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Kingdom of Heaven』의 한 장면. 십자군 기사들이 돌격하고 있다. 노르만식 투구를 착용한 오른쪽 기사와 초기형 그레이트 헬름을 착용한 왼쪽 기사에 주목하라.

이전 포스트에 이어서.

결론적으로 그레이트 헬름이란, "이마 위 방어에 치중하던 기존 투구의 개념을 벗어나 안면을 포함한 머리 전체를 보호하는 투구" 정도로 그 개념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13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납작한 Pot Helm에는 안면 보호판이 장착되기 시작합니다. 전투중 시야나 호흡을 방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는 당연히 구멍이 뚫렸습니다. 초기형 그레이트 헬름의 등장입니다.

https://live.staticflickr.com/2598/4023444168_4ae10384d9_b.jpg

초기형 그레이트 헬름 재현: 목은 방어하지 않는다. (출처: flickr)

하지만 얼굴만 보호해서는 안되겠죠? 역시 중요한 급소인 목을 보호하기 위해, 대략 1220년대부터 뒤통수와 목덜미를 방어하기 위한 철판이 장착되기 시작합니다. 이 철판은 점점 크기를 늘리면서 안면 방어판과 연결이 가능할 정도로 커지게 되었구요. 안면 방어판 역시 목 윗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아래쪽으로 자라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1240년대에 탄생한 것이 중기형 그레이트 헬름입니다. 1250년에 그려진 아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네요.

마카이요프스키Maciejowski 성경사본의 일러스트. 이스라엘 군이 불레셋 군을 쳐부수고 있다.(사무엘상 7:8) 왼쪽에 묘사된 기사들이 중기형 그레이트 헬름을 쓰고 있다. 장갑판이 안면뿐만 아니라 목까지 감싸고 있다. 얼굴 정면에 장착된 十자 모양의 보강 철판이 보인다.

1260년대가 넘어가면서 그레이트 헬름은 목 아래쪽으로 늘어나기보다, 머리 상부를 다시 기울이는 쪽으로 진화해갑니다. 이렇게 경사를 지워 놓으면 평평한 방어판에 비해 화살이나 검의 공격을 빗겨 나가기 좋기 때문[^1]입니다. 같은 원리가 얼굴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안면 방어판 역시 앞쪽으로 약간 뾰족하게 경사를 지우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3세기의 마지막 4분기에 이르면 그레이트 헬름은 그 모습을 완성합니다. 우리가 게임이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바께쓰 모양(-_-;)의 투구가 완성되는 것이지요.

그레이트 헬름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투구 중 하나로서, 이후 14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전장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영화 『Braveheart』의 한 장면.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 근처의 기사들이 후기형 그레이트 헬름을 착용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1297년으로, 이 시기의 그레이트 헬름은 1. 눈구멍과 숨구멍 2. 투구 가운대의 十자형 보강재 3. 경사진 안면과 투구 상단이라는 전형적인 특징을 완성하고 있다.

참고문헌

David Edge / John Miles Paddock, 『Arms & Armor of the Medieval Knight: An Illustrated History of Weaponry in the Middle Ages』 Crescent, 1993

중세의 갑옷에 대한 교과서적인 저작.

1250년대의 의 복색과 갑옷에 대해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는 성경 사본.[^1]: 이를 피탄경사각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탱크 장갑 등에도 동일한 원리가 사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