 간행된 경국대전에서는 "도자공장刀子工匠은 장도 곧 손칼을 만드는 사람이며 환도장環刀匠은 군도軍刀를 만드는 사람이다." 라 하여 민간인들의 장도와 군인들의 환도를 구분하고 있다. 이는 장도에 대한 최초의 언급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언제부터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장도를 차고 다녔는지는 모르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장도를 차는 풍습이 아주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좌: 조선 시대 만들어진 대뿌리장도. 대나무 밑동에 별 손을 대지 않고 칼자루와 칼집을 만든 작품이다. 우: 목을자형 장도. 금속 장식 없이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장도이다.
언뜻 보면 그저 약간씩 모양이 다른 것으로만 보일지 모르나, 장도에 쓰이는 재료나 새겨진 문양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
* 위 내용은 박종군 선생의 설명 및 장도박물관 전시 자료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아래 장도들은 모두 박용기 옹의 작품들이다.
나전칠기 장도

목재의 칼자루와 칼집에 옻칠을 한 뒤 자개로 무늬를 놓은 장도이다. 자개의 주재료로는 빛이 영롱한 전복 껍질이 사용된다. 조선시대의 국왕들에게 진상된 장도가 이러한 형식이었다.

전통적으로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보석인 옥으로 만들어진 장도. 상류계층의 남녀가 사용했다고 한다.

구리90% + 금, 은을 합금하여 만든 것을 오동이라 하고, 이 금속에 사람의 소변을 3개월이상 또는 3년이상 삭힌 것에 담궈 검은색으로 착색을 시키는 방식을 오동상감 기법이라고 한다. 길이 24cm. 1998년작.

왼쪽에 있는 칼이 에나멜을 금속의 표면에 활용해서 열을 가해 만든 칠보장도이다. 은을 주로 사용한다.
죽장도와 목장도는 비싼 재료를 사용할 수 없던 평민들의 장도에 사용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사군자의 하나인 대나무는 절개를 상징한다. 칼자루에 인두로 문양을 새긴 것을 특별히 낙죽장도라고 한다.

죽절매화문낙죽장도. 사무실에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던 것이다. 대나무에 새겨진 절묘한 매화문이 보인다.

백동 죽절도. 1966년작.
평민들이 사용하던 장식없는 형태의 장도를 맞배기 형태라고 한다. 오동나무, 박달나무, 대추나무 등이 사용되는데 특히 벼락맞은 대추나무는 수분이 쪽 빠져 아주 훌륭한 재료로 알려져 있다. 대추나무는 귀신을 쫓는다고 하며, 장도에 쓰인 재료나 새겨진 문양에는 이렇게 각각의 의미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박달나무 은장 십이지문 갖은 맞배기도. 20.5cm. 1979년작. 칼 끝에 12지의 양이 새겨져 있다.

화류 은장 오동 맞배기도. 12cm 1974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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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음 멋지군요... 조선식 도는 별운검(국왕의 호위대가 사용하는도 도이지만... 왕의 호위기관 이름이 별운검 이기때문에 이 도에도 별운검 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과 환도,쌍수도 밖에 몰랐는데... 장도를 보니 정말 신선하군요.
그나저나 대단히 화려한 도들이 많이 보이네요 정말 예술품 수준... 그러고보니 조선이 못사는 나라는 절대 아니었나 봅니다. 선교사 들이 본 조선의 기록 일지에도 대단히 섬세한 기구를 만들어 사용 한다고들 하고 그리고 먹는것도 다른나라의 두세배를 먹는 이른바 대식가 들이었다고 하니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못먹고 사는 조선의 농촌은 일본에 의한것 때문일지도...; 게다가 조선시대 유물이라고 발견되는 휴대용 도시락 이나 술병,나전칠기 장신구 와 가구, 칠보 장신구 같은걸 보면 대단히 수준높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장도들도 조선의 문화수준을 보여 주는것 이겠습니다만.
문제는 전혀 유지 계승이 아니되고 있다는 거겠죠. 저 장도들을 한복에 달면 정말 간지 작살일 터인데 사람들이 한복조차 아니입으니 상황이 상당히 암울한 듯 합니다.
제 블로그에 퍼갑니다.
여담이지만, 제 처에게 결혼 전에 박용기선생님의 장도를 몇 자루 선물했었지요. 국내의 은장도 중에서는...그래도 그나마 박선생님의 장도가 제일 나은 편에 속함.
전 낙죽장도가 제일 마음에 들더군요. :D
제 블로그에 퍼갔던 님 글에 올라왔던 리플입니다.
'안녕하세요~
장도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장도박물관에 근무하는 연구원 강선경입니다.
오동장도는 오동나무로 만든것이 아니라, 구리90% + 금, 은 을 합금하여 만들어진것을 오동 이라고 합니다. 이 금속에 사람의 소변을 3개월이상 또는 3년이상 삵힌 것에 담궈 검은색으로 착색을 시키지요, 그것을 오동상감 기법이라고 한답니다. ^^ 앞으로두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오동에 관련된 부분 수정하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제 블로그의 글도 고쳤습니다. ===>
구리90% + 금, 은을 합금하여 만든 것을 오동이라 하고, 이 금속에 사람의 소변을 3개월이상 또는 3년이상 삭힌 것에 담궈 검은색으로 착색을 시키는 방식을 오동상감 기법이라고 한다. 길이 24cm. 1998년작.
어이쿠, 이거 큰 실수를 해버렸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수정 완료했습니다.
강선경씨한테도 편지 한 통 보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 --)
우현히 들러서 잘 보고 갑니다. 우리 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칼들이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