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원장에 대한 추억

CRITIQUE by 고어핀드 2008/03/07 22:52
김양수 의원(한나라당): 오륙도라고도 아십니까? 오륙도가 뭡니까?1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부산에 있는 섬 이름입니다 ^^

- 2006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1.

그는 자로 재고 먹선으로 친 듯한 사람이었다. 법대 교수 권오승. 나는 그가 수업시간에 30초 이상 틀리게 들어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항상 반듯한 정장 차림에 단정하게 빗은 머리를 하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인물. 사소한 고장도 없이 수백 개의 톱니바퀴가 정확히 돌아가는 오래된 기계식 시계. 내가 그에게서 받은 인상이다.

공대생인 내가 그의 수업 <시장경제와 법>에 들어가게 된 건 순전히 커리큘럼 때문이었다. 공대생에게 인문사회적 소양을 강요하는 커리큘럼 덕분에 생각에도 없던 법대 강의를 들어가야 했는데, 수강 신청을 말아먹고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 교수 강의에 끌려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폭이었지만(...) 강의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된다. 학기가 끝날 때쯤 나는 상당히 많은 것을 가지고 나갈 수 있었다. 학점 하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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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불명

교수님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 다음해인 2006년이었다.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하자, 익숙한 얼굴이 주간지 표지를 장식했다. 그제서야 나는 교수님이 이해찬 총리의 고등학교 선배이며, 친노 인사들의 모임인 청맥회의 회원이며, 노무현 대통령의 사위의 은사이며 또 결혼식을 주례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국내 소비자법의 최고 전문가, 권위 있는 노학자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지 않게 놀랐다.

2.

대체로 시장 경제 체제는 경쟁을 통해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체제이지만, 이러한 이상이 100% 완벽하게 동작하지는 않는다. 가격 담합이나 불공정 경쟁 등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을 통한 올바른 경쟁 체제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은 경쟁 따위와는 그리 연관이 없었다. 군사 독재 정권은 국가적 자원을 특정 집단에 몰아주었고, 그 과정에서 국가경제의 상당 부분을 과점한 재벌이 탄생했다. 별다른 경쟁 없이 성장한 재벌들은 스스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능력이 모자랐고, IMF 등으로 이들이 부실해질 때마다 애꿋은 세금이 이들을 살리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무너진 경쟁 체제를 복원하고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방안으로는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다 - 내가 한 학기동안 배운 내용은 대략 이러한 것이었다.

3.

그의 공정거래위원장 임기 도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2007년 2월에 있었던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였다. 우리나라의 차관급 인사 인터뷰기 유명 경제 일간지 1면에 오른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국내 언론들이 이 빅뉴스를 토막 기사 정도로 처리하면서 "쌩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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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게 아니라 인터뷰 내용이 문제였다. 공정위원장이 삼성 그룹의 지배 구조 - 5%도 안되는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는 - 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무시한 건 그나마 나았다. 소위 시장 경제를 옹호한다는 경제지들은 칼럼면을 통해서 "나라 망신 시키는 공정위원장"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따지고 보면 5%도 안되는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지배 구조가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이라기보다 투르크 제국의 술탄에 가까울 것인데, 신기하게도 이 신문들은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4.

떠나는 권오승 "경쟁 저해하는 대기업 행위 여전 " [이데일리 2008.03.06 17:04]
떠나는 권오승, 새 정부에 쓴소리 [이데일리 2008.03.06 18:09]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어제로 2년 간의 공직 생활을 접고 학교로 되돌아갔다. 마침 삼성 그룹의 비자금에 대해서는 특검 수사(?)가 진행중이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비자금의 실체가 상당 부분 확인되었고, 이건희 회장의 검찰 출두라는 진기한 구경을 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수사하는 꼬라지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으로 보이는지라, 얼마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복잡한 시국에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교수님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복학 뒤 수업에 들어가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궁금해서라도 필히 재수강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그 전에 일단 구멍난 학점도 메꿔야 하고.
  1. 아마도 오륙도는 참여정부의 "반시장적 정책"의 산물이다" 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듯. [본문]
2008/03/07 22:52 2008/03/0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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