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고: 스포일러가... 별로 없습니다. (영화 내용을 누설하지 않을 정도 양심은 있어서 -_-)

1.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반 바티스타 혁명군에 의해 쿠바가 공산화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 앞마당에 있는 공산화된 쿠바가 목에 걸린 가시마냥 껄끄러울 터, 결국 카스트로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공산 정권을 뒤엎기로 결심한다. 쿠바에서 추방된 반 카스트로 인사들로 구성된 1400명의 반군을 쿠바로 보낸 것이다. 1961년 4월 17일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보기 좋게 대실패한다. 돼지만(Bay of Pigs)에 상륙한 반군들은 공산 정부를 전복시키기는 커녕 제대로 작전도 수행해 보지 못하고 대패, 1179명이 포로가 된 것이다.(이들은 1962년 5천만 달러어치의 의약품과 교환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군사작전의 최고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최악의 실패. 도대체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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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만에서 생포된 반군 포로들

어디선가 정보가 샜다. 정보를 누설한 KGB의 두더지는 누구일까? 영화 "굿세퍼드"는 그 두더지를 찾기 위해, 작전 계획 누설자를 찾으려는 고위 첩보원 에드워드 윌슨(멧 데이먼)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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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블루스 2004년 4월 20일자

이따금 처음 만난 상대와 도저히 말이 안 통할 때가 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고역도 이런 고역이 따로 없다. 어떻게 어떻게 같이 이야기할만한 화제를 꺼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려고 해도 반죽 안된 칼국수 면발마냥 끊기게 되고, 용케 이어졌다 싶어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화를 하게 되고, 괴롭긴 괴로운데 시간은 안 가고. 이런 건 생각이 다른 것하고는 전혀 다른 문제다. 생각이 다른 상대와는 화제라도 공유하지, 아예 공유할 것 없는 상대하고는 얘기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친해진다는 것은 뭔가 공유하고 있는 것을 찾는다는 의미도 된다. 일단 공유하는 게 있어야 이해가 되고, 친해지고, 서로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다. 고향은 어디세요? 고등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뭐 좋아하세요? 하나라도 공유하는 것을 찾으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Out of 안중이었던 생판 남남사이의 거리가 확 줄어든다.(라지만 정작 고어핀드 군은 외계인에 가까울 정도로 괴상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만한 게 거의 없다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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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고 대화해보실 분...?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별 웃기지도 않은 인간사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난 어렸을 때 아저씨들이 만나기만 하면 일단 고향부터 물어보는 이유가 궁금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같은 고향에서 나고 자라 도시로 상경했다는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성 세대들은 가정 형편에 따라 가지 각색인 우리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다 가난하고 다 먹을 게 없다보니 빈부 격차에 따른 사고 방식 차이가 도드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적어도 그 때는, 재개발 아파트 동 호수에 따라 사람 차별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대학생들이 진흙탕에서 레슬링하는 신고식을 치르고 비밀 조직에 가입하는 것이나, 소수 특권층들이 그들만의 섬에 모여서 파티를 여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들만의 특별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친밀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친밀감을 바탕으로 그들은 더욱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더 친해지고, 더 많은 이권과 권력을 획득할 것이다.

3.

"우리(이탈리아 계)에겐 가족이 있고, 히스패닉에게는 교회가 있고, 흑인에겐 음악이 있지. 당신네 미국인에게는 뭐가 있소?"

반(反) 쿠바 공작을 위해 협력을 요구하는 에드워드에게 이탈리안 마피아가 던지는 말이다. 한 마디 짧은 대사지만, 의미심장하다. 에드워드의 일생은 남들과 공유할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별 대단치 않은 이유로 첩보원이 되고, CIA 고위직이 된 그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신뢰를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들은 자신과 많은 것 - 학력, 경험, 혈연 - 을 공유하고 있고, 그만큼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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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그의 사생활은 엉망이다. 자신을 아껴 주던 스승과도 헤어지고, 함께 일하던 친구는 위험한 일 하다가 죽고, 그 친구의 여동생과 결혼했건만 신혼 때 해외로 파견된 덕분에 생판 남남이다. 그 뒤로도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고, 속고 속이는 첩보 놀음에만 열중해 있으니 유령하고 사는 것 같다는 푸념이 나올 법도 하다. 하나뿐인 아들도 마찬가지. 부자지간에 경험을 공유할 게 없다보니 아들 입장에서는 이 인간이 아버지인지 생판 남인지 알 길이 없다.

엉뚱하게도 에드워드와 가장 많은 것을 공유하고, 서로간에 믿고 있는 사람은 지구 반대편의 KGB 총수다. 전세계를 배경으로 서로를 엿먹였지만 그래도 그 둘은 서로 비슷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이고, 이 화상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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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의 거대한 수수께끼"로 불리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 KGB 총수 암호명으로 딱이다.

어쨌든 왕년의 문학청년 에드워드는 이렇게 망가져갔다. 믿어야 할 상대를 못 믿고 믿지 말아야 할 상대를 믿고 사는 기막힌 상황. 거대한 수수께끼 인생을 사는 CIA의 무표정한 부속품. 영화 막바지, 소련 망명객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은 에드워드는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아버지가 남긴 유서를 태운다. 소속 집단에게서 신뢰를 얻으라던 아버지. 그 말을 좇던 에드워드는 결국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질 못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영화의 제목인 굳 셰퍼드(the Good Shepherd)는 선한 목자라는 의미도 있고, 좋은 사냥개라는 의미도 있다. 과연 에드워드는 CIA의 선한 목자인 걸까, 아니면 그저 좋은 사냥개일까?
어쩌면, 둘 다?

* 러닝타임도 좀 긴 데다가 등장하는 조연들도 많아서 한 번 보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일종의 머리싸움이 주가 되는 영화여서 그런지 지루하다는 평도 나오네요. 나중에 DVD 나오면 한번 더 보면서 퍼즐 조각을 맞춰봐야겠습니다.

Extended Link

싸이코 짱가의 쪽방 : 집단사고 - 피그만 침공과 탄핵 결의의 공통점
: 미국의 돼지만 침공 실패를 심리학 전문가의 관점에서 설명한 글
싸이코 짱가의 쪽방 : 에일리언 - 별개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 역시 짱가님의 글. 비교적 최근에 쓴 글로 요런 글도 있다. 참고로 짱가님은 무비위크 고정 칼럼니스트이시기도 하다.
a quarantine station : 굿 셰퍼드 감상
: 국제정세에 관심을 가진 이의 눈으로 본 굿 셰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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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sipahi 2007/05/03 02:26

    그래서, 어릴적 친구는 평생친구지만 직장 동료는 평생가봐야 술친구라든가, 결혼은 결국 끼리끼리 하게 된다든가, 부부는 일심동체라든가... 이런 말들이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연예인들이 허구한날 평범한 사람이 좋다고 해대지만, 결국은 평범해봐야 PD나 동료 연예인인게 다 이해가 갑니다...만, 이거 참 알면서도 몹시 비통하지 않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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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7/05/04 10:11

      결혼은 결국 끼리끼리하게 된다... 정말 동감합니다. 결국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사람과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아무리 좋다고 해봐야 몸에 착 감기는 비단옷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지 않으면 좋은 것도 하루이틀이죠.

  2. 미친고양이 2007/05/04 13:25

    왝왝 결혼이야기 급반대..
    남자들끼리끼리만 자연스러운 나같은 놈은 어쩌라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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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새 2007/05/24 17:49

    오늘 이 영화 보고 나서.
    이 영화가 흥행을 하기는 했나 싶던데.

    뭔가 흥미로운 첩보영화 같기는 한데, 너무 길고 시각이 왔다갔다 해서 역사적 배경이 전혀 없는 나같은 사람한테는 정말 버거운 영화더라고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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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7/05/25 00:40

      역사적 배경은 둘째치고, 그 영화는 등장인물도 꽤 많고 이야기도 이리저리 꼬아 놔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아마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번은 봐야 할 거야. 그런데 두 시간 반에 이르는 긴 영화를 누가 두 번이나 보겠나 -_-;

  4. Manglobe 2009/04/07 08:03

    영화 제목이 good shepherd가 된 계기로는 주인공을 모델로 했던 실존인물의 middle name 이 jesus 라서였다는 말도 있는데 확인부탁드립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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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4/07 15:33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실존인물의 풀 네임은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면 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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