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7일 오전 11시

영국 포츠머스

최초의 철갑선은 무엇일까. 흔히 임진왜란 때 사용된 거북선을 최초의 철갑선이라 부르지만, 정작 거북선의 등은 적이 오르지 못하도록 비늘처럼 판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철갑을 뒤집어 씌웠다는 기록은 없1다. 일본 전국시대 때 사용되었다는 철갑선도 마찬가지. 쇠테를 둘렀다는 기록이 있을 뿐, 이름처럼 진짜 철갑선은 아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가장 오래된 철갑선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포츠머스 항에 전시된 영국 해군의 전함, H.M.S. Warrior 호다. 포츠머스에 도착한 우리를 반긴 것도 이 전함이었다.

* H.M.S. 란 His/Her Majesty Ship(Submarine) 의 약자로, 캐나다·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과 같이 국왕을 모시는 국가들이 전함 앞에 붙이는 말이다. 역시 국왕을 모시는 스웨덴 해군도 같은 의미의 단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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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모습.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1823년, 탄도상에서 폭발하는 포탄(Explosive Shell)이 프랑스에서 개발되면서 군함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이전의 포탄들은 말 그대로 "대포알" 로, 커다란 쇠공이거나 폭발을 시키기 위해 따로 점화를 시켜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불편한 건 둘째치고 정확한 위치에서 폭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목표물까지 날아가지도 않았는데 폭발해버리는 경우가 속출했던 것이다. 새로운 포탄과 대포는 목재로 만들어진 기존의 전함들을 쉽게 부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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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어 호 함내에 전시된 당대의 흑백 사진들. 항해하는 모습과 간부들의 얼굴이 보인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이제 전함에도 장갑을 입혀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말은 쉽지만, 기술적으로는 만만치 않은 난제였다. 철판은 나침반을 혼란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릴 위험이 존재했다. 전투를 할 수 있을 만한 속도를 내기도 쉽지 않았고, 소금기 있는 바닷물에서 철판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도 문제였다. 게다가 철판은 저온에서 부서지기 쉽다. 여러 모로 철갑선을 만드는 것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크림 전쟁(1853 ~ 1856)에 이어 개발되어 1859년에 완성된 프랑스의 전함 글루와르 호La Gloire는 이러한 시도를 처음으로 해낸 전함이었다. 하지만 1860년 완성된 워리어 호를 최초의 근대적 전함으로 꼽는 데는 이후의 전함 개발에 미친 영향 때문이다. 우선 덩치부터가 컸다. 배수량이 9,180톤으로, 이전까지 최대였던 머시급(5,643톤)의 거의 두 배나 됐다. 돛대와 증기기관을 함께 채용2했기 때문에, 동시에 사용할 경우 그 덩치를 유지하면서도 시속 17.5노트를 낼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속도였다.

석탄을 때는 보일러(맨 아래)와 엔진 기관들. 맨 아래층까지 내려가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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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구경을 마치고 올라와서 찍은 사진. 돛을 매달기 위한 줄들까지 복원되어 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기술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돈을 대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워리어 호를 건조하는 데는 39만 파운드나 되는 돈이 들어갔는데, 이 돈이면 목제 전함 세 척은 만들 수 있었다. 당시 유럽의 열강들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함인 워리어호를 보면서도 당장 도전하지 못했던 데에는 엄청나게 들어가는 건조 비용도 한 몫 했다. 이후 남북전쟁(1861 ~ 1865)에서 북군이 철갑선을 사용하여 효과를 보고, 통일을 이룬 독일 제국 등이 군비 경쟁에 뛰어들면서 제국주의 열강들은 너도나도 거대한 철갑선을 건조하는 데 열중하게 된다.

Hinderman 요새를 공격하는 북군 철갑선들. http://en.wikipedia.org/wiki/File:Battle_of_Fort_Hindman.png

프랑스 황제가 남군을 지원하기 위해 건조한 배이자, 도쿠가와 막부에 넘겨져 일본 최초의 철갑선이 된 "코테츠". 들이받아 공격하기 위핸 충각을 장비하고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Stonewall-Kotetsu.jpg

여담이지만, 워리어 호는 퇴역 후 민간에 넘겨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수모를 겪다가 이를 보다 못한 영국 해군이 1979년 다시 헐값에 사들여 8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돈을 투입해서 옛날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이미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는 배를 내부까지 완전하게 복원하는 데는 Henry Murray라는 선원이 워리어 호를 타면서 쓴 일기가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배에는 소년 선원들이 타서 잡일을 하기 마련이었고, 그 역시 그러한 선원들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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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안내 팸플릿에서는 워리어 호를 포츠머스 군항의 보석이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만들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든 복원해서 유지하기 위해 쓰고 있는 돈이든 쓰고 있는 돈들을 보면 진짜 보석이나 진배없었다. 입장료가 꽤 비싼 것도 이해가 갔다. 어쨌든, 충무공 이순신이 애용하던 환도조차 어디 숨어 있는지 모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다. 세계 최강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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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 위에 설치된 작은 대포. 속사포인 모양이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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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 아래에는 맨 아래층을 제외하면 큰 대포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천장에 수북이 매달려 있는 연장들, 대포 수입용 솔 등이 보인다. 사진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사이사이에는 해먹들이 매달려 있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갑판 위로 입장한 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완벽하게 복원된 군함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배 자체가 워낙에 좁은 곳이라 장교들이 생활하는 공간도 그리 넓지 않았다. 그나마 배의 맨 뒤쪽에는 고급 장교들이 먹고 자는 비교적 편안한 공간이 있었지만, 일반 수병들은 그것과는인연이 없어 대포 사이사이에 있는 해먹에서 잠을 자거나 응급실이 있는 배의 이물 쪽에서 잠을 자곤 했다.

배의 선실. 비교적 계급이 높은 장교들의 방이다. 굉장히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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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쪽에 있는 간부 식당. 12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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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여기는 작업을 하는 목재실이다.

그나마 이전에 비해서는 나아진 편이었다. 19세기 중반이 되기 전까지엔 수병들에게 군복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수병들은 일반 선원들이 입듯이 아무렇게나 사제 옷을 입었고, 군복을 입는 것은 상륙해서 싸우는 육전대(해병대) 뿐이었다. 수병들에게도 통일된 복장이 지급된 건 그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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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수병들의 일반적인 복장.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육전대가 사용하는 소총들. 깨끗하게 닦여 수납대에 보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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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병들이 사용하던 군도. 선실의 벽면에 놓여져 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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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와 함께 보관되어 있는 무기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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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특이했던 권총 보관대.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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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을 마치고 배의 고물에 위치한 조종석으로 올라와서 찍은 사진. 멀리 포츠머스 항의 건물들이 보인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1. 무게도 무게거니와, 무엇보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에 철판을 그대로 노출시키면 녹이 슬게 된다. 따라서 진짜 철갑을 씌웠다면 여기에 대한 방비가 있어야 하는데, 그 기록 또한 없다. 

  2. 증기 기관을 장착한 선박은 19세기 초부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