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쟁이 다테 집안
일본어를 공부하다보면 이런 표현을 볼 수 있다. "다테수가타=だて姿-멋진 모습", "다테메가네(だて眼鏡)". "멋진 모습" "멋내기 안경" 이라는 뜻이다. "수가타" 는 "모습" 이란 뜻이고 "메가네" 는 안경이라는 뜻이니 "다테" 라는 말은 "화려한, 멋진, 멋내기" 라는 뜻 정도로 알아들으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단어의 기원은 꽤나 오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일본은 군사적 권력자인 쇼군이 이끄는 바쿠후가 덴노(天皇)가 이끄는 조정을 대신하여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하는데, 따라서 각지의 호족들은 이 쇼군과 그를 모시는 수도의 공경대작들에게 예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때는 무로마치 바쿠후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시대, 사회는 안정되고 문화와 경제는 크게 발전하여 그야말로 무로마치 바쿠후의 전성기였다. 게다가 쇼군이 역사상 처음으로 덴노 조정의 총리 자리인 태정대신까지 겸임해서 쇼군의 위세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할 때였는데, 이 때 오오슈(奧州)의 호족 다테 모치무네(伊達持宗)라는 사람이 일부러 교토까지 올라와서는 화려하고 진기한 토산품들을 그야말로 뿌려대며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무로마치는 교토 바로 옆에 있다.)
이후로도 다테 집안은 쇼군이 바뀔 때마다 상경해서는 화려하게 물품을 뿌리고 갔다고 한다. 사금, 명마, 칼 등등을 망라하는 명산품들을 거의 트럭으로 갖다 바치는 수준이었으니, 일본어에 저런 표현이 생긴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겠다. 그만큼 다테라는 성씨는 화려함의 대명사였던 셈이다.
애꾸눈 꼬마

그런데 다섯 살 때 그만 천연두에 걸리고 말았다. 천연두는 지금도 치료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예방 접종을 하지 않으면 언제고 죽을 위험이 있는 병인데, 다행히 마사무네는 죽거나 곰보가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그 결과로 오른쪽 눈과 모친의 사랑을 동시에 잃고 말았다. 마사무네의 친모였던 요시히메(義姬)가 오른쪽 눈을 잃은 자기 아들을 징그러워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여섯 살 짜리 꼬마애가 한쪽밖에 안 남은 눈으로 뚫어질 듯한 안광을 뿜으며 돌아다니면 좀 징그럽긴 하겠다.
애꾸가 된 어린아이에게 또 다른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아버지 데루무네가 오다 노부나가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는 것 정도겠다. 다테 집안이 사는 오슈는 일본 동북부의 시골이고, 자연히 경제도 낙후되어 있고 신문물의 전래도 늦은 곳, 어떻게는 중앙의 강자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런데 데루무네가 보낸 선물이 꽤나 고마웠던지 노부나가는 그것의 몇 배나 되는 선물을 데루무네에게 보내 주었다. 그 중에는 서양 물건들도 많이 있어서 난생 처음으로 신기한 물건을 본 어린 마사무네는 꽤나 놀랐던 것 같다. 이 때의 경험이 그가 외부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지도 모르나 확실하지 않다.
동북지방의 패자

1582년 다테 집안의 세력(신장의 야망: 천하창세)
마사무네가 이렇게 집안을 일찍 물려받은 것은 아직 한창 나이(41세)였던 아버지 데루무네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데루무네도 능력이 없는 다이묘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한계를 알고 또 아들 마사무네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못한 동북 지방 제패와 중앙 진출의 과업을 아들에게 맞긴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본래 가업은 장자 상속이 원칙이었지만, 난세에는 힘 잡는 자가 우세한 법이다. 그래서 전국시대에는 가문 상속에 있어서 후계자들과 거기에 줄을 선 가신들 사이에서 수많은 싸움판이 벌어졌다. 실제로 당시의 다테 집안(伊達家)은 장남인 마사무네(政宗) 지지파와 아우 치쿠마루(竺丸) 옹립파로 분열되어 있었다.(게다가 치쿠마루는 어머니 요시히메의 사랑을 받고 있어 후계자로서 강력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데루무네가 갑자기 급사라도 한다면? 온 집안이 다 싸움판이 될 것이 뻔했다. 내란이 일어나면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서로 싸우면 가문은 약해진다. 그러면 당장 이웃 영주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전국시대에는 작은 일로 힘이 약해져서 멸망당한 예가 적지 않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고 책임자인 데루무네 스스로가 도장을 찍어 군소리를 없이 해야 하겠다 - 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이렇게 상속 문제를 잠재운 마사무네는 곧 이웃 오오우치(大內), 하타케야마(畑山), 사타케(佐竹), 아시나(蘆名) 등의 이웃과 치열한 패권 싸움에 돌입하게 된다.

일단 아버지에게서 가업을 물려 받으면 경험 적고 나이 어린 것을 만만히 본 이웃들이 싸움을 걸어 오기 마련인데, 마사무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장 이웃의 오오우치 사다쓰나(大內定綱)가 일단 항복했다가 그 이듬해에 말을 뒤집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대노한 마사무네는 이웃들이 자기를 만만히 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사다쓰나의 거성(居城)인 코하마성(小浜城)의 외성에 있던 사람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버린다.(흔히 「撫で斬り」라고 불린다.)
이걸 보고 놀랐는지, 하타케야마 요시쓰구(畑山義繼)가 항복을 청하게 되었다.
문제는 마사무네의 항복 조건이 너무 가혹하고 까다로웠다는 점이다. 마침 아버지 다테 데루무네에게 항복조건에 대해 하소연하러 왔던 요시쓰구는 일이 도저히 안되겠다 싶자 데루무네를 납치해서 도망갔다.

분기탱천한 마사무네는 군사를 이끌고 전쟁을 일으켜 하타케야마(畑山) 집안의 니혼마츠성(二本松城)을 공격하고, 진토리바시(人取橋)에서도 하타케야마 · 아시나 · 소마 · 사타케 연합군과 격돌한다. 그 이후에도 오오슈 전체를 바쁘며 휘몰아 쳐, 마침내 1589년(天正17년) 반다이산(磐梯山)기슭의 스리아게하라(摺上原)에서 아시나 요시히로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준 마사무네는 24살에 오오슈 66개 고을 중 30여 고을을 차지, 일본 동북지방의 패권을 잡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