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토의 심정

2009/06/2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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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8765199@N07/2699398541/in/set-72157606473530717/

요즘 열심히 뒤지면서 정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자료들은 대개 중세의 전쟁사에 대한 자료들이다. 틈틈이 주제별로 정리를 하다 보면 상당히 많이 나오는 게, 중세의 기사들은 어떤 훈련을 받았냐는 거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에서 간략하게 다룬 바가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중세의 기사들은 다른 무사의 집에 시동으로 들어가 기사의 시중을 들면서 교육을 받는다. 처음에는 식사 시중과 같은 것을 하면서 기본적인 에티켓 같은 것을 배우는 정도지만, 나중에는 전투 기술을 닦아 전장으로 출정하는 주인을 따라나서게 된다. 일종의 부사수 역할이다.

* 방문객 여러분, 죄송합니다. 사실 요즘 제가 글을 못 쓰고 있는 건 바쁜 탓도 있지만, 이런저런 자료를 정리하느라 글 쓸 시간이 따로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본업이 게임이니 밀린 게임도 하고, 여기저기서 쓴 리뷰들도 확인해야 하고...) 그래도 이 작업이 끝나면 평소에 비해 훨씬 빨리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전쟁사 글들은 그 때 가서 왕창 올려드릴께요... ㅜㅠ

여기서 눈에 띄는 사실은, 기사 훈련을 받는 장소다. 고위 귀족의 자제들의 경우 왕궁에서 시동 생활을 했겠지만, 대개는 숙부/백부의 집이나 아버지의 주인댁에 가서 훈련을 받았던 것 같다. 일본 전국시대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사무라이의 아들은 친척이나 아버지의 주인댁에 시동(코쇼小姓)으로 들어가면서 사무라이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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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의 야망: 혁신>의 한 장면. 시동이 동맹 제의를 수락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묻고 있다. http://www.flickr.com/photos/gorekun/3551120517/

무사 사회에서 이러한 방식이 인기가 있는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무사 후보생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싸우고 죽이는 거친 기술들이다. 이런 걸 아버지가 직접 가르치기는 쉽지 않다. 전투 훈련을 하려면 그야말로 "제대로 싸워야" 하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새끼를 그런 식으로 패고 두들길 배짱이 있을 리 만무하다. 믿을 만한 상대에게 맡기는 게 더 낫다. 자연히 선택되는 건, 삼촌 댁이나 주인 어른 댁이다.

맞아 보지 않은 사람은 끈기 있게 싸우지 못한다. 자신의 피가 튀는 모습이나 상대의 주먹에 이빨이 부러지는 소리를 보고 들어야만 한다. 땅바닥에 내던져졌을 때 전력을 다해 싸우고 투지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 이러한 사람만이 전투에서 자신 있게 싸울 수 있다.

- Roger of Hoveden, 12세기.
(Christopher Gravett & Graham Turner, English medieval knight 1200-1300, Osprey, 2002 에서 재인용.)
그럼 이쯤에서 이런 상상을 해보자. 전국시대 못지않은 싸움판이 벌어지던 우리네 삼국 시대에는 어땠을까.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다. 그는 666년 12월, 황해도에 있는 고구려성 12개를 거느리고 신라에 항복한다. 세 조카들 - 연남생, 연남산, 연남건 - 의 걸판진 싸움판에 나라 서까래가 뽑혀나가는 꼴을 보다 못한 결정이었다. 앞서 666년 9월에는 두 동생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린 연남생과 그 아들 연헌성이 당나라로 넘어가 벼슬을 얻은 바 있다. 연남생은 한때 고구려의 국정 전반을 통솔하던 막리지였다. 이런 자가 적군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으니, 전쟁이 될 리가 없다. 실제로 고구려는 2년을 버티지 못하고 668년 멸망한다.

삼국사기에는 그저 조카들 싸움질에 나라가 망했으니 그저 신라로 가야겠다는 연정토의 말, 딱 한마디만 나온다. 정말 그 생각 뿐이었을까?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당사자들은 연개소문의 아들들이고, 연정토에게는 조카들이다. 순전히 상상이지만, 연개소문의 세 아들들이 연정토 밑에서 무사 수행을 했다면 어땠을까. 연정토의 머릿속에 떠오른 감정은 어설픈 글월 한두 줄로 옮기지 못할 만큼 복잡한 그 무엇이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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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등자. 4세기. 충남 천안 용원리 무덤 출토. http://www.flickr.com/photos/gorekun/3011627220/in/set-72157607819582718/

연정토가 신라에 항복하러 간 12월은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경주에 도착한 연정토와 그 일행은 신라 조정으로부터 벼슬을 받고 경주에 정착한다. 그가 가져 온 12개 성에는 신라군이 배치되었다.

그 해 겨울은, 연정토에게 유난히 추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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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Leviathan 2009/07/02 01:44

    그때 연정토의 심정은 문자 그대로 '죽고 싶다'였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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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7/05 10:59

      조카들 때문에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죽고 싶은 심정이었겠죠. 그 조카들이 자기 아래서 무사 수행이라도 했다면 심장을 저며내는 심정이었겠고...

  2. 젤가디스 2009/07/06 18:20

    흥미로운글 잘 읽고 갑니다. 흔히 중세를 생각하면 저는 보통 아더왕과 그 기사들이 입었던 플레이트 갑옷을 생각했는데 이게 더 오래 입었던 거였군요. 또 저는 지역마다 어느 지역은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어떤 지역은 체인 메일을 입나보다 라고 막연히 생각하였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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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7/06 18:31

      1. 사실 아더왕의 시대는 중세 극초기니까 영화 등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체인 메일도 입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신화의 세계인지라...
      2. 체인 메일에서 플레이트 아머로 진화해 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글을 써볼 예정입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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