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연의의 후반 주인공이 제갈량이다보니 그가 선주 유비의 유지를 이어 위나라를 친다며 후주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는 예로부터 "이 글을 읽고 울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충신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출사표가 유명한 만큼 제갈량이 북벌을 행한 이유도 선주와의 의리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약간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두 개의 촉나라
중국 역사에서 파촉巴蜀 - 현재의 쓰촨 성四川省은 꽤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쓰촨 성이 지금은 중국 땅이지만, 전국시대 진(秦)나라 혜문왕이 촉을 침공하여 병합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원의 사람들에게 파촉은 머나먼 이국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촉 땅으로 들어가기가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다.(蜀道之難 難於上靑天)"(주: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 시 촉도난蜀道難의 한 구절.) 고 할 정도로 외진 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촉 땅은 건국 신화도 따로 있고 언어도, 풍속도 중원과는 크게 다르다.
이렇게 독특한 지역이 파촉 땅인데, 정작 촉한의 지배 계급은 요상하기 짝이 없었다. <삼국지> 촉전을 보면 촉한의 주요 인사 중에 정작 파촉 토박이가 별로 없다. 상당수가 형주 사람이고, 그것도 주요 요직은 죄다 차지하고 있다. 재상 제갈량 뿐만 아니라 북벌의 물자 조달을 책임진 양의나 선봉장 위연 역시 형주 사람이다. 제갈량의 뒤를 이은 장완과 비위도 형주 사람이다. 오호대장군에 파촉 사람은 하나도 없고, 미축·간옹·요화·진도 등 유비 휘하의 고참들은 당연히 외지 사람들이다.
이렇게 된 건, 당연히 형주에 자리잡고 있던 유비가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익주益州(=파촉)가 유비의 영토가 된 내역부터가 점잖치 못했다. 애시당초 이 땅은 한 황실의 종친인 유장의 땅이었다. 유장은 아버지 유언에게서 익주를 물려받았는데, 유언은 익주목사로 임명되어 익주에 오자마자 왕함·이권 등의 유력 호족들을 때려잡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 사람이다 - 대대로 익주에 자리잡고 살던 토박이 호족들이 원한을 품었으리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고, 실제로 유장의 때에는 조위라는 호족이 반란을 일으켜 이를 겨우 진압하기도 했었다. 법정, 장송 등을 비롯한 익주 토박이들이 유장을 밀어내고 유비를 끌어들인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덧붙임 - 조위의 반란에 대하여
그런데 이렇게 되면, 촉나라의 왕권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대도 필요하지만, 그 군대를 먹여살릴 농토나 피지배민들의 동의도 필요하다. 형주에서 들어온 유비 세력에게 군대는 있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가지기 힘들다. 그들은 엄연히 "외지에서 온 뜨내기" 이기 때문이다. 군대를 먹여살릴 농토와 지배 체제에 대한 피지배민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익주의 토박이 호족들인데, 이들의 협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한정된 농토를 나눠 가진다는 얘기는 곧 자신들의 몫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유비가 형주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을 때는 익주 호족들 따위야 윽박지르면 그만이지만, 관우의 전사와 이릉 전투의 패배로 형주 땅은 오나라의 손으로 넘어갔다. 지방의 호족과 중앙 권력의 갈등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만, 촉나라의 경우는 이렇게 그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정치적 묘수

유비가 죽은 후, 촉한의 정국은 상당히 불안하고 어수선했을 것이다. 익주의 호족들이 자기 손으로 끌어들인 유비 말이야 잘 듣겠지만, 아직 어린 황제 유선(207년 태어나 223년 즉위했으므로 만 16세인 셈이다.)의 말을 잘 들을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왕에 대한 충성심이 국가 성립의 기반인 고대 사회에서 왕권이 약화는 곧 국가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안 그래도 왕권이 흔들 흔들한 나라인데.
이런 상황에서 재상 제갈량이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수는, 외부와의 전쟁으로 국가적인 의지를 한데 모으는 것이다. 외부 세력과의 대결은 재산과 인력을 합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동서고금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주 애용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수법의 대표적인 예로는 북한의 남침 위협을 과대 선전하여 유신 헌법을 통과시키고 국민의 참정권을 빼앗은 박정희나,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박헌영 등의 좌익 독립운동가들을 미국의 간첩으로 몰아 처단하고 독재 권력을 수립한 김일성 등이 있다. 무엇보다 제갈량의 경우는 전쟁의 명분이 전통적 유교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로 숭상받는 군주(선주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다. 당연히 백성들을 정권의 정당성을 설파하기에 좋고,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제갈량은 기산을 거쳐 여섯 번 북벌을 행하여 육출기산이라는 말이 남아 있다.
물론 나는 삼국 시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내 생각에 딱히 학문적인 근거사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많은 역사가들이 제갈량을 훌륭한 정치가로서 기록한다는 점이, 과연 그가 겨우 의리 따위로 대국과의 전쟁을 결심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의심을 품게 만드는 것만은 사실이다.




2008/01/03 11:29
역사상 명분 없는 전쟁이 있었습니까. 하다못해 부시 또라이도 명분이란 걸 만들어 침공을 하니까요.
2008/01/03 13:14
2008/01/03 11:34
내부의 끊임없는 잡음을 없에는 것에 방법 중 가장 빠르고 쉬운 것은 악당을 만드는 방법인가 봅니다. 민주적인 방법은 시간도 걸리고, 이해관계가 충족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한가봐요. -_-;
잘 읽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네요. ^_^ 저는 언재쯤 고어군님처럼 글을 잘 쓸지....ㅠ.ㅠ
2008/01/03 13:15
2008/01/03 12:45
2008/01/03 13:16
2008/01/03 21:29
2008/01/04 12:01
2008/01/04 15:01
따지고보면 제갈량의 입장에서도 답이 없었던듯...중원으로 진출할 유일한 수단인 형주를 잃고 빙 돌아 기산만 쳐대야 했으니...-_-)
2008/01/04 22:45
2008/01/05 00:02
7년동안 6번의 북벌을 행했으니 거의 매년 북벌을 일으켰다는 소리가 되죠.
유비는 몰라도 제갈량은 중원진출에 상당히 의욕적이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후계자로 정치가가 아니라 무인인 강유를 선택한것도 그렇고요.
뭐 삼국시대는 동양사의 로망(?)이라 할수 있으니 왠지 심금을 울리는 해석을 하고싶어지지 않습니까[....]
2008/01/05 00:15
2008/01/05 01:16
본래 제갈량은 장완과 비의에게 내정을 밑기고 강유에게 군권을 맡기려는 의도였다는게 보편적인 시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촉한의 멸망은 강유의 실책이라기 보다는 장완과 비의가 죽은 상태에서 북벌론자인 강유를 견제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본직적으로 무인인 강유가 장완이나 비의처럼 뛰어난 정치수완을 지닌것도 아니고 그런것을 요구하는것 자체가 강유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2008/01/08 23:34
마지막으로 강유에 대해서는, 정치수완이 문제가 아니라 위나라와의 대결에서 벌인 행태를 지적한 것입니다. 강유는 중앙 정치 무대에 별다른 기반이 없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위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한 뒤 군대를 이끌고 자신과 친했던 강족의 땅에 가까운 곳에 가서 주둔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수도방위 사령관이 강릉 가서 주둔하고 있는 격인데, 이 틈을 탄 위나라의 공격으로 촉나라는 순식간에 망하고 맙니다. 이 과정이 전체 6개월 정도 걸렸으니까 당시 교통 사정으로 치면 2차 대전 때 독일이 폴란드 집어먹는 수준입니다.
한 나라의 군권을 맡아 놓고서 그런 무책임한 짓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08/01/04 19:28
.... 그냥 한번 해보고싶었습니다.
2008/01/04 22:45
* 정작 유선이 못난 왕이었다는 근거는 아무 데도 없다고 합니다.
2008/01/05 00:23
백만도 안되는 파촉 사람들 중에서 병사가 십만이었고 그 십만이 기산으로 떠난 병력이었다는 건 정말이지....
2008/01/05 00:39
2008/01/06 02:46
2008/01/08 23:35
제가 하려던 얘기가 바로 그거였어요 ;ㅁ; 어딜 가나 정치적인 술수는 비슷하더군요.
2008/01/06 06:59
100만 인구에서 10만 징병했다는 위의 댓글을 보면 딱히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거같습니다.
(만일 중국인구가 그정도 줄었다면. 흑사병급의 시대였다고 봐야할까요.)
2008/01/08 23:36
전란의 세월이 얼마나 비참했던지 저런 시대에는 인육도 대놓고 거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2008/01/09 09:47
2008/01/09 14:01
2008/02/02 14:29
말씀하신 촉의 건국신화(창세신화?)가 어느 자료에 나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가 가진 7권짜리 정사 삼국지(오역으로 악명높은 그 책 -_-;;)에는 요화가 나와 있지 않은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요?
참신한 해석은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2008/02/03 12:07
그리고 촉의 건국신화에 대해서는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신화>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권까지 나왔는데, 촉나라의 건국신화 이야기는 1권 끄트머리("통방울눈의 누에치기가 세운 나라")에 있습니다. 전문가가 쓴 책인 만큼 안심하고 읽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2008/05/07 06:23
2008/05/07 07:00
또한 김대중정부의 압록강과 잃어버린 만주를 찾는다는 취지로 남한의 젊은이들에게 크게 호응을 얻었는데요.남북통일도 못했는데 그리고 북의 일부는 이미 중국에 넘어갔고 지금도 북이 중국영향권에 있는데요.본인이 생각하시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우리가 해야하는 전략적인면이 무엇인지 알고 싶군요.
2008/05/07 14:02
2. 제가 전쟁의 전략을 보는 관점은 엄연히 서양 전쟁사쪽에 가깝습니다. 삼국지나 사기열전 류의 기공은 아니구요.
3. "김대중정부의 압록강과 잃어버린 만주를 찾는다는 취지" 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듣는데요?
2008/05/08 04:39
첫째로 촉나라가 위나라를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
둘째로 북벌의 명분이 이천년이 지난 사람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라는 것.
셋째로 외부와의 전쟁으로 국가적인 의지를 한데 모으는 것이다. 외부 세력과의 대결은 재산과 인력을 합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동서고금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주 애용하는 방법이다.
그와 비슷한 남한의 예를 이렇게 드셨습니다.
북한의 남침 위협을 과대 선전하여 유신 헌법을 통과시키고 국민의 참정권을 빼앗은 박정희나,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박헌영 등의 좌익 독립운동가들을 미국의 간첩으로 몰아 처단하고 독재 권력을 수립한 김일성 등이 있다
여기에 첨가할 하나가 더 있습니다.
김대중씨의 햇볕정책
남이 북을 돕지 않으면 자동붕괴되어서 한반도에 엄청난 경제,정치적 혼란이 온다 선동하면서 수천억원을 북에 주는 조건으로 김정일이 김대중씨를 잠깐 접선(몇시간 안만났으니)하고 마치 한반도에 평화가 온냥 세계인을 다 속이면서(노벨평화상) 압록강과 만주를 찾자고 남한의 젊은이를 선동한 김대중씨 역시 제갈량의 사기극인 출사표와 비슷하지 않나요??
즉 우리 선조들께서 독립운동을 하던 잃어버린 만주를 되찾자하는 의미는 소름끼치도록 신나고 매력적인 일이어디있겠습니까.
헌데 북은 아무생각도 없이 땅도 중국에 팔아먹는데,북을 건너뛰어서 만주를 어찌 찾을까요?
그것이 바로 김대중씨의 햇볕정책은 북에 동조하기 위한 명분이였습니다.
저 소견은 제갈량의 출사표=사기극 이라 말하고 싶습니다.원래 중국인의 습성은 대국이라는 빌미로 과장하고 심하게 부풀리며 허풍떠는 민족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하나 부탁드릴것은 "왜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졌을까? 라는 제목으로 님의 글을 번호를 정해 정리해서 다른분들께 알리려 합니다.물론 협조해주시면 좋구요,퍼갈때 물론 출처를 알리고 떠나겠습니다.
2008/10/28 23:19
2008/10/29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