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은 죽은 자의 권리다.
하지만, 기억은 살아가는 자의 의무다.
1.
한껏 늦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 오전, 함께 살고 있는 경상도 노인에게서 소식을 들었다. 그저 "아,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 뿐, 거짓이겠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노인의 입꼬리는 소식이 거짓이 아님을 증언하고 있었다.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좀 거북한 비유지만, 그 동네 어물전은 생선이 많은 만큼 꼴뚜기도 많고 상한 생선도 많1다. 멀쩡히 채용 결정된 사람을 맘대로 자르는 골빈 놈이 있질 않나, 문상 가서 입으로 대변을 보는 놈(들)이 있질 않나. 그런 불량 생선들에 비하면 입꼬리 조금 올라간 것 정도야 뭐...

어물전에 꼽사리 낀 쥐새끼야 닐러 무삼하리오.
2.
바보 노무현이 아직 대통령이었을 때의 일이다. 주간지에서 어느 청와대 고위 인사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임기가 끝이 보이고 바보의 인기도는 바닥을 기고 있던 차에 기자의 질문: "노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이면 아직도 지지도를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있지 않느냐?" 대답. "아니다. 노대통령의 승부는 버림으로써 얻는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 버릴 것이 없다." 대략 이런 문답이 오고갔다. 흡사 오래 써서 남김없이 짜내버린 치약 튜브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진짜 바보는 나였다. 그 바보는 다 짜낸 튜브로도 아직 불을 붙일 수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능히 그럴 인간이었다. 고난을 각오하고 김영삼의 밑에서 뛰쳐나왔고, 낙선할 것을 알면서도 지역주의에 도전했던 바보였다. 나는 바보가 간 뒤에야 그걸 알아차렸다. 이런 바보.
3.
그는 자존심이 아주 강했던 것 같다.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가 독학을 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하던 오기의 원천은 거기였다고 나는 믿는다. 전직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 던지고, 은사의 정치적 결정을 "야합" 이라고 비판하고, 언론 권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던 용기 또한 거기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너네가 도대체 나보다 잘난 게 뭔데? 왜 내가 날 싸게 팔아넘겨야 하는 건데?
어느 정도는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정치인으로써 그의 이미지는 청렴 결백이었다. 그것이 그의 명예요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진중권의 말따마나, 그는 한국 정치인의 평균에 한참 미달하는 두께의 안면 가죽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최소한 그는 많은 정치인들이 포기한 부끄러움의 개념은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명예는 입증도 되지 않은 "혐의(혹은 주장)"를 마구 생방송해 대는 언론과 검찰에 의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가장 소중한 것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부끄러움도 (조금은)알고 자존심도 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죽음으로써 명예를 지키는 것.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노무현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찰리 채플린이 맡았던 역들과 비슷했다. 학벌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조차 없고, 변변한 정치적 세력도 없는 정치인. 그 주제에 바보처럼 원칙을 따지면서 기득권과 싸우는 역할(엄연히 역할) 말이다. 구두를 뜯어먹으며 연명하는 채플린 영화가 인기를 끌듯, 그가 기성 체제에 의해 구박을 받을수록 지지자들은 모였고, 단결했다. 아니꼬운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무명 복서에 열광하듯 환호를 보냈다.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대통령이 되었던 데는, 분명 그런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이미지는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침식되기 시작했다. 사정이야 어쨌든, 최고 통수권자가 약자 역할을 맡기는 힘들었다. 탄핵 등의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지지자들은 다시 모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의 인기가 되살아난 것은, 새 권력이 농사 지으면서 사는 그를 들볶으면서다. 그는 이전에 맡던 역을 다시 맡았고, 봉하마을은 그의 공연장이 되었다.

인기를 끌었던 "노간지 라이더" 짤방.
5.
어젯밤 회사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잘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밤을 샜다. 아침 8시, 덕수궁으로 나갔다. 분향소가 있었다. 아침부터 많은 이들이 분향을 하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각하" 따위의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권위적인 낱말이라고 생각해서다. 내가 노무현에게 (이라크 파병이나 경제정책 등에 비난을 퍼부으면서도)애정을 가졌던 이유는, 그가 계급장 떼고 논쟁을 할 정도로 체신머리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그 체신머리없는 사람의 영정 앞에서 "각하, 이제 편히 쉬십시오." 라고 말하고 물러나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분향을 마치고 되돌아서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지만, 기억을 되살려 보면 자존심 강한 그다운 마침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네티즌들이 제안하는 촛불시위 같은 데 동의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알았던 것. 몰랐던 것. 잘한 것. 못한 것.
이루려했던 일. 이루어진 일. 이루지 못한 일.
6.

하지만, 기억은 살아가는 자의 의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