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MO = RPG?
대항해시대를 하면서 가장 반가웠던 점은 "RPG가 아니다" 라는 점이었다. 요즘은 장르간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져서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또 대항해시대 온라인 역시 광고를 때리는 데 있어서 "해양 RPG 게임"이라고 광고를 때려 대는 걸 보면 "RPG가 아니면 안 해!" 인 게 시장의 인식인 것은 확실한 듯하지만.
...다만 이 RPG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역할 놀이가 아니라, 강력한 감정 이입의 대상으로서의 캐릭터를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 정도겠지. 어쩐지 약간은 미국식 RPG 개념 같기도 하다.
적어도 대항해시대는 디아블로2를 연상시키는 "칼들고 베고 달리고" 스타일의 게임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주 반가웠다. 그런 게임, 너무 많이 해서 이젠 지겹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정말 잘 다듬어진 게임이라고 생각하지만 게임에 대한 패러다임 역시 Hack-And-Slash의 틀을 못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좀 아니었으니까.
처음에 대항해시대를 온라인으로 만든다고 할 때 "그걸 온라인으로 만들 수 있는 겨?" 하고 물었건만, 이제 그런 의구심은 죄다 없어졌고... 앞으로는 이런 류의 "탈 RPG" 이면서도 강력한 몰입감과 감정이입이 가능한 게임들이 좀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MMO 게임이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일종의 고정 관념이 깨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다.
KOEI의 저력을 보여 주는 온라인 게임
역사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게임에 연관된 역사적 지식을 들춰내서 주절주절 떠들다 보면 이런 소리는 자주 듣게 된다:
"그런데 그런 거 없어도 게임 즐길 수 있잖아?"
"그런 복잡한 거에 신경쓰는 사람 너밖에 없어."
"야 고등학교 때까지 국사책 봤으면 됐잖아."
그럼 이렇게 함 물어 볼까.
"그럼 그 복잡한 것도 모르고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이 나오겠냐?"
게임을 하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각 지방의 역사에 대한 치밀한 구성, 당시 세계 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나올 수 없는 시나리오, 몰입감 넘치는 각종 디자인 오브젝트들.
이렇게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화끈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KOEI의 저력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KOEI하면 삼국지밖에 모르지만, 걔네는 역사에 대해서는 잔뼈가 다 굵어진 애들이다. 전국무쌍, 신장의 야망, 태합입지전, 유신의 폭풍, 칭기즈칸, 제독의 침묵 그리고 요새 만들고 있는 인왕(仁王) 등등.
워낙에 그런 게임들을 만들어대다 보니 직원들도 거의 역사에 대해서는 웬만한 전문가 저리가라는 수준이고, 이러한 강력한 기초체력이 대항해시대를 만드는 데 엄청난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건 의심할 나위도 없다.
까놓고 내 생각을 말해 보라면 우리나라에서 대항해시대 디자인을 맡았다면 아이템이고 뭐고 전부 다 리x지를 연상시키는 어설픈 서양 판타지물로 나올 것이 안 봐도 비디오다. 머릿속에 그것밖에 없지 않은가? 사장이 극우파니 뭐니 해도(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진쟈 참배에 쌍수를 들고 좋아하는 인간이다.) 내가 KOEI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지.
틀림없이 대항해시대 게임은 역사적 지식이 없는 사람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제작자가 게이머하고 같은 수준이어서야 그 풍부한 소재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겠나. 게임 콘텐츠란 어떻게 보면 제작자가 새로운 걸 자꾸 꺼내 보여주는 커다란 자루 같은 게 아닐까? 자루가 두툼하면 보는 사람도 기대감을 가지고 즐거워하지만, 자루에 든 밑천이 달랑달랑해서 바닥이 다 보인다면 누가 기대감을 가지고 누가 즐거워하겠나.
그 점에서 KOEI의 자루는 뭐든지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에 좀 더 가깝지 않나 싶다.
Ps>
게임 요소들에 대한 세세한 분석은 일단 시험공부를 좀 한 다음에 해보도록 하지요 ( --)
Ps2>
문제 하나.
런던에서 서양 갑옷이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시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