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통찰력'의 정체는 위장된 인종주의다.

1.

사실 인문학적 통찰력 운운은 초고대문명론하고 닮은 점이 있다. 모아이나 피라미드 같은 놀라운 유적들은 외계인이 와서 지구인에게 문명을 전수해 준 증거라는 주장, 한 번씩은 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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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친구'. 1868년, 이스터 섬에 정박한 영국 군함 토파즈 호에 의해 발견되어 영국으로 왔다. 모아이 치고는 굉장히 작지만, 섬세한 표면 조각 덕분에 모아이 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영박물관 소장.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그런데 피터 제임스와 닉 소프에 의하면,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교묘하게 위장된 인종주의에 불과하다고 한다. 외계인이 개입해서 문명을 전수해 주었다는 사례 51건 중 유럽 지역에 해당하는 것은 단 두 건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뜻 보기에 이러한 주장들은 무해해 보이지만, 비유럽계 고대인들은 대단한 유적을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는 전제를 은연중에 깔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이건 초고대문명론만의 문제도 아니어서, 남아프리카에 있는 멀쩡한 유적을 흑인들이 만들었을 리가 없다는 둥, 페니키아 상인들이 만든 거라는 둥 엉뚱한 이론들을 창작하던 게 무려 20세기 후반에 벌어지기도 했다.

고대 마야 문명의 부조를 묘사한 그림. 1820년대에 장 프레드릭 막시밀리안 발덱 백작이 그린 것이다. 다만 원본하고는 많이 다른데, 발덱 백작은 마야 문명이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증명하려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잘 보면 모자가 고대 그리스의 프리기아 모자다.) 따라서 이 그림은 기록화라기보다는 상상화에 더 가깝다 - 사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낭만주의 예술 작품에 속한다. 애시당초 이 사람은 자크 루이 다비드에게서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출처: wikipedia)

2.

많은 인문주의자(tm)들은 위 글에 대해서 - 그리고 "인문학적 통찰력이 애플과 페이스북의 성공 요인이다." 라는 자기네들의 주장에 전산학 전공자 + 개발자들이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그딴 소리를 하고 있으니 더 빡치는 걸 알까? 초고대문명론과 마찬가지로 인문주의자(tm)들의 주장은 기술/공학은 학문 축에도 못 끼는 저열한 물건에 불과하고, 따라서 전통 있는 학문을 공부한 자신들은 우월하고 이공계는 열등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공학 따위는 학문적 체계가 없는 단순하고 조잡한 물건이며 이런 걸 공부한 사람들은 열등한 인간이라는 근거 없는 우월 의식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폰이든 페이스북이건 신기한 물건이 나오면 그걸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짓고, 이들의 성공은 틀림없이 인문학 덕분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이다. 흡사 피라미드 같은 유적은 비유럽권 인종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외계인 덕분이라고 결론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심지어 이 친구들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서, 자신들만이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낼 수 있으므로 신규 채용자의 일정 비율을 자기네 몫으로 내놓으라는 요구까지, 아주 당당하게 한다. "카카오가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냐?" 라는 담대한 선언이 여기서 나온다.

3.

사실 '인문학'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문주의자(tm)들은 자기네들이 인간에 대해서 공부했다고, 공학이나 과학 전공자에 비해서 인간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고 지껄인다. 그렇게 잘 안다는 놈들이 왜 상대방이 빡치는 이유를 모르는데? 인문주의자(tm)들의 행각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애당초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아는 게 1도 없으면서 약을 파는 거야 아니면 공학이나 과학 전공자는 열등인간이니까 기분 같은 건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뭐긴 뭐야, 둘 다겠지. 듣는 사람 입장에서 저 새끼들이 우릴 바보로 아나 싶은데 설득력이 참 있기도 하겠다.

이쯤 가면 이 년놈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그 '인문학'이라는 게 도대체 뭐하는 물건인지가 슬슬 의심스럽기 시작한다. 하기야 저 돼지새끼들은 생물학자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면서 상전 노릇 하려고 든 적도 있었지. 같은 대학에서 학문하는 사람한테도 저러는데 실용학문 전공한 개발자 같은 건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4.

가장 중요한 게 하나 더 남아 있다. 인종주의,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은 전산학이나 생물학이 아닌 인문학이 다루는 주제다. 그런데 저 인문주의자(tm)라는 것들은 그냥 책 좀 읽은 공대생보다도 인종주의에 대해 무지하다. 그러니까 자기네가 하고 있는 짓이 인종주의랑 똑같다는 걸 모르는 거겠지? 그 주제에 자기네들은 우월한 학문을 '했으며' 따라서 대접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인문주의자(tm)들의 행각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2)

5.

역시나 '인문학' 은 불태워야 한다. ('Humanitas' Delenda 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