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수입사(史)의 인식

우리 솔로부대는... 하나다!!
요즘 계집애들은 걸핏하면 사랑 사랑 하니 모두들 기생이 되겠단 말이냐, 갈보가 되겠단 말이냐? 원 그런 해괴한 말법이 어디 있어? 설사 내외간이라도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고 받드는 것이요 남편은 처가속을 돌아본다고 하지, 사랑이라는 말을 어디에 써?춘원 이광수의 <여자의 일생(1934)>에 등장하는 한 중년 부인의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20세기 초 사랑, 혹은 연애란 한국의 기존의 사회 체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풍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전근대 한국 사회의 결혼에서도 부부 간에 애정 같은 것은 설 자리가 없었다. 대가족 체제의 축은 부부가 아니라 부자 관계였으며, 여성은 아내이기 이전에 며느리 그리고 어머니였다. 부부 사이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애정이라기보다 공경과 분별이었다. 부자 사이에서도 함부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사회였으니, 부부 사이의 애정 같은 것은 바람직하다고 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대의 기성 세대가 사랑이라는 말에 "그런 해괴한 말법이 어디 있느냐?" 며 반발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부부간의 애정 -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의 연애를 용납하지 않던 사회적 분위기는 1920년대에 들어 달라지게 된다. 이 시기는 쉽게 이야기해서, "현대 문명에 뒤떨어진 미개한 한민족을 바꾸어 보자!" 라는 이른바 민족 개조론의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현대적 사회의 기본 단위는 부부 관계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소위 '스위트 홈')이지, 부자 관계를 중심으로 한 대가족 제도가 아니다. 그러니 사회를 개조하려면 일단 구식의 가족 제도부터 개조해야 한다. 자연히 대가족 제도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연애 열풍이 불었다. 부모가 정해 준 조혼 상대에 결별을 선언하는 남자들이 일반화된 것이나 <사랑의 불꽃>과 같은 연애 서간류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것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의 반영1이다.

물론 연애 열풍보다 미래에 투자하는 태도가 훨씬 건전하고 유익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에서 연애라는 풍습은 수입된 지 100년도 채 안 되는 풍습이다.
근대의 폭력, 근대의 야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연애라는 풍속은 만들어진 지 채 200년도 안 되는, 수입된 지는 100년도 안되는 풍속에 불과하다. 따라서 연애를 "그 방법을 배워서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으로 보는 것, 솔로들을 "노력을 기울여서 탈출해야만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 로 보는 것은 매우 부당할 수밖에 없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최신 유행'이라면, 자기 의지에 따라 안 할 자유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솔로들은 그 자유를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매우 실제적인 질문: 연애하는 데 시간과 돈을 다 쓴다면 덕질은 언제 하고 지를 건 어떻게 지르겠는가?
마지막으로, 끝까지 우리 솔로들을 뭔가 모자란 존재로 끌어내리려 하는 군상들에게 바치는 말과 함께 이 글을 마치도록 한다:
자칭 솔로들을 위한다고 하는 잔소리쟁이에 지나지 않는 이 커플부대원들과 연애 지상주의자들, 그리고 겁쟁이 싱글 반군4들은 다 가버려라! 역사의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쓰레기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