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박용성을 위한 변명의 토막글입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전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교양에 대한 세 가지 오해


교양이라고 하면 흔히 클래식 음악이나 철학, 미술에 대한 지식을 떠올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교양의 개념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전에 밝혔듯이, 교양의 개념은 사회와 함께 변해 왔으며 또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변해야 한다. 교양은 고정된 것이라는 생각, 이것이 교양에 대한 첫 번째 오해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교양인 집단은 해체되고, 사회는 급속도로 변했다. 덕분에 지금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교양의 이미지는 늦어야 막 20세기 넘어올 때까지만 유효하던 것들이다. 컴퓨터나 비행기가 없던 시절의 유물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그 낡아빠진 교양 개념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건가? 확실해요? 그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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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덧셈 뺄셈을 못한다고 하면 교양인은커녕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8세기 서양의 신사들은 산수를 할 줄 몰랐다. 그게 교양으로 취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배웠던 수학은 도형의 성질을 다루는 기하학이었다. 증명 방법을 공부하는 거니까 논리 공부에는 최고지만, 숫자 감각이 필요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요즘 세상에선 어린이가 산수를 배우지 않으면 교양인은커녕 커서 사람 구실도 하기 힘들어진다. 마찬가지 아닌가? 산수가 교양, 아니 그 이상으로 필수적인 커리큘럼이 되었듯이, 회계도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이다.

교양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교양을 실용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교양은 실용의 반대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꽤 가깝기도 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면 어느 정도 실용적인 성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전통 사회에서 선비들의 필수 교양이던 논어(論語)를 생각해 보자. 지금은 논어를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구름 위의 몽상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공자가 살던 시대에 그의 사상은 전란의 세월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실용도 100%의 개혁 플랜이었다. 논어에 의하면, 나라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 당장 시행해야 하는 것은 "국가재정을 낭비하지 않는 것" 이다. 매우 실용적인 지침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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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tao_zhyn/442965594/

세 번째는, 교양은 정신적인 것이며, 돈 같은 물질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건 좀 많이 심각하다. 아직도 이딴 헛소리를 하는 중생이 있다면, 철학에서 말하는 유물론에 대해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물질적 생산 방식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논한 마르크스가 (정작 그가 제창한 공산주의는 망했음에도) 왜 역사상 최고의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바란다. 물질을 모르면, 우리가 사는 현실의 전체적인 모습은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그 물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교양의 당연한 책무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한 편 더 남았어요. -_)
2011/04/01 07:27 2011/04/0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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