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나쁜 군주의 표본으로 여기는, "주색에 빠져 국정에 소홀한" 사람도 아니다. 하루에 30kg의 서류2를 읽고 결재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다. 그뿐인가. 당대의 일류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학식도 있고,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는 신하들에게 토론을 하도록 한 다음에 결정할 정도로 합리적인 면도 있다. 반면, 진시황의 잔인함을 설명하는 기록들은 상당수가 그 진실성을 의심받기까지 한다. 억지로 지어낸 듯한 흔적이 많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진시황은 흔히 말하는 폭군의 이미지와는 꽤나 동떨어진 사람이다 - 그가 현대로 오면서 오히려 재평가받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진시황의 팬 중 한 사람이었다. 최근 김태권님의 <한나라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의 또다른 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다 읽고 두 가지로 놀랐다. 하나는 내가 아는 것 이상의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다는 점이다. 진시황은 폭군이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황제
진시황이 하는 행동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비범한 능력과 초인적 성실성을 보여 준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상대방의 마음을 전혀 헤아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진시황이 아직 젊었을 때의 일이다. 권세가 센 신하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자살을 하였는데, 진시황은 그의 장례식에서 울음을 터트린 사람을 모두 잡아서 죽인다3. 높은 대신이라면 후원해준 사람도 많고 은혜를 베푼 사람도 많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이 죽었다면 눈물을 쏟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진시황 눈에는 그게 "언젠가 복수하겠다고 덤벼들 잠재적 암살자"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것이다.

http://www.flickr.com/photos/kevharb/4116828852/

http://www.flickr.com/photos/ehrgeizier/459325342/
정치의 근본은...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아직 신입생이던 시절, 나는 논어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한 학기가 지나간 뒤, 교수님은 이렇게 강의를 정리하셨다. "인의예지의 기본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보다 공부를 잘 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이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명심하십시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지식은 흉기밖에 안 됩니다."

진나라 시대의 무게추. 진시황은 지역별로 달랐던 길이와 무게 등의 도량형을 통일했다. http://www.flickr.com/photos/ehrgeizier/459325342/
한가지 더.

진나라 시대의 기와. http://www.flickr.com/photos/laanba/3639194006/
이전의 내가 모질었던 건지 아니면 지금의 내가 물러터진 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