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손때가 묻은 칼

이순신 장군의 검은 모두 8개가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래 여섯 자루지요.

그런데, 사실 여기에 두 자루가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합쳐서 여덟 자루가 되는 셈이지요. 이 두 자루가 다른 점은... 바로 실전용이 었다는 점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실전용 도검, 쌍룡검. 1910년에 촬영된 흑백 사진이다. 두 자루가 꼭 같지는 않고, 한 쪽이 약간 더 휘어 있다.

위 여섯 자루 중 아산 현충사에 있는 칼은 의장용이고, 실제로 쓰기에도 너무 큽니다. 그런가 하면 통영사에 있는 네 자루는 명나라 황제가 선물로 보낸 것인데, 충무공 사후에 도착했기 때문에 만져 볼 기회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쌍룡검(雙龍劍)이라고 불리는 검 두 자루는 이순신 장군이 실전에서 사용했던, 한마디로 손때가 묻은 칼입니다. 게다가 이 칼에는 전설도 하나 얽혀 있지요.

쌍룡검(雙龍劍)의 전설

지금은 민족의 영웅으로 평가받는 이순신 장군1이지만, 임진왜란 직후에는 그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강조할 경우 조선 국왕인 선조의 정치적인 실책2이 강조될 수 있었거든요. 충무공 이순신의 공적이 그나마 제대로 인정을 받고 나아가 구국의 영웅이 된 것은, 숙종(1674 ~ 1720) 중반 이후의 일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거의 100년도 더 지난 후의 일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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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하사한 제문. 통영 충렬사 소장.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이런 모양이니 충무공의 애검인 쌍룡검 역시 그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따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칼 두 자루가 따로 떨어져서 이리저리 흘러 다녔겠지요. 하지만 이것을 결국 순조 대의 권세가였던 박종경이라는 사람이 모두 찾아내게 됩니다.

전설만큼이나 극적인 이 이야기는 그가 쓴 6권의 에 나옵니다. 이 기록은 1984년 이순신연구소 소장 이종학 교수가 찾아내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래 번역은 현대어 번역으로, 성균관대학교 조혁상 박사가 한 것입니다.

병부상서 심두실 공이 나에게 검 한 자루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 검은 이충무공이 패용하던 것이오. 내가 간직한 지 오래되었으나 나는 서생이라 쓸 데가 없으니, 상장군이 된 자에게나 어울리겠소." 라 하였다. 나는 그 검을 받고 매우 기뻐하며 절하고, 그것을 뽑아보니 길이가 1장 남짓이었고, 아득하기가 끝이 없었다. 참으로 좋은 검이었다. 칼등에는 시가 있었는데,쌍룡검을 만드니

천추에 기상이 웅장하도다.

산과 바다에 맹세한 뜻이 있으니

충성스런 의분은 고금에 같도다.

라 했다. 내가 놀라 말하기를, "또 한 자루가 있을 터인데, 어떻게 이것을 구하여 합칠 수 있을까?" 라 했다.

십수일이 지나서, 홀연히 검을 지니고 들어와서 고하는 자가 말하길, "신기하게도 이 것을 샀습니다. 장군이 지니고 계시면서 아끼시는 검과 어찌 그리 꼭 같단 말입니까?" 라 하였다. 내가 심공이 준 검과 비교해보니 벽에 걸어놓은 것과 꼭 같았다. 잠자코 한동안 있다가 비로소 검의 출처를 물었더니, 아산현에서부터 차고 온 자가 있었다고 한다. 내가 말하길, "믿을 만하다. 지난번 심공의 말이 지금도 어긋나지 않으니, 또 검 한 자루를 얻었구나." 라 했다. ... (중략) ... 신미년(1811년, 순조 11) 10월 하순에 그 시말을 이상과 같이 기록하노라.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쌍룡검은 현재 그 행적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쌍룡검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1910년 서울 고서 간행회에서 발행된 이라는 책입니다. 일종의 박물관 도록인데, 이 책에는 쌍룡검의 흑백 사진과 실려 있습니다 - 맨 위에 인용한 사진입니다. 사진에는 "이순신이 항상 차고 다니던 칼" 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는데, 앞에서 인용한 명문이 적혀 있을 뿐 아니라 사진에도 원융검이라는 태그가 달려 있습니다. 기록하고 완전히 일치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칼은 위 기록에서 살펴본 바로 그 쌍룡검인 셈입니다.

이 기록을 찾아낸 것은 역시 이종학 교수입니다. 다만 문제는 기록만 있을 뿐, 그 소장처는 묘연했다는 거죠. 이 책에는 쌍룡검의 소장처가 "궁내부박물관" 이라 되어 있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이종학 교수는 국립 중앙박물관에 이 칼이 소장되어 있는지 문의했다고 합니다만, 없다는 대답만 받았다고 하는군요. 게다가 국립 중앙박물관은 궁내부박물관이라고 불린 적도 없습니다. 어디 소장되어 있었는지조차 묘연해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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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충렬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 영정. 1978년 그려진 것으로, 정형모 화백의 작품이다. 좌우에 놓여진 병풍은 제 187대 신관호 통제사가 그렸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이렇게 1910년을 마지막으로 쌍룡검은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별 의미 없는 칼들도 잘 보존되어 전시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칼을 좋아하는 후세인으로서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칼이 어서 세상에 나타나길 기원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참고문헌

조혁상, , 이순신 연구 논총 10호,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한문학 전문가가 쓴 이순신의 검에 대한 글. 이 포스트의 메인 소스이며, 인용문도 모두 저자의 것이다. 저자는 검에도 매우 조예가 깊다. 블로그는 바로 여기.

덧붙이자면, 이 학예지를 발간하는 순천향대학교의 노승석 교수는 초서체의 전문가로, 지난 4월 지금까지의 누락과 오독을 교정한 난중일기 완전판을 펴내기도 했다. 거기 뭐하는 것이오!! 이런 걸 당장 지르지 않고!!

노영구,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미지가 임진왜란 직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한 글. 내용도 훌륭하지만 매우 읽기 쉬워 논문이라는 기분이 안 든다는 점도 미덕이다.

저자는 현재 국방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한국 전통 병서 분야의 권위자다.

한국일보, "이것이 이순신장군 쌍룡검" 2001년 11월 23일 금요일 25면

이종학 교수의 쌍룡검 기록 발견에 대한 언론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