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간다는 것에 대하여

CRITIQUE by 고어핀드 2008/01/24 02:19
1.

그 아이는 진짜 "엄마 친구 딸" 이었다. 사실은 사실이었다. 키 크고 예쁜 게 공부까지 잘했다. 목소리가 예뻐서 합창부의 슈퍼스타이기도 했다. 다정다감한 성격에 사교성도 좋은 만큼 사람들이 잘 따라서, 4학년 때 전학을 와서 졸업할 때까지 반장을 도맡아서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걔네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하고 좀 많이 친했다.(-_-) 덕분에 어휘 능력이 현저히 향상된 지금까지도 다른 적당한 수식어를 찾을 길이 없다.

남자애들이 너도나도 관심을 가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해마다 화이트 데이에는 책상에 사탕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누군가가 그 아이와 조금만 가깝게 지내고, 함께 노는 모습이 발견되면 자그마한 질시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아, 단 한 놈 예외가 있긴 했다. 공부는 좀 하는데 방구석에서 폐인처럼 영걸전에 열중하던(-_-) 그놈. 그 놈은 어찌 된 놈인지 "아이돌" 께서 같은 학원 남자 아이들에게 돌린 초콜릿도 필요 없다며 안 받았다. 다음 날 아이돌은 빨갛게 퉁퉁 분 눈으로 학교에 나타났고, 방구석 폐인은 한동안 화살처럼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고슴도치가 되어 돌아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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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미지일 뿐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방구석 폐인은 아이돌을 만날 일이 없었다. 각각 남중, 여중에 진학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들이 워낙 친했기 때문에, 서로의 소식을 간간이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람 어울리는 걸 좋아하던 아이돌이 소위 "날라리" 들과 어울려 지낸다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것. 기타 등등.

그러다 폐인이 아이돌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였다. 아이돌이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왔고,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다. 대학생이 된 폐인은 아이돌이 뭔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매력적으로 반짝거리던, 총기가 넘치던 눈이 없어졌다. 이유는 알 길이 없었다. 뭔가 분위기도 달라졌다. 아니,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고 하는 게 사실일런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만 해도 아이돌은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어른스러워서 주위 어른들도 다 대견스럽게 여겼고, 폐인도 동갑내기 아이돌을 누나 보듯이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런 게 없었다.

2.

한동안 잊고 지내던 옛 이야기가 생각나게 된 건, 두세 달 전의 일이다. 아는 형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벤처기업 사장님의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사업이 크게 성공하자 두 아이를 낳아 키우던 아내에게 수백억을 주고 이혼하여 화제가 되었던 그 사장님. 그 사장님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았다는 소문이었다.(정체불명의 괴소문, 사실 관계 따위야 모름 -_-)

쑥덕공론의 주인공들이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유명인사들인지라 멍하게 듣고만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내가 한 마디 했다. "옛 말에 '부유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귀해지면 처를 바꾼다.' 라고 하더군요."1 그 형도 수긍했다. "맞는 말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어린 것들이 하기엔 괘씸한 소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고 또 어울린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생각이나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사람이란 결국 끼리끼리 노는 법이니까. 하지만 사람이 바뀌면, 관심사도 바뀐다. 관심사가 바뀌었는데 친분만 그대로 있기는 불가능하다. 아까 그 사장님도 사업 성공하고 돈 벌고 나니 애 키우고 집안 살림 잘하는 여자보다 함께 비즈니스를 논할 수 있는 여자가 더 좋았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 인연, 그거 좋다. 하지만 일평생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도토리들이 평생 모여 봤자 도토리 키재기밖에 안된다. 그러고 싶은가? 발달심리학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사람은 환경에 맞춰서 변해야 하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변하지 않겠다는 건 모두 함께 발전을 거부하고 정체되어 있자는 얘기하고 다를 바가 없다. 주위 사람들이 그러길 바라나?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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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저주를 하는 게 좀 더 솔직할지도...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곁의 사람들 - 특히 좋은 인연으로 만난 - 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변하기를 바란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나와 인연을 끊고 잘난 사람들끼리 몰려 살아도 괜찮다. 원망하지 않는다. 본래 다 그런 거니까. 다만, 나는 내 곁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귀해져서 옛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술도 오래면 변하는 만큼 그 인연이 옛 인연같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더욱 귀한 인연이 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3.

2008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이 누추한 블로그에서 고어핀드라는 괴인과 교감하는 분들 모두 한해 장족의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 스스로도 좋은 쪽으로 변하여 높이높이 날아오르시라. 나도 열심히 뒤쫓아 가겠다. 좀 늦었지만, 이게 내 새해 덕담이다.
  1.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 나오는 말. 이 말에 대한 반박이 조강지처라는 말의 원전이다. [본문]
2008/01/24 02:19 2008/01/24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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