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다고' 반드시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예 안 해본 사람'은 죽었다 깨도 모르는 게 있다.

바로 그 분야에 대한 '직관'이다.

1.

지난 2006년 9월 사망한 독일의 하인리히 트레트너 장군은 정말로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군 경력을 시작, 히틀러 휘하에서 스페인 내전과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전후 서독 연방 자위대를 거쳐 은퇴한 후에는 독일 재통일까지도 봤1으니까. 그는 격동의 독일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성공적인 군 경력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1943년 11월, 트레트너의 제 4 공수사단장 취임에는 "독일군 공수부대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 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무능해서 그랬던 것일까? 글쎄, 별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지휘하던 독일군 공수부대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연합군을 (말그대로)죽도록 괴롭히다가 1945년 종전을 맞았으니까. 게다가 이 사람은 전후 서독에서 참모총장도 맡았다. 능력에는 전혀 하자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의 출신 성분에 있었다. 비록 공수부대를 지휘했지만, 그는 강하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2.

그게 문제가 될까? 장군은 지휘자이지, 직접 전투를 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것은 직접 전투를 수행하는 부하들이 할 일이지, 장군이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맞다. 장군은 지휘를 하는 사람이지 직접 전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2.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부대를 지휘하려면 강하 훈련은 받아야 한다. 공수부대는 일반 보병과는 다른 전문적인 임무를 맡기 때문이다. 얘들은 포위당한 채로 전투를 치르는 게 일이다. 탱크 같은 중화기의 지원 없이, 뛰어내릴 때 들고 간 무기만 들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공수부대의 기본 소양인 '강하'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를 아예 할 줄 모르면, 공수부대가 뭘 할 수 있고 없는지에 대해 이해가기가 쉽지 않다3. 요컨대, 강하를 잘 한다고 해서 유능한 지휘관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공수부대를 지휘하려면 강하 정도는 필수다. 그게 없으면, 전투 지휘를 하기 위한 직관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레타 섬을 공격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하는 독일군 공수부대. 1941년 5월.

그렇다면 독일군은 대체 무슨 배짱으로 강하훈련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을 공수사단장으로 임명했던 것일까?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트레트너는 강하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었다. 독일군 공수부대는 더이상 공수작전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합군 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독일군은 공수작전은 고사하고 강하훈련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 마당에 강하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지휘관으로 임명한다는 건, 독일군 지휘부가 "너네 더이상 공수작전 안 해도 된다."고 인정해 버린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4. 공수작전을 안 하는 공수부대는 공수부대가 아니다. 그러니 공수부대의 몰락이라는 수식어가 달릴 수밖에.

3.

썩어도 준치: 독일군 공수부대 하사관이 진지에서 기관총을 쏘고 있다. 1944년 1월, 트레트너가 이끄는 제 4 공수사단은 제 1 공수사단과 함께 이탈리아 전선 방어에 투입되었다. 연합군은 이들이 자리잡은 카지노 산을 공격했지만, 무자비한 폭격과 대공세에도 이들을 쫓아낼 수 없었다 - 이 사진은 그 때 찍혀진 것이다. 결국 연합군은 16개 사단을 동원, 보급로를 위협한 끝에야 겨우 이들을 쫓아낼 수 있었다. 비록 강하는 포기했지만, 이들이 보여 준 무시무시한 전투력은 전설이 되기에 충분했다.

최근 스마트폰 열풍으로 IT 스타트업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면서 프로그래머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그와 함께 자주 들리는 게 "왜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가 없냐. 왜 게임 회사에서 좋은 연봉 받는 데 안주해 있느냐."라는 볼멘소리다. 새해 첫날부터 거친 소리 하기는 싫지만, 이번만은 정말 한 마디 해야겠다. 실리콘밸리와 달리 우리나라에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들지 않는 건, 바로 그딴 소리를 하는 당신들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이하 SW)는 엄연히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분야다. 다른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경험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서, 일반인들은 프로그래머들이 죽기보다 싫어하는 "스파게티 코드" 라던가 "걸레 같은 코드"가 어떤 의미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해하기 힘든 역설도 속출한다. 대표적인 예가 '맨먼스 역설'이다. 10명의 프로그래머가 10일에 해치울 수 있는 일에 프로그래머 20명을 투입하면... 한 달이 걸려도 안 끝난다. 집단 작업을 해 본 프로그래머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내용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왜 그런지 설명해 줄 방법마저도 마뜩찮고 이해시킬 수도 없다.5

이쯤 되면 확실해진다: 프로그램 잘 짜는 사람이 좋은 SW 기업 경영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SW를 모르는 사람이 이런 걸 제대로 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직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Google, Oracle, MS, Facebook 등 성공한 SW 기업의 사령탑 거의 전부가 전직 개발자로 가득차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6다.

4.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전개된 독일군 공수부대. 1944년.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소위 산업 정책을 관장하는 분들 면면을 보면... 소프트웨어를 해 본 사람이 없다. 정부 관계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재벌 기업의 간부진에도 말이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만드는 재벌 기업 사장님이 "결국 스마트폰도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을 방금 전 해외 업체들에게 신나게 털리고 와서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하고 다니는 게 대한민국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강하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공수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판이 될 수밖에 없다. 공수부대를 육성하려면 체력훈련 빡세게 하고, 훈련소에서 죽도록 사격훈련 낙하훈련 시키고, 정기적으로 비행기 태워다 떨구는 방법밖에 없다. 계급 구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네 소프트웨어 인력 정책은, 말하자면 4주 훈련받은 이병만 잔뜩 뽑아내는 구조에 가깝다. 그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 스스로가 강하를 해 본 적이 없으니, 그 이상이 왜 필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휘관 - 기업 간부들 - 의 절대 다수는 강하가 뭔지도 모른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작전 던져주고 빨리 가서 뛰어내리라고 할 뿐이다. 이 밑에 가면, 죽기 딱 좋다.

유능한 소프트웨어 인력이 모자란 것7, 그리고 있는 인력마저 게임회사로 몰려가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훈련 시스템이 개판인데 거기서 제대로 된 인력이 나올 리 없다. 그나마 있는 인력들은 죽기 싫으니까, 강하를 해 본 지휘관 아래 가길 원한다. 게임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별들의 절대 다수 그리고 간부의 상당수가 총들고 낙하산 메고 뛰어내려 본 사람들이다. 상황이 이런데, 안 몰려가게 생겼냐?

이런 사람들 밑에 가면, 여러 모로 좋다. 이 사람들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녀석이 총도 제대로 못 다루는 고문관8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돈 들여 좋은 총 비싼 낙하산 사주고, 좋은 밥 편한 잠자리 주고, 최소한 말도 안되는 작전을 지시해서 뛰어내리다 떼죽음 당하게 두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위 질문은 SW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SW 판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 바로 그 원인이란 말이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 따라 IT 스타트업을 한다는 건 강하 한 번 안해 본 사람 따라 공수작전을 하겠다는 것과 똑같다.

5.

"HTML도 모르는 애들이 이따금 포탈업체 기획자로 취직해 가던데, 괜찮을까..."

연말에 아는 교수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미디어학부 교수님이신데, 기술적 기초가 전무한 제자들이 SW 개발자들하고 어울려서 일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셨다. 순간, 나는 전날 N사 근무하는 형들과 점심을 함께 하던 것이 기억이 났다: "취업은 역시 게임업계 아니면 nhn이죠?" "거기 싫으면 삼성이지. 그 외엔 MS 정도?" 그렇다. SW 전공자들이 취업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건, 그 기업 사령탑이 얼마나 SW 경험자로 채워져 있느냐9다. 연봉은 오히려 그 다음 얘기다. 쉽게 말해서, 죽기 싫기 때문이다.

한국 SW 산업에 대해 인문학이 해답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을까.

+1. 혹자는 이 문제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정보통신부를 없애서 운운할 텐데 헛소리 말도록. 최근 방통위가 워낙에 개삽질을 많이 해서 그렇지, 정보통신부도 결국 소프트웨어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보호 육성하지도 못했으니까. 어디서 약을 팔어...

+2. 이어지는 글:


  1. 실제로 이 사람은 독일 국방군 장군 중 마지막 생존자이기도 하다. 왜 하필 '국방군' 이라는 명칭을 쓰는가 하면, 제 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의 군제는 나치당 집권 전부터 있었던 군조직인 독일 국방군과 나치당의 사병 성격을 띠었던 무장친위대 둘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현대 독일군에서는 군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2. 단, 공수부대는 적진 한복판에 떨어지는 만큼 일반 육군 부대와는 달리 지휘관이 직접 전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지휘관, 참모부 그리고 장교 전원이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실제로 1944년 노르망디에 전개된 미군 101 공수사단의 경우 낙하산으로 강하한 사단장은 휘하 병사들과 함께 독일군과 총격전을 벌여야 했고 역사상 가장 계급 높은 소총수 글라이더로 강하를 시도하던 부사단장 돈 프랫 준장은 아예 착지중 사고로 전사했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연합군 최고위 전사자다. 당시 함께 강하했던 미군 82 공수사단의 경우 사단장 제임스 게빈 준장은 37세에 불과했다. 교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일부러 가능하면 젊은 사람을 지휘관으로 골랐던 것이다. 

  3. 1944년, 유럽에 상륙한 연합군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마켓 가든 작전에서 영국 제 1 공수사단을 지휘한 로이 어퀴하트는 훌륭한 군인이었지만, 공수경험도 없었고 공수부대 지휘도 해본 적이 없었다(게다가 항공병 환자였다). 확실히 적진강하 후 10km쯤 전진해서 다리를 탈취한다는 계획은 경무장만 하고 전장에 투입되는 공수부대에는 여러 모로 무리였다 - 물론 대실패로 끝났고. 

  4. 덧붙이자면, 강하경험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트레트너는 정말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야전 경험도 많았고 무엇보다 이전부터 공수부대의 참모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다. 

  5. 개인적으로 비개발자들과 대화를 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게 있다면,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 수학적 지식의 중요성을 납득시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컴퓨터에게 명령만 주면 되는 일인데 수학 같은 게 왜 필요하냐' 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쉽게 설명하자면, 컴퓨터과학 자체가 수학에서 갈려 나왔고 나 역시 컴퓨터 잡는 시간만큼이나 수식을 끌어안고 끙끙댈 때가 많다. 

  6. 이쯤 가면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어 반박을 시도하는 인간이 나올 텐데,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PC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소프트웨어 업종의 성장을 다 지켜본 사람이다. 비록 개발자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오오 짬밥 결정적으로, 이런 사람이 기술적인 부분을 도맡는 전문 참모 역할을 해준다. 그러니까... 니들은 잡스가 아니라고. 

  7. 흔히 "머리는 작고 몸통은 거인인 구조" 

  8. 나는 Linked List 외에 아는 자료구조가 없는 신입사원을 만난 적이 있다는 어느 고참 프로그래머를 알고 있다. 참고로 거기 검색업체다. 거기서도 이따금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다른 데는...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9. 적어도 우리 학교나 KAIST 같은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