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체에만 관성이 있을까?
나는 생각에도 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1.
"요새 친구들은 email 안 쓰더군요."
지난 11월, facebook(이하 FB)은 새로운 메시징 시스템을 발표했다. "FB가 email도 만든다더라." 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정작 발표장에서 마크 주커버그와 앤드류 보즈워스 이사는 "이건 email이 아니라, 새로운 메시지 시스템"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는 친구와 연락하는 방법이 아주 많다 - 메일, 쪽지, 채팅 등등. 그리고 이것들을 주기적으로 하나씩 확인한다. 덕분에 실수를 하기도 한다: 메일만 확인했는데, 정작 친구가 Twitter 쪽지로 연락해서 미처 보지 못하는 식이다. 반면, FB의 새로운 메시징 시스템은 모든 하나의 화면에서 친구와 주고받은 모든 메시지가 날짜순으로 정렬된다. 어떤 방식으로 친구에게 연락할지, 예전에 주고받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1이다.

http://mashable.com/2010/11/15/facebook-messaging-event/
2.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email 또한 환경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 환경을 잘 살펴보면, 꽤 재미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인터넷의 기원은 1960년대 미 국방성이 구축한 ARPANET이다. @ 기호를 포함한 email의 기원도 역시 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1971). 이 시기,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하는 것, 편지를 쓰는 것 뿐이었다. 특히 조금 분량이 많거나 중요한 연락은 우편을 통하는 것이 상식2이었다. 인터넷3 접속은 아주 희귀한 경험이었다. 컴퓨터 네크워크를 연구하는 사람도 하루 종일 온라인 접속을 하지는 못했다. email이 급속도로 확산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email이란 이름 그대로, 종이 편지 시대에 만들어진 종이 편지의 전자 버전이다. email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은 편지함" 을 클릭한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온갖 광고 메일과 카드 고지서들을 확인한다. 왜 그런 건지, 생각해 본 적 없으신가? 종이 편지에서는 연애 편지든 관리비 고지서든 한 우편함에 들어가는 게 당연하니까. 진짜 우편함이 그렇게 쓰이니까 그것의 전자 버전도 똑같이 쓰는 거다. 어쨌거나 이런 환경에서, email은 꽤나 쓸모 있는 물건이 될 수 있다. 종이에 쓰다 오자 내는 걸 걱정할 필요도 없고, 편지가 늦게 배달될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외출했다 들어오면서 우편함을 확인하듯이, 하루에 한두 번 접속해서 메일 계정을 확인해주면 된다. 조금 방식이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종이 편지와 비슷한 방식으로 쓰면 된다.4

http://www.flickr.com/photos/30813729@N00/4023174844/
이쯤 가고 보면, email이라는 석기 시대적 유물이 어떻게 아직까지 버티고 앉아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저 물건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지 않았나? 그런데 왜 아직도 남아 있는가? 나는 이것이 관성(Inertia)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

http://www.flickr.com/photos/eric-omba/481762682/
email이 아직 쓰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email이란 "인터넷에 당연히 있는 것" 혹은 "쓸모가 있는 것" 이다. 그게 필요 없다거나, 없어져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거의 안 해봤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email은 인터넷이 탄생하던 순간부터 함께 있었으니까. 그 생각이 관성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FB의 새 메시징 시스템은 "관성을 벗어난 그 무엇" 이라고 할 수도 있다. FB의 새 메시지 시스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메시지에 제목을 적을 필요가 없으며, 제목을 적으면 자동으로 email과 같은 형식으로 인식된다는 것. 참신해 보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요즘 같은 환경에서 이건 당연한 것이다. "ㅋㅋ" 같은 용법에서 알 수 있듯이, 요즘은 문자 형식으로 저장된다고 다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 휴대폰 문자가 "글"은 아니지 않은가. 글이 아니니까, 제목 같은 것도 필요가 없다. "email은 글이다." "글이니까 당연히 제목이 있어야 한다." 이라는 생각이 가진 관성 때문에 그걸 놓치고 있었을 뿐이다. 뒤집어 말하면, FB가 새로운 메시징 시스템을 만든 건 관성에 휩쓸리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다.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는 건 엄연히 "글"이 아니라 "대화" 다. (주인장이 오덕이라는 건 아니고 그저 참고 이미지일 뿐임.)
바야흐로 통찰력에 굶주린 시대인 모양이다. 통섭이니 인문학적 통찰이니 하는 것들을 다루는 책들이 서점가를 메우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나같은 듣보잡이 이런 주제를 논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니까.
하지만 적어도 어떤 통찰력 혹은 혁신은, 생각이 가진 관성에 휩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언어와 사고의 관성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 어떻게 보면 이런 이야말로 비판적 사고의 달인이고, 진정한 자유인일 것이다.
<추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좀 더 자세히 부연 설명. 일단 email이라는 매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개인 대 개인의 사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기업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 사용되는 도구라는 점이다.
본문에서 설명한 내용은 엄연히 첫 번째 의미인 사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email이다. 이 쪽에서 email은 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친구한테 연락하는 방법으로 훨씬 좋은 것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특히 FB의 새로운 메시징 시스템의 경우 친구와의 커뮤니케이션에만 집중할 뿐 email이냐 문자냐 하는 매체를 고르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부분만은 email이 유물이 되어버린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email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이미 진행중인 업무에 email이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새로운 무엇인가로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업무 도구의 측면에서는, 이러한 고착 효과가 email이 가진 최고의 강점이다.
따라서 email에 종말이 온다면, 더 우월한 무엇인가에 의해 도태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호환성을 유지한 채 새로운 메시징 시스템에 흡수 통합되는 방식으로 사라져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마 제국이 명확한 멸망을 겪지 않고 중세 유럽으로 녹아 들어갔듯이. FB의 새 메시지 시스템도 비슷한 측면에서 보고 있다. 뭐 주커버그도 로마사 덕후라니,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