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자꾸 신문을 멀리한다구요?
연예 기사만 클릭하는 젊은이들이 걱정이라구요?
왜 그런지 아직도 모르십니까?

http://www.flickr.com/photos/75166820@N00/12459727/
예, 뭐 한국어로 되어 있으니까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읽는 것하고 '이해'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죠. 읽긴 읽어도, 스토리 진행이 전혀 이해가 안 가실 겁니다. 차라리 안 읽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제가 왜 이 얘기를 하느냐 하면요... 뉴스 읽기는 갈수록 "소설책 중간부터 읽기" 하고 비슷해져 가고 있거든요.
갈수록 어려워지는 뉴스 읽기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아래 칼럼 한 번 보시죠.
[기자의 눈] 한은의 헷갈리는 메시지
짧은 칼럼인 만큼 '읽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걸 '이해' 하는 건 만만치가 않아요.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배경 지식이 필요합니다. 금융 위기로 인해 금리가 오랫동안 낮은 상태로 유지되어 왔다는 것, 금리가 올라가면 주택담보대출을 한 사람들이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함부로 올리지도 못한다는 것, 하지만 지금까지 금리를 동결한 탓에 가계부채가 치솟고 있다는 것, 전임 한국은행장이 금리를 올릴 필요성을 언급해 왔으나 가카한테 무시당했다는 것 등등. 어머, 이걸 다 알 수가 있을까요?

http://www.flickr.com/photos/drb62/2054107736/
덧붙이자면, 저 칼럼은 그나마 쉬운 편입니다. 저거 말고 다른 기사 몇 개를 다른 사람들한테 내밀었더니 아예 읽지도 못하더군요. 이 마당에 누가 이해가기도 힘든 뉴스를 낑낑대면서 읽겠습니까? 그 시간에 연예기사 하나 더 보고 말지요.
'뉴스' 와 '맥락'
흔히 간과하는 것이지만, 뉴스란 혼자서 덜렁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일정한 맥락 위에 있지요. 저 칼럼의 경우 크게는 경제, 작게는 금리 / 가계부채 / 한국은행 이라는 맥락 위에 있습니다. 맥락의 전후가 없다면 그 뉴스는 의미가 없습니다. 앞 페이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소설을 읽겠다고 나서는 꼴이지요.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기본적으로 언론이 맡은 일이란 정보의 전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게 제대로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보기엔, 현재의 언론이 하고 있는 일이란 소설책 가운데 페이지 하나를 읽으라고 덜렁 던져 주고 있는 것 정도로 보이는데 말이죠. 이보세요, 그거 알아듣는 사람 한 줌도 안된다니까요?
생산을 넘어서

http://www.flickr.com/photos/blackcustard/81680010/
저는 신문의 종말을 믿지 않습니다. 언론 그리고 전문가로서의 기자들이 할 일이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지금하고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는 단순히 뉴스의 생산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같은 맥락 위에 서 있는 뉴스들 간의 연결성을 추구하는 겁니다. 위의 칼럼을 예로 들자면, 금리 변동과 가계부채 그리고 한국은행장의 행보에 대해 서술된 기존의 기사들을 함께 나열해 주는 것이 될 겁니다.1 요컨대, 소설책을 읽다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앞 페이지를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거죠.
뉴스 읽기가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뉴스 읽기를 도와주는 것, 그것만큼 뉴스에 가치를 더하는 일이 있을까요? 독자의 풀을 늘리는 것이 있을까요? 언론의 기능이 하나씩 인터넷으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 이것이야말로 언론이 가장 확실하게 잘 할 수 있는 원천기술™ 아니겠습니까.
"너님이 뭘 안다고 나서셈?" 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 저는 언론계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반생이 넘게 신문을 열독해 왔으면, 이 정도 얘기는 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