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왕국의 사정
1199년 7월, 1차 십자군은
문제는

예루살렘의 성곽. http://www.flickr.com/photos/tierecke/251262332/
솔로몬 성전의 기사들
그러던 1115년, 위그 드 페이Hugues de Payens라는 기사 한 명이 성지에 도착했다. 이 괴짜 기사는 1118년부터 야파Jaffa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자원 봉사를 시작했다. 물론 혼자서는 힘든 일이었기에, 그는 북프랑스에서 온 다른 기사 일곱 명을 설득하여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다. 위그와 일곱 기사들은 대주교 앞에서 청빈, 자선, 순종의 계율을 지키며 순례자들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고 순례자들을 지키는 임무에 투신했다. 성스러운 전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개념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성스러운 전사의 개념 자체가 오래 전부터 있었던 데다가, 1차 십자군에서도 함께 싸우고 전리품을 공유하기 위해 기사들이 단체3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도 수도원을 지키기 위해 모인 기사들이 비슷한 단체를 만든 적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기존의 기사들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거나 수도원에 대한 소극적인 수준의 보호에 머무른 반면 위그와 그 친구들은 아예 최전방인 성지에서 적극적으로 순례자들을 보호한다는 점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 TempleMount 위에 있다. http://www.flickr.com/photos/chris-yunker/2104426299/
*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템플러 역시 여기서 유래한 것이 맞다. 하지만 철자가 약간 달라서, 게임 속의 템플러들은 Templer로 표기된다.
기사 제도와 결합한 수도원 운동
예루살렘 왕국의 인정을 받긴 했지만, 템플러들은 아직 "

새로운 십자군을 요청하는 위그를 만나본 베르나르는 그에게 큰 호감을 느꼈다. 위그와 그의 기사들을 시토 수도회의 군사 버전으로 봤던 것이다. 사실 템플러들과 시토 수도회의 구성원들은 의외로 닮은 점이 많았다. 시토 수도회의 choir monk들이 흰 옷을, lay brother들은 갈색 옷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4, 템플러의 기사들은 흰 옷을 입고 그 이하의 구성원들은 갈색 옷을 입었다. 침묵을 중요시하고5 호화로움을 배격하는 생활 태도6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베르나르는 템플러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전장에서 싸우는 주의 전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베르나르는 위그에게 템플러들을 위한 규율을 제정해 주고 모병을 도와 주겠다는 약속7을 해 주었다.
이듬해인 1128년, 위그는 트루아(Troyes)에서 열린 공의회에 참석한다. 베르나르는 이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템플러들을 위해 작성한 규정들을 보내 승인하게 했다. 템플러들에게 시토 수도회적 계율을 부여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유럽 각지로 편지를 보내, 신을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소명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전 유럽이 예루살렘 왕국을 지키는 성스러운 전사들에 열광한 것은 물론이다. 하루아침에 템플러들은 유명인사가 되었고, 전 유럽에서 기부가 쏟아져 들어왔다. 대주교가 지급하던 쥐꼬리만한 지원금이 전부였던 때와는 천차 만별이 된 것이다.

기도중인 템플러 전사. http://www.flickr.com/photos/8765199@N07/5076480131/
더 중요한 것은, 템플러가 이후 생겨나는 기사단들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기사 단체와는 달리 이들은 수도회적인 계율을 따랐다. 수도원의 계율은 금욕적인 생활과 수도원 원장에 대한 절대 복종을 중요시한다. 템플러를 비롯한 기사단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들은 일반 수도사들과는 달리 고기를 자주 먹었다는 점8과 기도 대신 전투 훈련을 더 중시했다는 점 정도가 달랐을 뿐이다. 템플러를 첫 번째 기사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리고 템플러들의 계율은 훗날 모든 기사단 규정의 기초가 되었다.

남프랑스에 있는 템플러들의 요새와 교회. http://www.flickr.com/photos/kimbach/2806101317/

- 아랍인들이 그들을 지칭했던 말을 따라 흔히 프랑크인이라고 부른다. [본문]
- 십자군 원정의 명분이 순례자들의 안전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뭔가 좀 이상하다 느낄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글쎄... 이라크에 진주한 미군이 당장 조직과 집회의 자유부터 금지한 걸 보면,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본문]
- Brotherhood, 혹은 Confraternities. [본문]
- choir monk는 사제, 즉 신부 등의 성직을 맡을 수 있는 수도사를 가리키고, lay brother는 성직을 맡지 못하고 속세의 일을 하는 수도사를 가리킨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절에서 참선을 하는 이판승(理判僧)과 살림을 맡아 하는 사판승(事判僧)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본문]
- 침묵을 중요시하는 수도사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나와 있다. 기사 참조. [본문]
- 시토 수도회는 제단이 검소한 반면 템플러들은 무기에 금붙이 등을 쓰지 않았다. 당시엔 무구에 호화로운 장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본문]
- 덧붙이자면, 베르나르는 20여년 뒤 제 2차 십자군을 일으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본문]
- 이유는 간단하다: 전투를 위해서는 체력을 유지해야 하니까. [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