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CRITIQUE by 고어핀드 2012/02/09 10:29

악마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악마가 지나간 자리를 본 적은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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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smb_flickr/2299094320/

학교 생활이 어떤 모양새가 되었건 간에, 한 해를 함께할 급우를 확인하게 되는 학년 첫날은 누구에게나 각별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는 몰랐지만, 내게도 4학년의 첫 날은 묘하게 각별한 날이었다. 급우 한 명이 학교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정이 있다 한들, 학년 첫날은 한 해의 시작이고 따라서 웬만해선 오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 '보통' 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이상한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 애와 지난 학년을 함께 한 아이들이 수근거리는 걸 듣자니, 그 아이(여자애였는데)는 지금 정신 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아직도 그 날을 생애 처음 마주친 황당함과 함께 기억한다.

일찍 수업이 끝나고, 형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형은 나보다 두 살이 더 많다. 얘기를 꺼냈다. "있잖아, 우리 반에, 한 명 오늘 못 왔다. 정신병원에 있대." 반응은 뜻밖이었다. "어? 너네도 있어?" 형네 반에도 한 명이 같은 이유로 학교에 못 왔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 쪽은 남자였다. 학교에 못 와서 얼굴은 못 봤지만,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고 얼핏 들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오늘 학교에 못 온 그 아이도, 두 살 많은 오빠가 있었던 것이다.

2.

나는 그 아이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은 세월이 흐르는 새 잊어버렸기 때문이지만, 얼굴은 그 때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 아이는 학교에 나오는 날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와서도 말이 없고 항상 조용했었다. 대화하는 모습, 어울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래, 그 애에 대해서는 더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으니, 그 애의 아비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더 낫겠다. 나는 그의 아비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은 있는데, 우리 형이 교무실에 찾아온 그를 본 것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더라."

한 마디 뿐이지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는 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모자라고 개념 없는 사람이라도, 자식이 다니는 학교 찾아올 때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격식을 갖추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맨발에 슬리퍼로 왔댄다. 그 아비란 사람이 자기 자식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더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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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sacred_destinations/2810883527/

그 사람의 태도에도 곡절은 있는 모양이었다. 듣기에, 그는 꽤 잘 나가는 치과의사라고 했다. 하지만 전처와 이혼을 했고, 지금은 후처와 함께 산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불행한 남매는 전처 소생이었다. 그 아이가 왜 정신병원에 보내졌는지, 왜 항상 말이 없고 주눅이 들어 있는지, 부모에게서 어떤 대접을 받고 사는지는 어린 내 눈에도 빤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어느 금요일 밤, 9시 뉴스를 통해 열 살 남짓한 소녀가 아버지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3.

뒤이은 월요일 아침, 시끌벅적해야 할 초등학교 교실은 복도서부터 무서우리만큼 조용했다. 교실에 들어서니, 그 아이가 앉던 자리에 흰 꽃다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아이와 가까웠던 몇몇 소녀는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련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까. 당시 전국이 발칵 뒤집어졌기 때문에 아직도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게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이런 사태가 필연적이었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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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lickr.com/photos/jlwelsh/2393874768/

그 아이에 대해, 아니 남매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선생님들이 그 남매에게 점심과 저녁을 챙겨 먹였다는 것이다. 집에서 제대로 먹이질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몰랐던 게 아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남매는 끔찍한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성장기에 제대로 밥을 먹지도 못했으며 오히려 폭행을 밥 먹듯 당했다. 하지만 아무도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4.

1998년, 영훈이 남매 사건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와 계모가 어린 남매를 학대해 누나를 굶겨 죽인 사건이었다. 죽은 누나는 집 앞마당에 암매장된 채로, 당시 6살이던 동생은 뼈만 앙상한 채 사망 직전에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아동학대 문제를 공론화시킬 정도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지만, 아직 중학생이었던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냥 예전에 본 영화 Tv에서 다시 틀어주는 느낌이었달까.

뭔가 충격적인 일이 벌어질 때면, 입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나서서 당사자들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저자거리에 악마라도 나타난 것처럼.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문제를 또다시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반에서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을 때 당사자들을 비난하는 반의 반만큼이라도 재발 방지 대책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학대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법적/사회적 개입이 가능하도록 했다면, 영훈이 남매에게 같은 일이 반복될 필요도 없었다.

5.

http://www.flickr.com/photos/sacred_destinations/2562889644/

가리옷 유다의 발을 잡아당기고 있는 악마.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 연재된 아동 학대 관련 연재기사([1], [2], [3])를 읽다가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딜 가나 극단적인 "또라이"는 있기 마련이지만, 읽다 보니 이런 류의 또라이는 아직도 꽤 흔한 모양이다. 사고를 친 당사자 입에서 "내가 내 자식 때리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같은 말이 튀어나오고 있는 걸 보면 자기가 저지른 일이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미성년자를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어딘가에 딸린 부속품 취급하는 사고방식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겠다. 미성년자를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으니, 내가 내 물건 마음대로 하듯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기야 "학생에게 무슨 놈의 인권이냐"라는 헛헛한 소리가 백주 대낮에 울려퍼질 수 있는 걸 보면 이런 류의 사고방식은 어딘가 음침한 구석에만 박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1].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악마를 만들어내는 사고 방식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한, 우리는 악마를 비난할 자격이 없으며 오히려 악마의 조력자다.

  1. 물론 아직 체벌 외에 별다른 처벌 기제가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인권 조례 시행으로 인해 체벌이 불가능해지면서 학생 지도에 어려움이 있을 것임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러면 거기에 대한 대안을 공론화할 일이지, 인권이 없다고 할 상황은 아니다. 있네 없네를 논하는 순간 그건 이미 인권이 아니다. [본문]
2012/02/09 10:29 2012/02/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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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
    2012/02/09 10:53
    악행앞에서 침묵하는걸 중립적인 위치라고 핑계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악행을 방관하는 거야말로 진정한 악행이란 말씀이로군요. 불이 났으면 끄려고 해야지 불구경을 해선 안될 일입니다.
    • 고어핀드
      2012/02/12 23:17
      일단 총론적으로는 그렇고, 좀 더 디테일하게는 아동학대 같은 건에 사람들이 분노만 하지 않고 끝났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재발 방지 대책이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노는 위선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2. 시쉐도우
    2012/02/16 20:13
    잘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아직도 아동~청소년의 양육은 본질적으로 '부모가 알아서 잘~' 책임진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그게 넘쳐서 "내 자식(껄?)을 내가 맘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투의 소유물로 보는 관념이 강한 것 같습니다.

    법원에서 종종 비행을 저지른 부모에 대해서 친권박탈과 같은 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인터넷 상에서 문제가 되는 걸 봅니다만, 법원도 생각이 없어서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부모를 대신해서 양육해줄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미국이나 서유럽이었다면 친권박탈+장기 복역 확정일 텐데도 말입니다)

    그런 고민 하에서는 개별적인 개입노력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사회적인 관념의 변화,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또한 변화된 관념에 의해서 지지되어야 하는) 사회적 양육시스템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 고어핀드
      2012/02/17 16:45
      예, 저도 사실 미국 같은 데서 친권을 박탈하고 법원에서 대리 후견인을 지명하는 것, 그리고 당당한 직업을 가지고 소득도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그걸 맡아서 하는 게 참 인상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쉐도우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애시당초 그런 기반이 있으니까 국회에서도, 법원에서도 친권 박탈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겟죠. 서구 선진국에서 그런 제도가 발달해 온 역사를 고찰해 보는 것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확장하자면, 어떠한 사회적 제도를 개선할 때 그 제도 자체에 관심을 쏟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필요한 기반 시스템을 확충하는 것 역시 선결과제로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후자에 대해서는 대체로 사람들이 관심을 덜 가지더군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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