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두드리면 큰 답이 나올 것이며,
작게 두드리면 작은 답을 얻는다.
-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2010년 8월 19일
일본 규슈(九州) - 나가사키(長崎) 시
1.
8월 19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각, 나는 나가사키 역에 내렸다. 역에 커다랗게 걸린 드라마 사진들이 나를 맞았다.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 - 한 시간이 넘게 연착된 기차를 타며 "여기가 정말 일본이 맞아?" 하며 투덜거리던 나는, 사정이 어찌 되었건 제대로 온 것만은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계와 일본을 잇던 오랜 교역의 도시이자 료마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바로 그 곳이었다.

<료마전>의 캐릭터, 악동 료마 군.
일본의 역사학자 오이시 미나부가 표현한 일본의 1860년대다. 1853년 흑선습래1 이후, 일본 사회는 전례가 없는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양 오랑캐들이 언제고 나라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공포감이 전 일본 열도를 휩쓸었던 것이다. 서양 세력의 침탈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국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누가 이끌어야 하는가? 도쿠가와 막부 아래서 단결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시 천황이 다스려야 하는가? 갖가지 야망과 이상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국가의 구상과 실현에 매진했다. 이 격동의 시기를 살아간 숱한 젊은이들 한가운데에 사카모토 료마가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5,6? ~ 1867). 이 사진은 료마의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일본 근대 사진의 선구자 우에노 히코마(上野彦馬)가 촬영한 사진이다.

나가사키 가자가시라야마에 있는 가메야마 사추 터. 가메야마 사추는 훗날 가이엔타이(海援隊, 해원대)를 거쳐 미쓰비시 그룹으로 발전한다.

료마의 부츠 동상. 가메야마 사추 터 근처에 있다. 료마가 이 자리에 서서 나가사키를 내려다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 덧붙이자면 이 때 사쓰마 번 명의로 구매된 총기를 인수한 조슈 측 담당자가 이토 슌사쿠, 훗날의 이토 히로부미다.
3.
"한 번뿐인 인생, 료마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
소프트뱅크 손정의(孫正義) 회장의 말이다. 지난 2002년 아사히 신문이 실시한 "지난 천년간 일본사 최고의 리더" 설문조사에서 사카모토 료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를 누르고 당당히 1위를 거머쥐었다. 이 정도면 일본에서 료마가 어느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는지는 별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세계를 위한 넓은 비전과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는 협상력. 현대 일본인들이 료마에게서 보는 가치다.

나가사키 가자카시라야마(風頭山)에 서 있는 시바 료타로 문학비. <료마가 간다>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나가사키 중앙역 대합실에 걸린 드라마 <료마전> 포스터.
4.

나가사키 칸코도리(觀光通)에 내걸린 "사카모토 료마의 길" (1571~1899)
"도요타의 리콜 사태는 방향성을 상실한 나라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 도요타의 몰락은 20년에 걸친 경제적 병폐의 절정을 이룬다. 일본의 3,40대는 아주 작은 모험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둥지족은 방안에 들어앉아 인터넷이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초식남들은 외출하거나 자신의 일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들 세대는 자동차, 오토바이 심지어 매운 음식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들에게 창업은 불투명한 모험으로 간주된다. 히키코모리 인구의 추정치도 증가했다."

가자가시라야마로 올라가는 길. "가메야마 사추 가는 길" 이라고 이름은 그럴 듯 하지만, 실상은 절과 묘지로 뒤덮힌 달동네 오솔길이다. 염천하에 30여 분에 걸쳐 이 길을 올라간 나는 정말 땀으로 목욕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관광을 온 건지 성지 순례를 온 건지 모를 기분.
한때 일본의 상징이자 자존심으로 통하던 소니는 애플같은 혁신적 신제품을 내놓지 못한 지 오래다. 스마트폰 추세에 맞춰 PSP폰이라는 신제품을 내놓는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Out of 안중 분위기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애플 인수설에 주가가 껑충 뛰는 굴욕까지 당했다. 국가적으로도 영 비실비실해져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타이틀도 중국에 내주었고,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에 밀리는 인상이다. 위기에 처한 노쇠한 대국. 일본의 현주소다.

나가사키의 미쓰비시 중공업 조선소. 나가사키의 글로버 정원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미쓰비시 그룹은 료마가 창설한 가메야마 사추에 뿌리를 둔다.
숙소로 돌아와 Tv를 틀었다. 시사 다큐멘터리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자국 시장에 취해 세계 무대에서 뒤떨어지고 있는 일본 상품의 현실을 다루고 있었다. 심각한 사태를 맞이해 그 타계책을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에 나라를 뺏길까 노심초사하던 료마의 모습만큼이나 진지해 보였다.
잠시 Tv를 바라보던 내 눈에, 가메야마 사추 터에서 본 사람들이 오버랩됐다. 아무리 역사가 일본의 국가적인 취미활동이라고 해도, 이런 데는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든 사람들이 훨씬 많이 찾아오는 법이다. 하지만 가메야마 사추 터에서 본 사람들은

가자카시라야마(風頭山)에 서 있는 사카모토 료마 동상. 시바 료타로 문학비를 마주보고 있다.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 main the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