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동부의 작은 도시에서 보낸 이틀 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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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빌 다운타운에 서 있던 거리 표지판. 프랑스 왕가의 백합 문양(Fleur-de-lis)이 그려져 있다. 카운티의 문장에서부터 맥주집의 간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이 문양이 박혀 있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여기가... 루이빌이라고...?"

지난 2월 22일, 나는 켄터키 주의 중심 도시 루이빌(Louisville)에 도착했다. 내가 이 도시에 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로열 아머리(Royal Armouries)의 소장품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로열 아머리는 영국 왕실의 전근대 무기 및 갑옷 전문 콜렉션으로, 전세계의 온갖 희귀한 유물들을 대거 소장하고 있어 나같은 전쟁무기 팬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이곳은 원래 영국 안에만 3개의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난 2004년 루이빌에 있는 프레지어 역사 박물관의 공간 일부를 빌려 처음으로 해외 분관을 냈다. 그런데 루이빌은 내가 살던 텍사스 주 오스틴과 귀국 비행기가 출발하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딱 중간에 있다. 참새의 진로 한가운데에 방앗간이 있는 상황, 나는 이 참에 방앗간에 들러 소장된 무기와 갑옷들을 구경하고 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역시 해외 원정 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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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갑옷. 영국 리즈(Leeds)에 있는 로열 아머리 전시관에 있는 것이다. 워낙에 독특해서 로열 아머리를 소개할 때면 꼭 한번씩은 등장한다. (출처: flickr@jonathan_bliss)

하지만 공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시가 너무나도 초라했던 것이다. 비록 독립 국가의 수도는 아니지만, 루이빌은 명색이 켄터키 주 최대의 도시1다. 물론 나도 미국 중부의 내륙 주들이 가난하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서 익히 알고는 있다. 하지만 루이빌 행 비행기에 탑승할 때만 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두달 전 캡콜드 님을 뵈러 위스콘신 주 메디슨으로 놀러 갔던 것을 떠올리며  "그래, 그래도 메디슨 정도는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나름의 활기가 느껴지던 메디슨 시와는 달리, 루이빌은 도시 전체가 힘이 없어보였다. 느릿느릿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버스 창밖으로 지켜보니, 보수가 필요해 보이는 도로 이곳저곳이 방치된 것이 보였다. 심지어 다른 주와 똑같은 프랜차이즈 음식점 간판도 오래되어 먼지가 쌓여 있거나 빛이 바래 있었다. '켄터키 주 최대의 도시' 같은 타이틀과는 도저히 연결이 되질 않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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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아머리 분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프레지어 역사 박물관(Frazier History Museum) 3층에 들어서면 나오는 영국 요먼(yeoman) 인형. 이 박물관은 전체가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로열 아머리는 그 중 3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못해도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리, 미국의 도시들은 길어야 삼사백 년 정도의 역사만을 갖는 것이 보통2이다. 루이빌의 역사 역시 그리 길지는 않다. 1778년, 오하이오 강의 작은 섬인 콘 섬에 백인 이민자들이 작은 정착촌을 건설한 것이 이 도시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2년 뒤인 1780년, 버지니아 주 의회3는 이 정착촌을 승인하고 루이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루이 왕의 도시'. 이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영국군을 맞아 힘겹게 싸우던 신생국 미국을 지원해 준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지만 루이빌은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의미를 갖는데, 바로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 최초의 도시라는 것이다. 지도를 펼쳐 보면 알겠지만, 북미 동부에 남북으로 뻗어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은 동부의 해안 지역과 중부의 평원 지역을 가르는 자연적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 초기의 13개 주 모두가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에 몰려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만큼 이 산맥은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미국인들에게 큰 장애물이었는데, 이걸 넘어서 처음으로 도시가 생긴 것이다. "서쪽으로 가는 관문(Gate to the West)". 이후 루이빌은 켄터키 주의 담배와 말이 팔려나가는 거점4으로서, 개척이 진행되는 서부와 해안가 동부를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 화려하던 시절의 흔적은 아직도 도시에 남아 있었다. 이튿날 아침, 호텔을 나와 남쪽으로 이십 분 가량 걸어간 곳에 구 시가지(Old Louisville)가 있었다. 아직 농업에 의존하던 미국 경제가 공업화를 이루며 한창 발전하던 도금 시대(Gilded age)의 건물들이 서 있었던 것이다. 백년이 지난 지금도 부티가 느껴지는 걸로 봐서 그 때 그 시절에는 얼마나 화려한 곳이었는지 능히 짐작이 갔다. 이만한 부촌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시 루이빌이 얼마나 잘 나가는 도시였는지5는 설명이 필요가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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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3.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백여년 전 만들어진 예쁜 저택들은 이국에서 온 방문객에겐 진기한 구경거리였지만, 별다른 활기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당시 지어진 건물 상당수가 법률 사무소로 사용중인 모양이었지만,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하기만 한 게 묘하게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건 박물관을 다녀오면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본 것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시내 곳곳의 건물들은 빈 채로 세입자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문이 닫힌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가게가 태반이었으니까. 호텔에 돌아온 나는 미국 각 주의 평균 인당 소득 자료를 찾아보았다. 켄터키 주의 순위는 금방 눈에 띄었다: 50개 주 중에서 44위6 20세기 초까지 켄터키 주의 경제를 지탱하던 제조업이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루이빌의 부유층 역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는 설명 또한 찾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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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빌 시가 곳곳에는 도시가 낳은 유명 인사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이 사람은 KFC의 창업자, 샌더스 대령.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그러고 보면, 내가 지내던 오스틴과 달랐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화장실이 급했던 나는 근처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왠일인지 평일 오전부터 허름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벽에는 이런 문구가 써붙여져 있었다: "30분 이상 앉아있지 마시오" 오스틴에서도 맥도날드를 제법 많이 가봤지만, 본 적이 없는 문구였다. 그만큼 오랫동안 앉아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오스틴에선 아침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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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타운 한복판에 있던 무함마드 알리 거리. 전설적인 복서 알리가 바로 루이빌 태생이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텍사스는 경기가 좋다지요? 조지아는 아주 힘들어요."

귀국 비행기에서, 나는 옆자리에 앉은 분과 대화를 나눴다. 조지아 주에 계시다가 귀국하는 분이셨다. "경기가 안 좋아서 한인들이 운영하던 주유소들이 문을 닫고 있어요. 너도나도 이제 텍사스로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들 하고 있어요." 순간, 며칠 전 샌프란시스코를 들렀을 때 그곳에 사시는 분들이 해준 말씀이 떠올랐다: "여기는 집값이 미친듯이 뛰고 있어. 실리콘밸리 경기가 너무 좋아서 너도나도 몰려들고 있거든. 중국인들이 현금뭉치를 들고 와서 집을 사곤 하지." "텍사스는 물가가 싸죠?7 여긴 집값도 식대도 너무 많이 들어요. 억대 연봉을 받으면 뭐해."

좁다란 국토에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내게 이렇게 지역별로 180도 다른 말들을 듣는다는 건 확실히 생경한 경험이다. 한숨을 쉬면서 읽고 있던 책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이 나라... 정말 크구나. 그만큼 사람들도 다양하겠지. 나오는 아이디어 역시 매우 다양할 것이고.


  1. 켄터키 주 면적은 104,749 km², 남한 전체 면적은 100,210 km². 그러니까 켄터키 주가 남한보다 조금 더 크다. 

  2. 최초의 잉글랜드 정착촌인 버지니아 주 제임스타운이 1607년, 스페인 식민 도시인 텍사스 주 산 안토니오가 1691년. 

  3. 지금의 버지니아 주도 제법 크지만, 원래 버지니아 주는 지금의 켄터키 주와 남북전쟁 당시 분리된 웨스트버지니아 주를 포괄하는 엄청난 넓이를 자랑했다. 켄터키 주는 처음엔 '버지니아 주 켄터키 군'으로 불리다 1792년 주로 승격, 15번째로 미 연방에 가입했다. 

  4. 지금도 루이빌에는 전세계 최대의 담배 시장이 있다. 

  5. 지금 세계적 대도시가 된 샌프란시스코는 정작 20세기 초엔 별 것 없었다고... 

  6. 2011년 기준. 

  7. 샌프란시스코 사시는 한인들은 텍사스에서 15달러면 쇠고기 립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다들 부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