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CRITIQUE by 고어핀드 2011/10/30 00:57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정답보다 더 중요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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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wonderlane/5510326235/

2008년 말이었다. 연말에 지인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원형의 탁자 주변에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앉았다. 내 맞은편에는 K형과 그 여자친구 P양이 앉았다.

당연하지만, 나를 빼고 모두 커플이었다. 다들 짝이 있는데, 나 혼자만 덜렁 혼자 앉아 있었다. 그 꼴이 어지간히 기이했던 모양이다. 이야기가 오가다가, P양이 물었다.

"고어핀드 군은 왜 혼자 왔어요?"
"아, 저요? 전 연애 같은 거 안 해요."
"왜요?"
"왜라뇨?"
"그러니까, 왜 없냐구요."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어서요."
"왜 그런데요?"
"예?"

난생 처음 접하는 황당한 문제였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때까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예로부터 여성들이 지적하는 내 단점은 너무 많아서 책 한 권을 채울 정도였고1, 그렇기 때문에 정답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고민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게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어쨌건 나는 궁금한 건 못 참고 넘어가는 성격이다. 덕분에 이 아리송한 문제는 내 머리속 한 켠에 꽤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거의 2년 동안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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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aminorjourney/281669612/

아리송한 문제를 좋아하기로는 IT기업들만한 데가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google이나 facebook 같은 유수의 기업들에서 지원자들에게 낸 문제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창의력을 중요시하는 회사 답다는 평가를 받는, 톡톡 튀는 퀴즈들이다.

사실, 이 문제를 못 푼다고 해서 탈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락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종이와 연필을 주고 프로그램을 짜보라고 하던지, 복잡한 코드를 주고 그것의 실행 결과를 묻는다던지 하는 것 말이다. 퀴즈 같은 문제들은 굳이 못 맞춰도 상관이 없다. 그걸 맞춘다고 해서 합격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참고 수준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굳이 풀어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지원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어떻게 접근하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문제에 도전해야만 하는 최신 IT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자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꼭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황당한 문제를 동원해서라도.

3.

그러면 위 문제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글쎄, 나는 아직도 그 답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이 문제의 답은 이 문제 안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을 그만둔 것 또한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은 이랬다: '이 목록2에서 이것 이것이 정답이지.' P양이 질문을 던진 뒤에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목록에서 더 좋은 답을 찾아봐야겠군' 이런 접근 방법은 혼자 하는 일에서는 꽤 좋은 방법이긴 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내가 풀고 있는 문제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일에 혼자 하는 일의 잣대를 들이대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를 말해 준다. 극도로 자기 중심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인간. 이쯤 되고 보면 구체적인 정답 따위가 무엇이었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답을 구하는 태도 자체가 틀려먹었으니까. 굳이 이야기하자면,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오답 그 자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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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Social Network』를 보면서도 주인공이 왜 막장인지 잘 몰랐음(...)

4

"sns 명망가를 영입한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전날 서울시장 선거에서 대패한 여당에서 내놓은 대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젊은 층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sns명망가를 영입하겠다." 참고로 내가 밥을 먹고 있는 곳은 서초구 한복판, 교대역 근처에 있는 중국집이었다. 여당 후보에게 60%나 되는 표를 던진 곳이란 말이다. 그런 곳에서 비웃음을 사고 있으니, 다른 곳에서는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있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한나라당의 반응이 야유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건 이유가 있다. 저런 식의 접근 자체가 그들이 소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잘 하는 사람한테 대신 해달라고 하자.' '그렇게 하면 굳이 행동을 바꾸지 않아도 미움을 덜 받을 것이다.' 기본 개념 자체가 이딴 식으로 박혀 있는데,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까?

복잡한 문제에는 답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러다보면 오답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잣대를 들이대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 이것 자체가 한나라당 지도부가 어떤 인간들인지 말해 준다. 까놓고 말해 한나라당이 어떻게 하면 적당하겠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답 따위가 무엇이었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답을 구하는 태도 자체가 틀려먹었다고, 인간들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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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ascobz.com/windows-8-features-metro-inspired-blue-screen-death/

하기야 저 친구들 문제만은 아닐 게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턱도 없는 접근 방법을 가지고 문제를 풀겠다고 하다가 삽질한 사례가 책 한 권이 넘게 나온다. 세기의 천재들도 그 정도니, 우리같은 범인들이 그와 같은 실수를 주구장창 반복하고 있다고 해서 딱히 탓할 일은 못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그래도, 또다른 궁금증은 남는다: 우리는 과연 있는지도 모르는 정답에 정신이 팔려, 얼마나 많은 문제들에 잘못 접근하고 있는가.

* 그런데 내가 저걸 깨닫고 변했느냐 하면... 내 성깔에 그럴 리가 없지요. 그전에는 차라리 '아 난 도대체 뭐가 문제지 ㅠㅜ 바뀌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는데, 그 뒤로는 '뭐 이렇게 타고 난 게 내 잘못은 아니지 ㅇㅇ' 싶어서 아예 관심을 꺼 버렸다. 뭐 그래도 마음 하나만은 편해져서 좋은 것 같긴 한데... 하기야 저 마음 편한 것만 생각하는 것도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지
  1. 범생이, 이상한 취향, 못생긴 얼굴, 최악인 패션 감각, 이성 앞에서 움츠러드는 콩알만한 자신감, 그리고 그리고... [본문]
  2. 여기 이거↑. 뭐 이것도 최근엔 많이 변해서 상당 부분 과거형이긴 하지만. [본문]
2011/10/30 00:57 2011/10/3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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