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flickr.com/photos/8765199@N07/2699398541/in/set-72157606473530717/
* 방문객 여러분, 죄송합니다. 사실 요즘 제가 글을 못 쓰고 있는 건 바쁜 탓도 있지만, 이런저런 자료를 정리하느라 글 쓸 시간이 따로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본업이 게임이니 밀린 게임도 하고, 여기저기서 쓴 리뷰들도 확인해야 하고...) 그래도 이 작업이 끝나면 평소에 비해 훨씬 빨리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전쟁사 글들은 그 때 가서 왕창 올려드릴께요... ㅜㅠ
여기서 눈에 띄는 사실은, 기사 훈련을 받는 장소다. 고위 귀족의 자제들의 경우 왕궁에서 시동 생활을 했겠지만, 대개는 숙부/백부의 집이나 아버지의 주인댁에 가서 훈련을 받았던 것 같다. 일본 전국시대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사무라이의 아들은 친척이나 아버지의 주인댁에 시동(코쇼小姓)으로 들어가면서 사무라이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신장의 야망: 혁신>의 한 장면. 시동이 동맹 제의를 수락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묻고 있다. http://www.flickr.com/photos/gorekun/3551120517/
맞아 보지 않은 사람은 끈기 있게 싸우지 못한다. 자신의 피가 튀는 모습이나 상대의 주먹에 이빨이 부러지는 소리를 보고 들어야만 한다. 땅바닥에 내던져졌을 때 전력을 다해 싸우고 투지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 이러한 사람만이 전투에서 자신 있게 싸울 수 있다.그럼 이쯤에서 이런 상상을 해보자. 전국시대 못지않은 싸움판이 벌어지던 우리네 삼국 시대에는 어땠을까. 비슷하지 않았을까?
- Roger of Hoveden, 12세기.
(Christopher Gravett & Graham Turner, English medieval knight 1200-1300, Osprey, 2002 에서 재인용.)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다. 그는 666년 12월, 황해도에 있는 고구려성 12개를 거느리고 신라에 항복한다. 세 조카들 - 연남생, 연남산, 연남건 - 의 걸판진 싸움판에 나라 서까래가 뽑혀나가는 꼴을 보다 못한 결정이었다. 앞서 666년 9월에는 두 동생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린 연남생과 그 아들 연헌성이 당나라로 넘어가 벼슬을 얻은 바 있다. 연남생은 한때 고구려의 국정 전반을 통솔하던 막리지였다. 이런 자가 적군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으니, 전쟁이 될 리가 없다. 실제로 고구려는 2년을 버티지 못하고 668년 멸망한다.
삼국사기에는 그저 조카들 싸움질에 나라가 망했으니 그저 신라로 가야겠다는 연정토의 말, 딱 한마디만 나온다. 정말 그 생각 뿐이었을까?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당사자들은 연개소문의 아들들이고, 연정토에게는 조카들이다. 순전히 상상이지만, 연개소문의 세 아들들이 연정토 밑에서 무사 수행을 했다면 어땠을까. 연정토의 머릿속에 떠오른 감정은 어설픈 글월 한두 줄로 옮기지 못할 만큼 복잡한 그 무엇이었음이 틀림없다.
삼국 시대의 등자. 4세기. 충남 천안 용원리 무덤 출토. http://www.flickr.com/photos/gorekun/3011627220/in/set-72157607819582718/
그 해 겨울은, 연정토에게 유난히 추웠을 것 같다.




2009/07/02 01:44
2009/07/05 10:59
2009/07/06 18:20
2009/07/06 18:31
2. 체인 메일에서 플레이트 아머로 진화해 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글을 써볼 예정입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