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박용성을 위한 변명의 토막글입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전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중앙대학교는 (2008년 이후) 철학과 학생이든, 예술대 학생이든 의무적으로 회계학을 들어야 한다. ... 노영수씨는 이 같은 기업식 구조조정에 반발해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이다 지난 4월 퇴학당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 "기업에서만 필요로 하는 학문을 왜 학생들이 자기 돈 내고 배워야 하는가"라고 맹비난했다. 대학이 "학문적 가치가 아닌 기업에 맞춰진 인재만을 양성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김누리(독어독문학과 교수) 중앙대 교수협의회장은 ... "회계학을 전 학생에게 가르쳐 어느 중간 기업이라도 들어가라고 하는 건 박 이사장이 학생들을 깔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회계도 교양이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교양이다.


우선 이것부터 말하고 시작하자. 나는 박용성 회장의 중앙대 구조조정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그걸 시작하고 인터넷에 뜨는 기사들이 하나같이 웃겨줘서1 심심하지는 않다는 생각 정도다. 뭐, 남의 학교에 신경 쓸 여지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하지만 딱 한 가지에 대해서만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회계 과목 관련 논란 말이다. 박용성 체제 출범 이후, 중앙대학교는 회계 관련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여 전교생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박 회장에 대해 비판적인 일각에서는 이를 "재벌기업이 대학을 망가뜨리는 대표적인 예" 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박 회장을 비판하는 글에서 이것이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오히려 1번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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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회계 문서. 루브르 박물관 소장. BC3200~BC2700. http://en.wikipedia.org/wiki/File:Economic_tablet_Susa_Louvre_Sb3047.jpg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회계도 교양이다. 그것도 훌륭한 교양이다. 따라서 필수 과목으로 가르칠 이유가 충분하다. 대학 교육의 목적이 비판적인 교양인 양성에 있다고 생각하든 실용적인 직업 교육이라 생각하든 말이다. 따라서 회계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교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회계가 교양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일단 교양이 뭔지부터 살펴봐야 할 듯하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 문제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교양이라 불리는 것들이 가져 온 특징 두 가지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하나는 교양이란 "전문적 지식을 얻기 전에 익혀야 하는 필수적인 능력으로서, 중세의 대학 교육에서 비롯됐다."는 것, 또 하나는 "교양이란 순환 정의된다." 는 점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종합적 판단을 위한 능력으로서의 교양


교양을 영어로 리버럴 아트(Liberal Art)라고 한다. 이 말은 자유 학예(自由學藝)라고도 번역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Art"라는 말이다. 보통 예술이라고 번역하지만, 사실은 좀 더 의미가 넓어서 기술이나, 방법까지 의미하기도 한2다. 즉, 교양이란 지식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일정한 "능력"에 좀 더 가깝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능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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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대학 정문. 1257년 설립. 프랑스 파리. http://en.wikipedia.org/wiki/File:Lasorbonne_photo2.jpg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유럽에서 대학이라는 조직이 생겨난 것은 1200년대 부터였는데, 법학/신학/의학 등의 고급 지식을 가르쳤다. 문제는 당시 이런 책이라는 게 몽땅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된 책이었다는 것.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양 법의 가장 큰 뿌리는 고대 로마 공화국의 법3이다. 성경책 자체가 그리스어/라틴어4로 되어 있었던 데다가 그리스/로마의 철학을 방법론으로 사용했으니, 신학책도 전부 라틴어였다. 의학? 유럽인의 대부분은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눌러 앉은 야만인의 후손들이었으니, 변변한 의술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제대로 된 걸 공부하려면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그리스 어로 쓴 책으로 공부해야5 했다. 그리고 이 말들은 일상 생활에서는 쓴 적도 없는 말들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학에 입학했다고 당장 전공 공부를 시키질 못했다. 일단 그리스 어/라틴어 문법을 확실하게 공부시켜야 했고, 수사학이나 논리학처럼 사리 판단을 하는 방법도 공부시켜야 했다. 그래서 전공 공부를 하기 전 학생들을 기숙사("칼리지(college)")에 한꺼번에 잡아다 놓고 공부를 시켰다. 이것이 현재 대학(College)의 기원6이며, 여기서 가르치는 것이 Liberal Arts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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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포드 대학. 13세기 중반에 세워졌다. http://www.flickr.com/photos/jimmyharris/2524642852/

이렇게 대학이란 원래 인류 사회의 지적 자산을 이어받을 능력을 기르는 곳이었고, 입학생이 늘어나면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사회 지도층으로 진출할 학생들도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인류의 지적 자산을 이어받아 나가기 위한 기본 능력을 기르거나 사회에 나가서 지도층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건 사물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바로 이걸 위해서 전문 지식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일반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종합적 판단 능력과 이를 위한 균형 잡힌 일반적 지식의 총체, 이것이 교양이다. 꼭 그걸로 먹고 살 것은 아니더라도 종합적 판단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해야 했던 것이다.

교양인 집단에 끼기 위한 지식으로서의 교양


그렇다면 그 "교양" 에 구체적으로 어떤 지식이 들어가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독일의 영문학자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7이 답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왜 반 고흐가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끼는지, 프리츠 폰 우데의 작품 <감자 깎는 여인>이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에 못지않은 강렬한 표현력을 갖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우데를 잘 모르는지, 이 문제에 대해서 교양인들 스스로도 설명을 하지 못한다.

- 인성기 역, 『교양: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들녘, 2001, pp.57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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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관람하는 사람들. 뉴욕 현대 미술관(MoMA).

왜 그런 것일까? 이것은 교양이고 저것은 몰라도 되는 것이라면, 교양인이 그걸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알고 있는 것 아닐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교양이란 순환 정의되기 때문이다. "교양을 몸에 익힌 사람이 교양인이고, 교양인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이 교양" 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교양에 들어가는 지식의 집합이 사회상을 반영해서 조금씩 변하긴 하지만, 그 속도가 엄청나게 느린 것은 당연하다. 좀 시니컬하게 말해서, 교양을 "소위 배웠다는 것들끼리 살롱에서 어울릴 때 쓰는 고급 사교술" 정도로 정의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제 교양이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으니, 이어지는 글에서는 회계가 교양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1. 어린애들 다툼에서나 할 것 같은 쪼잔한 짓을 하질 않나. 유치한 오버 액션을 해서 보는 이의 손발을 절로 오그라들게 하지 않나. [본문]
  2. 손자병법을 영어로 Art of War라고 한다. 전쟁술(戰爭術)! [본문]
  3. 지금도 법대 과목 중에 "로마법" 이 있다. 이게 괜히 폼으로 있는 게 아니다. [본문]
  4. 구약성서는 히브리 어, 신약성서는 그리스 어로 쓰여졌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본문]
  5. 아직도 의사들은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이름을 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이게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본문]
  6. 반면 전문적인 학문은 대학원으로 분리됐다. [본문]
  7. 이 책은 일종의 실용서로서, 교양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담았다기보다 교양의 특징은 어떠하며 그 대체적인 틀은 어떠한지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교양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750쪽이 넘는다. (-_-) 누구 말따마나 이 책은 "취업대비용 상식책 아님. 퀴즈프로용 예상문제집 아님." 차라리 무기일지도 [본문]
2011/03/31 09:49 2011/03/3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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