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2009/08/10 03:5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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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chiaramarra/1207074472/

L군의 별명은 "초딩" 이다. 그를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정신 연령이 9세 수준인 이 인간에게서 진지함은 찾기 힘들다. 독서하고는 담을 쌓았는지, 심각한 얘기만 나오면 쑥 들어간다. 입에서 나불거리는 말의 7할은 실없는 소리다. 이런 인간이 S대 학생증을 들고 다닌다. 학교 동아리에서는 "여자하고 인연을 끊으려면 L군에게 소개해 줘라" 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다.

G군의 별명은 "지식人" 이다. 어쩌다 보니 그런 별명이 붙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생각보다 5~10살 적은 나이에 한 번 놀라고, 공대생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란1다. 남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다가 어느 순간 관련된 을 추천해주거나 선물한다. 바른생활 사나이로 불리던 그가 최근 소개팅에서 딱지를 맞았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아가씨 남자 보는 눈 어지간히 없군" 하고 혀를 끌끌 찼다.

이 둘에게 공유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동일인물이라는 거다.

2.

"글 쓰는 건 대학원생 수준인데, 대화하는 건 초등학생 수준이네."

이따금 듣는 얘기다. 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나를 엄격히 구분하는 편이라, 오프라인 지인들에게 온라인 정체성을 잘 보여 주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내 정체를 들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180도 다른 캐릭터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L군에 훨씬 가깝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보는 사람들 혹은 온라인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는 G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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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royblumenthal/2354889713/

L군의 정체는 여러 모로 수수께끼다.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말은 없고 생각은 많아서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있으니, 생물학적 나이보다 훨씬 적은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수수께끼다. 외모 컴플렉스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머릿속에 있는 일종의 광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신기하기는 G군도 만만치 않다. 이 친구도 정체가 묘연하다. 무엇보다 G군이 L군과 한 몸을 공유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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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cuppini/2248084559/

최근 주위의 몇몇 분들께 이런저런 충고를 듣고 있다. 요는, L군 노릇 좀 그만두라는 것이다. 충고를 해주신 한 분은 내 직장 상사고, 한 분은 친한 형이다. 그 형의 말이 누구누구의 입과 귀를 거쳐 유통되었는지 대략 짐작이 갔다.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 L군 가면을 벗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아뿔싸, 10년이 넘게 쓰고 있었더니 빠지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G군 가면이 써지는 것도 아니다. G군은 독특한 만큼 수줍음도 많아서, 조용히 모니터 앞에 앉아서 글 쓰는 걸 즐기는 체질이다. 이걸 쓰고 돌아다닐 수는 없다.

더위는 가시고 입추도 지났는데 나 혼자 납량특집을 경험하고 있다. L군을 보는 사람들은 G군이 보이질 않는 모양이다. G군을 먼저 본 사람들은 L군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이젠 내가 누구인지도 슬슬 헷갈린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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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paperstar/2067544979/

어느 쪽이 가면이고, 어느 쪽이 진짜일까? 둘 다 진짜? 아니면, 둘 다 가짜?
과연 가면이 둘뿐일까? 어느 날 갑자기 세 번째 가면이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그 가면이 괴물의 얼굴이면 어쩔까?
아니면, 처음부터 Jack the Ripper2 같은 괴물이
가면을 바꿔 쓰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길고 긴 밤. 잠이 오지 않는 밤.
머릿속을 메우는 생각, 생각, 생각의 편린들.

* 한줄 요약: 메일이나 덧글로 오프에서 한 번 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들,
죄송합니다. 저는 그 정도 인물이 못 됩니다 ㅠㅜ
  1. 꼬날님의 경우 역사 전공자로 생각하셨다고... [Back]
  2. 19세기 말 악명을 떨쳤던 런던의 살인마.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유영철과 같은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시조격 인물이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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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나는 왜 진지한가?

    Tracked from ego+ing 2009/08/13 11:09 del.

    사람들이 나 보고 진지하다고 그런다. 오프라인의 친구, 동료가 이 말을 들으면 비웃을 거다. 오프의 나는 심각함과 유쾌함의 공수전환이 매우 빠른 편이다. 때로 나는 영업사원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확실히 온라인의 나는 좀 과하게 진지하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연도 있다. 그것은 내가 타인을 위해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나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내 글들의 소재는 보통 나 자신이다. 나는 나를...

  2. Subject : 세가지 세계

    Tracked from ego+ing 2009/08/13 11:09 del.

    세가지의 세계가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그리고 꿈이다. 그리고 각각의 세계는 각각의 다른 자아를 만들어냈다. 온라인이 가장 어리고, 꿈은 다른 자아들과 친하지 않다. 요즘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이 막둥이 온라인인데, 큰 틀의 방침은 오프라인과의 격리다. 전혀 다른 자아를 만들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우선 온라인 기반의 회사에 다니고 있고, 온라인이라는 논리적 세계는, 오프라인이라는 물리적 세계를 하드웨어로 하고 있기 때문이...

Comments

  1. 홍민희 2009/08/10 10:54

    안녕하세요 L 형아. 아, 여기서는 G 형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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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한 2009/08/10 12:20

    '저는 L입니다' 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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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渤海之狼 2009/08/10 13:58

    L과 G라는 이니셜보다는 S와 M이셨다면 글을 더 재밌지 않았나 하고.. 그러는 편이 더 좋지 않나 하고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건 그렇고.. 말 나온김에 함 봐요. 가볍게 쏘주나 하면서 칼에 대해서 좀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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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0 14:39

      아니...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저는 오프라인에서 대면할 만한 사람이 아닐 뿐더러, 칼에 대해서는 블로그 글로 접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환상이 깨질까봐 ^^)

  4. 飛烏 2009/08/10 16:26

    오프라인에서도 게임에 대해서는 낄낄거리면서 이야기 할 수 있잖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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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빠늑대 2009/08/10 20:48

    안그런 사람이 있나요? 하지만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달라지더군요. 뭐냐... 그...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 지더라는 겝니다. 아직까지야 가면 속과 겉이 완전히 같아지지야 않았지만... 공자님 말씀으로는 얼마 지나면 될 것 같기도 하더군요 크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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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1 09:32

      상황에 따라 조금씩 쓰는 가면이 달라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만, L군과 G군이 너무 다른 데다가 L군은 부정적인 면이 많다는 점이 문제겠지요. L군 가면은 벗으려고 생각중입니다.

  6. 도라버리게스  2009/08/11 04:57

    L도 고어핀드이고, G도 고어핀드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면을 100개 돌려가며 쓰더라도 고어핀드의 몸뚱아리는 변하지 않잖아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격이란 받아들이는 정보에 대한 반사이고, 개개의 사람은 각각 독특한 정보이며 이에 대한 값도 제각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일차 함수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수를 넣으면 다른 값이 나오는 그거요.

    위의 이니셜을 보고 아래의 대사가 해보고 싶었습니다.

    "L, 그걸 아는가? 사신은 사과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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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1 09:35

      핫핫, 어쨌든 G군은 L군을 척살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더이상 동거하기 싫어진 모양이에요. 그건 그렇고, 데스노트를 연상하시는 분이 정말 많군요. 사실 저도 데스노트 짤방을 첨부할까 했답니다. "그래, 내가 키라다!!" :)

  7. 2009/08/11 12:18

    저도 L군은 만난 적 없고 G군을 온라인에서 만나기만 했으니 '전체'를 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누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온.오프에서의 차이는 있지 않나요? (저는 상대적으로 조금 적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보고 충격 받으신 분도 있다고 하니 ^^) 서서히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하겠다는 다짐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그건 좋은 거구요..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이든 뭐든) 변한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집착해 변치 않도록 하려는 게 고뇌의 근원이라고 석가모니도 말씀하셨지요~ (물론 민주화 투사인 척하다가 쓰레기로 변신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아 그러고보니 뭔가 굉장히 쓸데없는 얘기를 주절거린 것 같은데.. 어쨌든 전 고어핀드님을 응원한다는 뜻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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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1 15:00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G군, 반드시 L군을 척살하도록 하겠습니다!! ~_~

  8. null 2009/08/11 12:27

    직장상사 누구?ㅎ 이런것만 눈에 들어와.오호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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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구름군  2009/08/11 12:49

    전 인간의 인격이라는 것이 하나의 동그란 구체라고 생각합니다.
    끝없는 면들이 모여서 구체를 이루죠. 합체하세요.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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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1 15:01

      합체 필요없고 G군이 L군을 쫓아내고 몸 전체를 차지하면 그만입니다 :)

  10. 미친고양이 2009/08/11 20:54

    고어군이 잭더리퍼가 되면 완전살인을 저지를 듯....

    '완전살인이란 없어!' - 모 탐정의 말
    '완전살인이란 증거를 찾기 위한 경찰의 노력보다 증거를 없애는 범인의 노력이 클 때 발생한다.' - 본인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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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1 22:47

      핫핫, 완전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열의 혹은 집념은 보이겠지요;;

  11. 미리내 2009/08/12 00:53

    사회성 결여! 명쾌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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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동건아빠 2009/08/12 10:12

    아하..
    결국 고어핀드님을 보고 싶어하는 팬클럽이 그렇게 많다는 소리군요.. ^^
    남들에게 내 어떤 부분이 많이 공유된다는 건... 그 만큼 내 본모습이 들어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좀 해야하는 거 같군요.
    난 그런데로 익숙한데.. 남들한테는 무섭거나 추한 모습으로 다가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음... 그거 좀 무섭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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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2 17:40

      헛, 저갇은 듣보잡 블로거가 그렇게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칭찬 감사합니다. :)

      일단 L군과 G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G군이 좀 더 진짜 모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최소한 L군처럼 컴플렉스의 결과물(너무 무겁고 어려운 사람으로 보일 것 같은 두려움)도 아니고, 상당히 자유로운 환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내밀었으니까요. G군의 나이가 L군보다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G군이 보이게 된 건 주로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지만요.

      그런 점에서 보면 내 일부가 많이 공유된다는 것은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는 각오를 필요로 한다는 말씀은 정답인 것 같네요. 저 같은 경우느 다른 사람에게 무섭거나 추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겉에 쓰고 있는 가면과는 너무나도 달랐지요. 평소에는 저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라, 좀 놀랐답니다.

  13. egoing 2009/08/13 11:10

    때로 다중의 '나'가 가면이 아니라 하나의 '나'라는 신화가 가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개의 가면이 아니라, 하나의 가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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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4 23:22

      http://kr.blog.yahoo.com/psy_jjanga/1457510.html

      자주 가는 블로그에서 이전에 읽었던 성격에 대한 글입니다. 요즘 스스로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확실히 느낀 것은, egoing 님 말씀대로 사람이 쓰는 가면이 하나일 수는 없는 것 같다는 것이에요. 다만 저 같은 경우는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있어서라기보다, 지극히 분열된 가면 두 개를 가지고 있고 또 그 중 하나는 억압된 심리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좀 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제 안의 분열을 최소화했으면 하네요. 그 안에서 서로 다른 가면들이 사이좋게 공존했으면 좋겠습니다.

      덧. 트랙백해주신 글들 모두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14. 이즈미 미라이 2009/08/13 22:49

    저도 온/오프라인의 모습이 다른 듯한 생각이 들어서 흠칫 하곤 해요.
    그리고 어떤 것이 과연 내 모습일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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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4 23:23

      그래도 미라이님은 저만큼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

  15. 꼬날 2009/08/14 14:59

    ㅎㅎ 저는 제가 역사 전공인데, G님의 글이 늘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와서 같은 전공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저도 Ms. Lee 인 저와 K 일 때의 제가 다른 것 같은 때가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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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어핀드 2009/08/14 23:26

      핫, 그래도 제가 보기에 꼬날님은 성격의 통합성(Integrity)을 훌륭하게 유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

  16. Leviathan 2009/08/15 10:46

    사람은 다중적이긴 하지만, 그 모든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게 중요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고어핀드 님의 변신(?)을 지지합니다 ㅎㅎ 꼭 성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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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앨런비 2009/08/15 20:34

    A군과 S군의 하는 짓을 비교해보면.
    똑같다는 사람도 많고 동일인물이냐고 하는 사람도 많3 ㅡ.ㅡ;;

    A군의 글은 심각한듯하다가 오덕하게 가버리고.
    S군의 말은 평소에는 무지 가벼운데, 가끔 무지 무겁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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