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의 한 장면. 왼쪽 인물이 차양주(미비부주)를 쓰고 있다.

드라마 『근초고왕』의 한 장면입니다. 왼쪽 인물이 투구를 쓰고 있죠? 제작진이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만들었다." 고 자랑하던 바로 그 투구입니다.

사극의 소품에 투자를 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어쩌죠? 저 투구는 근초고왕 시절에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 투구는 ... 일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차양주, 혹은 미비부주

사진에 나타난 투구를 차양주(遮陽胄), 혹은 미비부주(眉庇附胄)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차양(遮陽)이 달려 있는 투구(주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야구 모자를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5세기 2/4분기경부터 등장하며, 현재까지 모두 4개의 유물이 전합니다.

https://live.staticflickr.com/65535/2996310193_30b7bcb8ab_b.jpg

경상북도 고령 지산동 출토. 드라마 제작진이 참고했다는 바로 그 투구다. 5~6세기 가야의 것으로 보인다. 목 보호대 부분은 부식되어 없어졌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위 사진이 실제 유물의 모습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투구는 기본적으로 가로로 놓여진 철판을 뼈대로 놓고, 약 50여 개의 작은 철판을 사이사이에 철못으로 연결해서 만듭니다. 이렇게 뼈대가 되는 철판 세 개를 위에서부터 각각 복판(伏板), 동권판(胴卷板), 요권판(腰卷板)이라고 합니다. 그 사이사이에 배치된 세로 철판들은 단지판(段地板)이라고 하지요. 복판 위에는 반구 모양의 꼭지가 달려 있는데, 이 외에는 이전에 소개했던 종장판주와 마찬가지로 장식대가 올라갑니다.

복원하면 전체적으로 대충 이런 모습이 됩니다.

역수입의 이유

왜 이 투구가 '일제' 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차양주의 경우, 처음부터 그 양식이 상당히 완성된 상태로 나타납니다. 반면, 일본에서 발견되는 차양주는 그 발전 과정에 따라 상당히 많은 종류의 유물이 나타나며, 심지어 차양주의 형태가 아직 절반밖에 갖춰지지 않은 유물도 존재합니다.1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이 투구는 일본2에서 개발되어 발전하다가 한국으로 역수입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선진 철기 기술이 일본 내에서 발전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 애써 다른 나라의 투구를 수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엔 한국이 일본보다 뭐든지 앞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투구를 만들 기술이 모자라서 수입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투구가 고위 전사의 무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방의 작은 지배자나 고위 전사에 딸린 하급 전사의 무덤에서나 나오죠. 따라서 이 투구는 장례 의식을 위해 교역 상대국이었던 일본에서 사 왔거나, 군대의 장비를 보충하기 위해 구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드라마로 다시 돌아갈까요? 근초고왕은 백제의 13대 왕으로, 재위 연도는 AD 346 ~ AD 375 년입니다. 저 투구가 등장하기 적어도 50년도 더 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얘기죠. 게다가 근초고왕 시대의 일본에는 아직 철못과 같은 고도의 기술을 사용하는 집단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건 당시엔 아직 한반도에서만 가능했던 기술이거든요.

뭐 얼마 전에 드라마를 보니까 조선시대 사인검이 소품으로 나오고 있더군요. 이것만 봐도 고증에 대해서는 제가 더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소품 투구에 장착되어 있는 정체 불명의 기둥들은 뭐란 말입니까 OTL

* 이 드라마에 대한 본격 역사 블로거 초록불님의 포스팅 링크: [1] [2] [3]

참고문헌

송계현, , 1988

차양주의 그림은 여기서 가져왔다.

小林謙一, , 2008

이현주, ,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