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의식 있는 게임 매니아" 혹은 "게임을 사랑하는 게임 개발자" 들의 입에서 한국 온라인게임 산업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현거래가 중심이 되는 천편일률적인 MMORPG 게임들, 참신함이란 쌈싸먹은 주제에 콘솔 게임에서 확립된 게임플레이나 복사해대는 붕어빵 게임들, 불법 복제를 당연시하고 새로운 게임플레이에 관심이 없는 유저들에 대한 불만. 게임 관련 게시판이면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도 명색이 매니아인지라 이러한 현상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렇게 온라인 게임을 열심히 까는 사람들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거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온라인 게임은 "게임" 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게임 매니아들이 전통적으로 플레이 해온 PC 패키지 게임이나 콘솔 게임만을 게임의 기준으로 놓는다면 그렇다. 우리 나라 환경에서 온라인 게임이란 게임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인터넷 서비스의 일부거나 변종 밖에는 안된다.

왜 현거래 없는 MMORPG를 찾아보기 힘든가? 편하게 레벨업을 하고자 하는 유저들의 탓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현거래를 조장하여 유저들을 끌어모으려는 개발사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하자면, 현거래는 MMORPG - 혹은 가상 세계의 숙명이다. 사람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면 재화의 교환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상계와 현실계의 경계가 사라져가고 있는 마당에 이상계의 재화와 현실계의 재화(혹은 서비스)를 교환하면 안되는 이유가 대체 뭔가?

왜 한국 게이머들은 새로운 게임성을 가진 게임을 하지 않는가? 게이머들이 룰에 의한 플레이(혹은 게임성)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아바타를 성장시키면서 성취감을 얻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덧붙일 수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온라인 게임은 콘솔 게임보다 차라리 싸이월드에 가깝다. 게이머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하던 게임을 바꾼다는 것은 지금까지 게임 속에서 쌓아놓은 인간관계, 캐릭터, 레벨...을 비롯한 모든 성취를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필요가 있을까? 블로그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SNS의 제왕은 여전히 싸이월드 아니던가. "지금까지 쌓아 놓은 것" 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게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니까, 매니아들이 좋아하는 패키지 게임이나 콘솔 게임을 기준삼아 온라인 게임더러 왜 이런저러한 단점이 있느냐고 불평하는 건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일이다. 이건 아예 본질부터 다른 물건이니까. 이건 어찌 보면, 위장전입·탈세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주가조작의 정황까지 보이는 정치인한테 "너는 왜 그렇게 상식적이지가 못하니" 라고 책망하는 것하고 똑같은 거다. 이 인간 입에서 "전국민적으로 삽질을 해보자." "전과목을 영어로 수업하자." 는 소리가 나온들 놀라울 게 뭐란 말인가? (* 특정 사실 및 인물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명백히 까고 있음.)

별 소득없는 데 시간 허비하는 것보다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는 게 정신건강상 이로울 거다. 온라인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 웹 서비스의 일부이거나 변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