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사용을 위한' 인터페이스만큼이나

'간편하게 오류를 보고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도 중요하다.


1.

우리 학교 공과대학은 산 중턱에 있는데, 덕분에 등산을 하는 어르신들이 도중에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들르는 일이 많다. 그러다보니 약간은 불유쾌한 일이 생기곤 한다. 안 그래도 공대생은 그 수가 많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등산객들까지 몰려들어 이용을 하다 보니, 화장실이 버텨내지를 못한다. 심할 때는 화장실 하나에 변기 한두 개씩은 막혀서 못 쓰기 일쑤인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막힌 변기가 적절히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긴 순간 바로바로 손을 본다면 그나마 문제가 덜할지도 모르는데, 관리자 입장에서는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는지 안생겼는지 알 길이 없다. 이용자들이 힘들여 문제를 보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일단 내 볼 일 보는 게 먼저니까. 덕분에 언제고 어딘가에는 문제가 있게 된다.

사실, 비슷한 문제를 지닌 곳이 한 곳이 더 있다. 바로 전산실이다. 학교 전산실에서 작동되지 않는 컴퓨터가 있으면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아마 문제가 없는 다른 컴퓨터를 찾아서 쓸 것이다. 구태여 관리자를 찾아서 어디어디에 문제가 있다고 세세하게 알려 주는 사람은 드물다 - 다들 바쁘니까. 덕분에 전산실의 컴퓨터에 오류가 발생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 관리자는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www.flickr.com/photos/thearchigeek/90720334/

그런데, 이런 류의 문제는 단순히 화장실이나 전산실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대량의 개체를 관리하는 데서는 언제고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개체가 많은 만큼 오류의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어느어느 개체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보고하는 게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어지간히 크리티컬하지 않은 이상 일단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게 오랫동안 쌓였을 때에 벌어진다.

복학하기 전, 게임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이런 일이 있었다. 업데이트를 하고 나서 버그가 발생했는데, 아무리 해봐도 사내 컴퓨터에서는 그 버그가 똑같이 재현되질 않는 것이었다. 유저 게시판에서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는데, 정작 운영자들과 개발자들은 어디에 뭐가 문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일단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보여야 고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그렇게 몇 시간을 버그를 재현하기 위해 테스트 팀과 함께 계속 삽질을 하고 있었다.

결국, 버그의 원인을 찾아낼 수는 있었다. 수십 개의 아이템 중 하나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아이템이 업데이트 된 지 꽤나 오래되었다는 것. 그런데 당시에는 버그가 발생할 가능성이 굉장히 낮았기 때문에, 테스트 팀의 검수를 어떻게 어떻게 통과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업데이트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버그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고, 결국 새 업데이트 내용과 겹치면서 대형 사고를 발생시킨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BOOM!!

문제를 해결하고 회사를 나섰을 때는 벌써 새벽이었다. 퇴근하면서 왜 이 버그가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았을까 궁금해했다. 아무리 가능성이 낮다고 한들 유저들 눈에 이 버그가 아예 안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냥 x 밟은 셈 치고 넘어갔을 것이다. 오류 보고하는 건 귀찮으니까. 그렇게 오류는 계속 보고되지 않았고, 관리자였던 우리는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


3.

게임이든 웹 서비스든, 개발자들은 유저들이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여기서 흔히 간과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오류 보고 인터페이스다.

온라인 게임이든 웹 서비스든, 고객 센터에 오류를 보고할 수 있는 장치는 기본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신고 메일 뭐 이런 거 말이다. 문제는 이걸 사용하는 게 꽤나 귀찮다는 것이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디어디에 문제가 있다고 미주알고주알 적어서 메일을 보내는 건 상당히 귀찮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 입장에서는,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고 만다. 그러다 보면 쥐도새도 모르게 문제는 누적되기 마련이고, 결국 언젠가는 사고가 터진다: 변기가 죄다 막힌다거나. 전산실에 쓸 수 있는 컴퓨터가 하나도 없다거나. 갑자기 튀어나온 버그 때문에 밤을 샌다거나.

4.

미리미리 생각만 좀 한다면, 좀 더 편리한 오류 보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게다. 아이템 구석에 작은 "문제있어요" 버튼을 하나씩 둔다던가 말이다. 처음에 만들 때야 손이 좀 가겠지만, 진짜 사고가 터졌을 때를 대비한 보험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싼 것인지도 모른다.
2010/06/21 01:17 2010/06/2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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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빠늑대
    2010/06/21 02:17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죠. 분명히 사람이 떠나가는건 이유가 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답이 안나옵니다. 그러다가 그 중에 하나라도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해결되는데 어떤때는 망할 때 까지 원인이 안나오기도 하더군요.
    • 고어핀드
      2010/06/29 00:40
      예, 어디든지 간에 불만을 쉽게 말할 수 있게 - 혹은 말할 수밖에 없게 - 해주는 시스템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2. CynicalChups
    2010/06/30 11:31
    아무리 잘 만든 오류 보고 시스템도 쓸 수 없을 때가 있지.
    '을'은 '갑'이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는 법!
    들어도 못들은척, 알아도 모르는척, 할 수 있어도 할 수 없는척...

    근데... M$에서 만든 소프트 크래쉬나면 오류 보고 하는 사람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하지 않더라도 2~3% 정도는 할꺼라고 봐...
    2~3%라도 엄청난 양의 리포트가 밀려 들겠지.

    작은 문제가 쌓여서 나중에 크게 터지는 것은 없겠지만 그만큼 관리자가
    오류 리포트에 대한 관심을 상시 가져야 한단 말이지.

    보고해도 문제고, 안해도 문제고... ㅋㅋㅋ

    오랫만에 들어왔는데 홈페이지가 좀 바뀌었네~ 잘지내지?
    • 고어핀드
      2010/07/02 12:22
      그렇죠. 학교에서는 잘 몰랐는데,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해야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가, 혹은 매끄럽게 해결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단순히 오류를 보고하는 시스템 뿐만 아니라 그걸 해결하고, 그 과정을 유저들과 매끄럽게 공유하는 것까지요. MS는 그런 workflow가 참 잘되어 있다고 들었구요.

      스킨 바꿨는데... 깔끔하고 이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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