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펌질을 좋아하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데, 이 글만은 워낙에 시사하는 점이 많아서 사실상 퍼왔습니다. 가능하면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고 끝낼 생각이었습니다만 그게 안되더군요 -_- 결과적으로 전체 글의 2/3 이상을 인용하는, 상당히 기이한 인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글워 원저자인 박군님은 강철의 연금술사鋼の連金術師 - 속칭 '하가렌' - 의 성공 원인을 "소년점프식 장르만화 구조"를 적절히 변형시켰다는 점에서 찾고 있습니다. 전문 논평자의 글인 만큼,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소년 점프와 소년만화 장르공식


일본의 잡지만화는 1959년 양대 주간지(소년 매거진/소년 선데이)가 등장한 이래, 각각의 잡지가 나름대로의 잡지 색깔을 정착시키면서 나름의 내러티브 구조를 정착시켜 왔다. 이 중 비교적 후발주자로 소년의 성장과 꿈, 환타지를 하나의 장르 구조 - 이른바 소년만화 장르 구조 - 로 승화시켜 성공한, 그러므로써 "소년만화 3대 주간지"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잡은 잡지가 바로 [소년 점프]였다.

적과 아군의 유동성, 소년기 특유의 힘에 대한 동경(이는 바이올런스(폭력)로 나타난다), 급격한 신체적 성장과 연관된 '변신'의 이미지, 강력한 주인공 캐릭터가 등장하여 자신이 가진 특이한 능력을 이용하여 차례 차례 등장하는 강력한 적을 쓰러 뜨려가며 성장하는 '반복적 상승구조'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이러한 '소년점프 공식'은, [북두의 권(北斗の券)], [세인트 세이야(セイント星矢)], [캡틴 츠바사(キャップテン翼)], [근육 맨(筋肉マン)] 등과 같은 점프가 배출한 걸출한 히트 만화들 대다수에 적용되는 공식이며 이 정점에 도달한 만화가 바로 유명한 [드래곤 볼(DRAGON BALL)]이었다. 걸작 만화 [슬램덩크(SLAM DUNK)]마저도 이 점프 공식의 연장선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이런 점프식 장르공식(그리고 여타 출판사의 장르공식)은, 각각의 만화가 대히트를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독자들에게 만화 읽기와 내용 이해 방법에 대한 일종의 [관습]을 제공해오기까지 한다. 헐리웃 영화와 비교하여 이야기한다면 이들 만화가 담당한 위치는 여름 특수용 블록 버스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르구조는 현재 연재중인 만화들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이 된다. [고스트 바둑왕(ヒカルの碁)], [원피스(ONE PIECE)], [테니스의 왕자님(テニスの王子樣)], [아이쉴드21(アイシルド21)]등은 이전 작품보다는 양상을 달리하면서도, 그 포맷은 모두 기존 점프 만화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만화들이 내는 성적표는 정작 기존 만화들의 그것에 비해서는 확연히 떨어진다. 정작 이들 만화의 팬들은 상당수가 여성 독자들이며 이들 잡지의 주 타겟인 소년들이 아니다. 심지어 메인 캐릭터보다는 주변의 서브 캐릭터가 더욱 인기를 끄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일도 허다하다. 또한 이들 공식을 따르는 만화 특유의, 황당하리만치 거창한 스케일과 주제에서 탈피해서 마치 일본식 여성만화처럼 주변의 인간관계의 소소한 부분을 만화 전면에 내세우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박군 주: 아즈망가 대왕은 이러한 인간관계의 한정화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경우이다.) 심지어는 일종의 부차적인 서브 시장으로 인식되어 오던 아마추어 코믹마켓을 노린 기획 만화까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편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자면....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들 만화가 스타일은 변화를 주었을망정 정작 내부의 캐릭터 자체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밝고 건강한 소년이 등장하여 노력과 승리로 뭔가를 쟁취한다는 이런 설정에 충실한 캐릭터가 만화 플롯을 이끌어나간다는 포맷 자체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는 이제 소년들의 마음을 그다지 끌지 못한다. 즉, 일본 경제가 미칠듯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따라서 소년들에게 무한한 꿈과 밝은 이미지만을 주입 가능하던 1980년대적인 소년 점프 장르 공식에 충실한 주인공을 어떤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해서는 더 이상 기존 소년 점프 주력 독자였던 초중고 소년들에게 감동을 받게 하기는 커녕 어필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주인공 -영웅상- 의 제시에 성공한 하가렌


이런 점프식 정통(?) 소년만화 포맷에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하기를 원하던 독자들의 욕구를 단칼에 정확하게 꽂아 충족시킨 만화가 바로 이 [강철의 연금술사]였다. 이 만화에 삽입된 코드를 일단 보자면, 우선 현실과는 유리된 가상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며, 연금술이라는 특수한 능력이 등장하고, 적과 아군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성을 띄며, 주인공 에드와 알의 내면적인 성장을 통하여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점프식 소년만화 공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만화의 주인공 캐릭터는 기존 소년 점프 만화의 주인공들과는 그 궤를 전혀 달리한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소년만화치고는 테마가 매우 무거운 편이다. 이 만화 중에 '등가교환(等價交換)'이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무언가를 얻거나 세상을 움직이는 진리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에 상당하는 대가를 바쳐야 한다"는 이 원리는 만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주인공 에드와 알은 죽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세상을 움직이는 진리를 넘본 댓가로 에드는 신체의 일부를, 알은 전부를 잃었고, 이것이 깊숙한 상처가 되어 내면에 남아있다. 이런 주인공이 파괴된 신체를 가졌다는, 완전하고 무적의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하고 쉽사리 부숴지는 몸을 가졌다는 이런 설정은 청년지나 성인 만화지에나 어울릴 만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파괴된 신체를 가진 불완전한 주인공이라는 설정 자체는 테츠카 오사무의 만화 [도로로(どろろ)]나 [마다라(MADARA)]에서 이미 등장했으나, 이들은 요괴등의 타의에 의해 신체를 강탈당한데 반해, [강철의 연금술사]는 두 주인공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주인공을 둘러싼 서브 캐릭터들도 마냥 멋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모두들 내면의 깊숙한 곳에 뭔가 말 못할 비밀, 상처들을 하나씩 가진 것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이들에게 상처를 입힌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전쟁과 같은 '불완전함으로 가득찬 잔인한 세상'이다. 만화에서 등장하는 연금술조차도 마냥 멋진 것만이 아니라 전쟁을 위한 살인기술 중 하나고, 이를 구사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기존 점프 만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배려도 점프 만화와는 다른 부분으로 점프만화의 여성은 성적 흥미의 대상이거나 큰 이야기의 흐름에는 별반 영향을 주지 못하는 수동적 대상인데 반해 [강철의 연금술사]에서의 여자 캐릭터들은 능동적인 파트너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별반 성적 흥미의 대상도 아니다.(이런 여성 캐릭터의 묘사는 작가 아라카와 히로무가 여성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요컨대, 소년들에게 노력하고 갈고 닦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주며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기존의 소년 점프 정통 노선과는 딴판이다.

헌데 이는 요즘 일본 사회를 기묘하게 반영하고 있다.

현재 일본사회는 전체의 엔트로피 - 정보량이 지나치게 많아진 정보과부하 상태다. 이런 정보는 당연히 아이들(소년들)에게도 흘러들어간다. 따라서 학교나 가족관계 등을 통해서 학습하는 어떤 사회적인 가치관이나 기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소년 점프가 제공하던 밝은 미래나 노력하면 어떤 적도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잘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몽땅 환상이라는 점은 아이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강철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만화 속 자신의 분신- 상처입고 어딘가 어두운 면모를 가진-에 더욱 몰입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맺음말


우리는 모든 것이 모호해진 이 시대를 반영하는 상처입은 새로운 영웅상의 등장에 박수 갈채를 보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명쾌하게 보여주며 악당을 멋지게 해치우기만 하면 되던 과거의 영웅들을 추억하며, 그런 것이 통용되지 않게된 이 불투명한 시대에 쓴웃음을 지어야 할까?
2005/05/12 23:00 2005/05/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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