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인연이 끝났을 때의 태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1.
"고어핀드가 맞니? 정말 많이 변했구나. 못 알아보겠네."
언젠가부터 이런 말을 듣는 날이 많아졌다. 특히나 오랫동안 못 보다가 다시 본 사람들의 입에서 말이다. 한동안 이런 이야기를 듣는 데 익숙해져서, 이제는 이렇게 얼머무리면서 피식 웃곤 한다. "사람은 살다보면 변하잖아요." 1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눌 때면 내 머릿속은 사뭇 복잡해진다. 떠올릴 게 많아서다. 사람들이 변한 것들을 열거할 때마다 내게 떠오르는 것은, 내게 그 변화를 선물해준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 인연들을 만들어 준 또다른 인연들, 또 또다른 인연들... 내가 대화를 얼머무리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많은 인연들을 만난다. 사람이나 애완동물 같은 생물과의 인연도 있고, 책이나 장난감, 영화 같은 무생물과의 인연도 있다. 이 인연들을 겪으면서 사람은 조금씩 변해가고, 결국 서로 다른 고유한 존재가 된다. 나는 내가 겪은 인연의 퇴적물이고, 인연은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고 사는 전대미문의 밀덕을 만들어낸 데 책임을 느껴야 마땅할 것으로 본다.
3.
하지만 그 인연이 얼마나 오래 갈까? 모든 것에 끝이 있듯, 인연 또한 예외는 아니다. <토이 스토리> 2편에서 등장한 카우걸 제시는 우디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 애가 대학에 가거나 신혼여행 갈 때, 널 데려갈 것 같니?" 제시는 본래 어느 소녀의 것이었지만, 주인의 관심사가 화장품으로 옮겨가자 버려진 터다. 이렇듯 아무리 좋고 소중한 인연이라 할지라도, 끝이 있다는 것은 필연이다. 주인이 훌쩍 커버린 장난감이 버려지듯.

우디와 제시.
4.
"제가 읽은 책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저는 제가 읽은 책의 거의 대부분을 버립니다. 자료나 도구가 될만한 책들만 제가 가지고 있지요."
소설가 김훈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책을 모으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애서가들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책과의 인연을 언제까지고 유지하고 싶은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어떤 책을 아끼는 것은, 그 책과 나 사이의 인연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 인연이 귀한 이유는 그 책이 내게 준 변화가 내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내가 존재하는 이상 계속 나와 함께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책에 구태여 집착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책과의 인연도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읽은 책에 담담히 이별을 고하고 다른 인연(새 주인이라던가)을 찾도록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피할 수 없는 이별에 대처한다는 점에서, 김훈 특유의 방식은 오히려 더 성숙된 면이 있는 것이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장난감들은 앤디와 헤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인연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 앤디와 장난감들 사이에 남겨진 마지막 일일 게다.(마지막 장면을 보시라!) 하지만 장난감들은 분쇄된 플라스틱이 되는 순간까지 앤디와의 인연을 잊지 못할 것이고, 앤디 또한 장난감들이 언제고 그의 일부로 남아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5.

문서 폴더를 정리하다가, 웬 메모들을 발견했다. 일기라고 하기에도 뭐한 오래된 끄적거림들이다. 하지만 펼쳐본 순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인연 하나가 떠올랐다. 문서를 정리하다 말고, 한참 동안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를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인연들을 기억했다.
그 인연의 상대들을 다시 마주칠 일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게다. 하지만 살아가다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고마웠노라고. 당신이 건넨 인연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했노라고. 내 일부가 되어버린 인연을 볼 때마다, 항상 당신에게 감사했노라고. 이 마음, 언제까지나 간직하겠노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