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쓴 편지

CRITIQUE by 고어핀드 2011/12/31 15:41

손글씨의 시대는 갔지만,

손으로 쓴 편지만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1.

http://www.flickr.com/photos/gorekun/5456929895

편지 쓰는 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내 American Wing Cafe에서.

지난 2월이었습니다. 뉴욕에 배낭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평소 지인들에게 뭔가 선물을 해줘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직장 다닐 때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먹을 거 한두 상자 사와서 함께 나눠 먹으면 됐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학생이기 때문에, 선물도 따로따로 해야 했습니다. 반면 직장생활 등을 하면서 제 인간관계는 엄청나게 넓어졌죠.

생각을 하다가, 뉴욕엔 UN 본부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UN은 일반 국가와는 달라서 여권도 따로 있고 우표도 따로 있습니다1. 무엇보다 UN 본부 구내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면, UN 우표와 소인이 찍혀서 발송됩니다. 말 그대로, 뉴욕에서만 가능한 선물이 되는 거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됩니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이곳 저곳에서 엽서를 사서 지인들 앞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사이에 조금, 박물관에서 조금... 거쳐갔던 곳이 다양했던 만큼 엽서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엽서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경제부 기자 앞으로는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산 엽서를,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는 친구에게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오래된 기타가 그려진 엽서를 보내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배달 사고가 난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사히 전달되었습니다. 다들 굉장히 좋아하시더군요. 그럴 만도 했죠. 받는 이 한사람 한사람에 맞춘, 유니크한 선물이었으니까요.

2.

http://www.flickr.com/photos/gorekun/5477477623

발송을 기다리는 엽서들. 파란색 우표는 한국을 포함한 해외용으로 98c, 흰 색 우표는 미국 국내용으로 37c다.

처음엔 좀 특이한 기념품을 주려는 의도에서 시작했던 것입니다만, 이 일로 인해 깨달은 게 있습니다. 비록 손글씨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으로 쓴 편지마저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라는 것이죠. 손글씨가 희소해진 세상에서 직접 쓴 편지는 인쇄된 문구보다 훨씬 정감이 가고 정성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일일이 편지를 쓰다 보면, 상대방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는 사람이든 받는 사람이든, 뭔가 오랫동안 남는 것이 있는 선물이라는 얘깁니다. 돈으로 때운 선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런 류의 선물은 흔치 않지요.

3.

정신없이 한 해가 가고, 어느덧 연말을 맞았습니다. 자주 못 뵙는 분들한테 그냥 넘어가기는 뭐해서, 새해 인사로 뭔가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뉴욕에서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요. 당장 달려가서 연하장하고 편지지를 샀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썼지요. 단체 앞으로 보낸 것도 있고, 개개인 앞으로 쓴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미 한 해가 다 가서 많은 사람들한테 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한 장씩 써서 연하장에 동봉해서 보냅니다.

4.

어느 새 일년이 다 지나갔군요. 제 블로그에 와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 새해부터는 여러분들도 지인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관계가 돈독해지길 바랍니다.

새해에도 행복하세요! :)

+1. 하나만 더: 아래는 제 필적. 내용은 노래 가사입니다. 남자 글씨가 맞냐(...)는 소리 자주 듣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거 알아보시면 조단엄마(...) 팬 인증.

+2. 올해는 미리 준비를 못 해서 그냥 산 연하장을 보내 드렸는데, 내년부터는 Custom-Made 카드를 찍어서 보내드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연하장도 유니크한 게 좋으니까요. 가능할지는 모르지만요
  1. 바티칸 시국하고 비슷. [본문]
2011/12/31 15:41 2011/12/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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