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8일 오후 3시
영국 윈저
윈저에서 성 못지않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관광 가이드를 해주고 계신 아저씨 한 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분의 입이었다고 해야 할까? 사연은 이렇다.

바로 이 아저씨...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과목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듣기 평가는 악몽이었다. 그런 내가 놀랐던 것은, 그 아저씨의 발음이었다. 또박또박. 어느 발음 하나 흘리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놀랄 정도로 편안했고, 귀에 척척 붙는 느낌이었다.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것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8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낭만적이지 않나요?(Isn't it Romantic?)" 라고 말할 때는 입에서 나지막한 탄식마저 흘러나왔다. 발음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부드럽게 굴러가면서도 천박함 하나 없이 편하게 들리는 발음이 굉장했다.
한국에서 듣기에, 영어는 따로 표준어가 없다고 했다. 런던 말씨면 런던 말씨, 캘리포니아 말씨면 캘리포니아 말씨 하는 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권장되는 발음은 있다고 하는데, 소위 Queen's English, BBC English라 불리는 발음이라고 들었다. 교육을 잘 받은 영국 사람들은 이 발음대로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미국 갑부들이 이 억양을 구사하는 영국인을 비서로 채용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기억이 났다.
설명을 마친 그 가이드 아저씨는 관광객들과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갔다. 동양의 끝에서 온 우리 일행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를 따라갔다. 더 듣고 싶었다. 발음 자체가 아름답고 기품 있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는 매력이 넘쳤다.

계속 설명 중.
저녁에 민박집으로 돌아와서 민박집 형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영국 귀족들은 정확한 발음의 영어를 따로 공부해서 말투만 들어도 신분을 알 수 있다면서요?"
"글쎄요, 아마 그 사람은 심심풀이로 일하는 은퇴한 귀족이거나, 최소 집사 정도는 되었겠죠."
역시 왕궁은 뭘 해도 다르긴 다른 것 같다.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발음 하나하나에까지 신경을 쓰는 걸 보니. 그날 잠자리에 들면서, 나도 저렇게 멋지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말을 하는 것만으로 듣는 이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준다는 건 정말 굉장한 것 같다.

- 여행을 계속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영국의 유적지나 관광 명소에는 인도 같은 데서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 자주 보인다. 대륙과는 달랐다. [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