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처: [flickr](http://www.flickr.com/photos/steverideout/135800037/)

지금은 거의 발길을 끊었지만, 한때 내가 인터넷에서 가장 즐겨 찾았던 곳은 다음 등지에 있는 역사 카페였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책냄새나는 소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적다. 그렇기 때문에 몇 안되는 카페는 내게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아직 꼬꼬마였던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면 오아시스로 달려갔다.

그곳이 처음부터 오아시스였던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캐러밴들이 있었다. 자신이 가진 컨텐츠를 업로드해주는 고수들 말이다. 고수들이 모여 있으면 볼 만한 컨텐츠는 넘쳐1났다. 캐러밴들이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막 한가운데에서 물이 솟는 건 놀라운 이적이었다. 우물가에서 물 한 바가지를 퍼 마시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

출처: [flickr](http://www.flickr.com/photos/ultracrepidate/2553031448/)

그런데 그 오아시스들의 흥망성쇠란, 대략 비슷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의 몰락은 그들의 명성에서 시작되었다. 좋은 오아시스 - 소위 "물 좋은" 카페 - 라는 소문이 돌면, 명성을 듣고 몰려온 가입자 수가 크게 늘어난다. 분명 축하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아는 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원이 늘면서 관리가 힘들어졌다. 정성을 들여 정리해 놓은 자료들은 어지럽혀지고, 토론 게시판에는 수준 낮은 글들과 함께 유입된 찌질이들이 활개를 쳤다. 그러다보면 싫증을 느낀 고수들은 먼저 짐을 싸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그곳이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던 이유는, 컨텐츠를 업로드해 주는 고수들 덕분이었다. 고수들이 떠나고 컨텐츠를 업로드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곳은 더이상 오아시스가 아니었다. 남은 건 말라버린 우물과 쓰레기더미. 그렇게 몇몇 카페가 폐촌이 되었다. 오아시스를 등진 캐러밴들은 어딘가로 옮겨가서 새 둥지를 차렸다. 그리고 앞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2했다.

출처: [flickr](http://www.flickr.com/photos/ahron/148328018/)

처음엔 나도 캐러밴들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결국 지쳐버렸다. 계속 캐러밴 무리를 따라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천막 하나 치고 주저앉기로 했다. 선배의 조언에 따라 블로그를 개설했다. 벌써 5년 전 얘기다.

3.

나는 짧은 생각을 올리는 매체로서 미투데이(이하 미투)를 애용하는데, 이곳은 최근 이용자 수가 크게 늘었다. 이곳을 인수한 네이버가 YG 엔터테인먼트와 제휴를 맺고 소속 가수들의 미투데이를 개설했기 때문이다. 한 힙합 가수가 글을 올리자, 덧글을 달기 위해 팬들이 몰려왔다. 그날 하루, 지금까지 미투데이에 가입했던 유저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 가입했다.

사람이 크게 늘면서 이전부터 있던 유저들의 입에서는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가수에게 약간이라도 부정적인 발언을 하면, 팬들이 몰려들어 듣기에도 민망한 욕설을 퍼부으며 분위기를 흐렸다. 이곳저곳에 무성의한 리플들을 싸고 돌아다녔다. 신규 유저라 시스템을 잘 이해 못하는 건 알지만, 이렇게 몰려다니며 분탕질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귀를 잘라 버리던지"

오손도손하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 공감하던 미투는 며칠 사이에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신규 유저들이 싫다, 종족이 분화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고 심지어 미투따위 집어치우고 트위터로 옮기겠다는 사람들까지 나왔다. 실제로 그 말을 한 상당수가 정든 미투를 접고 트위터로 옮겨갔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었다.

4.

내가 가진 신념들 중 하나는 바로 "다양성에 대한 신앙" 이다. 질 높고 다양한 생각이 어우러져서 새로운 생각과 유용한 통찰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어우러지는 대상에는 이름 높은 학자의 생각도 있을 수 있고, 동성애자 영화감독의 생각도 있을 수 있다. 내가 블로고스피어를 좋아하는 것은 실로 이러한 다양성 때문이다.

질적인 다양성은 기본적으로 물리적 수량을 필요로 한다. 일단 수량이 부족하면 질적인 다양성도 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리적 수량이 반드시 질적 다양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질적 다양성을 잠식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출처: [flickr](http://www.flickr.com/photos/cfrausto/283775768/)

각종 메타 블로그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선정적인 컨텐츠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질 높은 컨텐츠도 선정성이 떨어지면 이용자들이 클릭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대표적 인 예라 할 만하다. 사실 메타 블로그에 발길을 끊은 지도 꽤 오래 됐다. 하지만 한때 즐겨 가던 곳이 그런 식으로 망가져가고 있다는 소식은 마음이 무거워지기에 충분하다.

질적인 다양성과 물리적 수량이 조화를 이루는 지점은 대체 어디일까.


  1. 지금 보면 별 것 아니지만. 

  2. 지금까지 몰락을 면하고 살아남은 곳은 몇 곳 안되는 것으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