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괴물이 되는 방법은 외외로 간단하다.
1.

수능을 준비하던 어느 날. 대화를 나누던 그들 중 한 명(A라 하자)이 나를 비웃었다. 문제는 그게 책을 읽고 있던 내 귀에 꽂혔다는 것. 화가 치밀었지만, 당장은 가만히 있었다. 문제는 며칠 뒤. 내 앞을 지나던 A의 가슴으로 비수가 날아갔다. 몇 초가 지난 뒤, 교실은 난리가 났다. 내가 A에게 내뱉은 것은 심장이 하얗게 얼어붙을 정도로 잔인한 비웃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몇 마디를 내 혓바닥이 저지른 최악의 범죄로 기억한다.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했을 정도.
사람이 신의를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심리학 실험은 여기에 대해 "인간이 지속성을 인식하기 때문" 이라고 답한다. 상대가 한번 보고 말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약속도 지키고 예의도 차린다는 거다. 뒤집어서 말하면,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 존재에게는 약속도 예의도 내다버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I can do Anything~
3.
"우리는 저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선 안된다. 저들은 흉포한 짐승이다.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로마시대 어느 연설문의 일부다. 내가 '그들'을 대하던 태도는 이 연설문에서 얼마나 달랐을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이 가만히 있는 날 싫어했던 것도 사실이고, 때때로 이런저런 것을 트집잡으며 비웃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대하던 태도는? 별로 나았던 것 같지가 않다. 오해를 풀어 보려는 생각, 혹은 친해져 보려는 노력을 해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애당초 인간관계의 대상으로 본 적은 있는지 궁금해진다.

Why so serious?
4.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조선일보 창사 90주년 기념식 참석에 대해 말이 많다. 진보정당의 대표가 조선일보 행사에 참석하는 게 말이 되냐는 비난이 거세다. 한국정치에서 진보 세력이란 부당할 정도로 구박(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란 탄압)을 받아온 만큼, 그 선두에 있었던 조선일보에 대한 반감은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진보세력은 조선일보에게 괴물 취급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자연히 그들이 조선일보를 보는 시각 또한 곱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조선일보를 보는 시각이(특히나 요즘) 그리 곱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잔치에 인사차 간 것이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그건 엄연히 웃는 낯에 침 뱉는 짓이다. 그들이 아직 장외의 투사였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제도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상, 언론은 지속적 관계의 대상이 된다. 아무리 적대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초대장을 무시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 아닐까? 무엇보다, 그런 태도를 견지할 경우 나중에 자기네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지 생각은 해본 걸까?
5.

정치적 노선에 관계없이, 노회찬은 한국 정치에 있어서 상당히 귀중한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부탁이다. 그에게 괴물이 될 것을 주문하지 말라. 상대방을 때려잡아야 할 괴물로 보면 그 전에 괴물이 되는 건 자기 자신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한참 뒤에야 그걸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