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6일 오후 6시
브뤼셀 남부역(Brussel - Zuid)
안녕 브뤼셀.1.
나 간다. 잘 있어.
아침엔 화내서 미안해.
오늘 하루 즐거웠어.
널 다시 볼 날이 언젠지는 몰라.
하지만, 앞으로도 그 예쁜 건물들 고이고이 간직하길 바래.
와플을 다 먹은 우리는 잠시 브뤼셀 남부역 밖으로 나왔다. 이제 브뤼셀과도 이별이다. 아침에는 정말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전쟁사 박물관과 예쁜 건물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와플을 먹는 사이 언짢은 기분은 모두 풀린 지 오래였다. 내친 김에 좀 더 구경하고 싶지만, 이미 시간이 없다. 여행 계획대로라면, 적어도 내일 아침에는 런던에 있어야 한다. 브뤼셀에서 잘 곳도 없다. 비싼 건 둘째치고 어디에 호텔이 있는지, 그 호텔에 자리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브뤼셀 남부역의 외관

우리가 오늘 짐을 담아 뒀던, 완전 디지탈 코인록커. 여행 내내 우리는 역의 코인록커에 짐을 보관한 뒤 간편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방법을 택했다.

플랫폼에서 또 마주친 탈리스.
오후 6시 40분, 나와 새롬군을 태운 유로스타 철도는 런던으로 출발했다. 유럽대륙 국가들과는 달리, 영국은 비자 면제 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경부선 기차 타는 기분으로 타고 온 오늘 아침의 네덜란드 - 벨기에 국경 열차와는 달리 유로스타에서는 기차를 타면서도 비행기 타듯이 폭발물 검사하고 출국 비자 받아야 한다.
기차로 바다를 건너간다는 것도 난생 처음이었지만, 기차를 탄다는 걸 제외하면 비행기 탑승장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유로스타 탑승장도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네덜란드 - 벨기에 국경을 넘어온 오늘 아침에도 느낀 거지만, 이곳의 국경 개념은 확실히 한국의 그것과는 다르다. 새삼 느꼈다.

유로스타 열차를 타러 가다가 찍은 사진.
3.
열차는 세 시간여에 걸쳐 도버 터널을 지나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의 워털루 역에 도착하니 이미 시각은 오후 10시.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유로스타 안에서 찍은 사진. 아직 브뤼셀 근처다.
오늘 밤은 본래 버스 안에서 잘 예정이었던 만큼, 당연히 런던에서 잘 곳을 생각해 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거리에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본래 우리가 묵기로 한 민박집에는 내일 저녁부터 예약이 되어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전화를 걸었다.
"거기 워털루 민박이죠? 아, 거기 예약한 사람이거든요? 여기 워털루 역인데 마중나와 주실 수 있으세요?"
* 그래도 쬐끔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오늘 예약했다고는 못 했다. -_-
일단 민박집 관리하는 형이 마중을 나온 뒤, 사정 이야기를 했다: "저.. 사실... 저희가 예정이 크게 바뀌는 바람에요... 오늘 예약을 안햇거든요..."
민박집 주인 형 왈: "괜찮아요.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오늘 오실 분들은 이미 전부 들어오셨거든요. 숙박비만 주시면 되요 ^^"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논 기분이었다.
4.

브뤼셀 남부역에서 새롬군이 찍은 사진. 내 뒷모습이다. 여행 내내 우리는 저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