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칼은 모두 여덟 자루가 알려져 있습니다. 평소에 썼다고 알려진 환도 두 자루(1910년 이후 그 행방이 묘연), 아산 현충사에 봉안된 조선식 쌍수도(雙手刀) 두 자루, 명나라 신종이 상으로 하사했다고 알려진 귀도(鬼刀)와 참도(斬刀) 각각 두 자루입니다. 하지만 가장 잘 알려진 칼은 아산 현충사에 보관된 쌍수도 두 자루 뿐, 나머지 칼에 대해서는 인터넷에도 별 자료가 없죠.
지난 설 연휴, 부산에서 군 복무하는 후배 면회를 가는 도중 잠시 통영 충렬사에 들렀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거기서 보고 온 두 자루 참도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귀도 두 자루에 대해서는 추후 포스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정조 임금의 사제문. '사제' 라 함은,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를 내려 주는 것을 가리킨다. 술과 고기를 이순신 장군 위패 앞에 모신 다음 투구와 갑옷을 입은 채로 잔을 올리고 제사하라는 내용이라 한다. http://www.flickr.com/photos/gorekun/3230924088/
정조 19년(1795년) 12월 정조 임금이 제 147대 통제사 이득제에게 명하여 칼 네 자루를 비롯한 신종 황제의 여덟 가지 하사품(팔사품八賜品, 8종 15점)을 충렬사에 보관하고 제사를 올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1966년, 이 칼들은 보물 440호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충렬사의 유물 전시실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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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들은 분류상으로 보면 중국의 장도(長刀)에 속합니다. 13세기 이후 중국 남부 해안에는 왜구가 횡행하게 되는데, 이들이 사용한 강력한 일본도 - 특히 칼 길이가 1.5m에 달하는 "노타치(野太刀, 야태도)" - 는 명나라 관군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이에 따라 정종유, 척계광 등 명나라의 장수들은 왜구들이 사용하는 일본도를 제압할 방법을 고안하는 한편, 일본도 형태의 칼들을 명나라 군대의 장비로 채용합니다. 일본도 스타일의 중국칼, 장도는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출신 배경을 가진 만큼, 참도는 전체적인 길이에서나 모습에서나 일본 노타치의 영향이 도드라져 보이는 칼입니다. 아산 현충사에 소장된 이순신 제독 쌍수도 역시 비슷한 계보를 가지고 있는 만큼, 두 칼이 많이 닮아 보이는 것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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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재미있는 것은 손잡이를 고정시킨 방법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일본의 칼은 손잡이를 고정시키기 위해 대나무 못을, 조선의 칼은 금속 원통을 사용합니다. 중국 칼 역시 원통을 사용하는데, 이 칼에는 금속 원통과 나무 못(2개)이 동시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금속 원통에는 빨간 술을 꿰었네요. 사진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칼집의 입구에는 빗금 무늬의 장식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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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제 흥미를 끌었던 것은 칼집 끝에 새겨진 은도금 장식 문양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사진에도 나와 있지만, 칼의 손잡이 끝(병두)에도 동일한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함께 세트를 이루는 귀도에도 동일한 문양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뭔가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동백꽃 문양하고 비슷해 보입니다만, 미술사를 공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충렬사 안에는 동백나무 몇 그루가 서 있더군요. 나무에 안내판까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지역 축제 때도 쓰인다고 하더랍니다.
참고문헌
조혁상, <충무공 이순신의 검에 대한 소고>, 이순신 연구논총 제 10호,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9
ps) 논문의 저자인 조혁상 박사의 블로그는 여기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