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런던 여행기(2005.08.09)의 토막글이며, 2005년 북유럽 여행의 일부입니다. 태그를 클릭하시면 전체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5년 8월 9일 [시각 불명]
영국 런던 - 대영박물관
1.
대영박물관은 꽤나 무서운 곳이다. 처음 들어온 관람객은 일단 그 엄청난 소장품의 규모에 놀란다. "이런 것도 있다니!! 정말이지 대영박물관 대단해!!" 문제는 그 감정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 한 시간 정도 관람하고 나면 "와... 정말 많네? 어디가 끝인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슬슬 대충 보기 시작한다. 이윽고 보다 지쳐 무서워지게 되는데, 이쯤 가다 보면 여기가 인간 지성의 보고인지 인간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인지 슬슬 헷갈리게 된다. 호러블.
2.
미라 하면 고대 이집트가 유명하지만, 미라가 고대 이집트에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집트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하고 이어 로마의 속령이 된 후에도 미라 풍습은 계속 이어졌으며 이집트 땅에 자리잡은 외국인들도 이를 따랐다. 3~4세기에 이르면 이집트에도 기독교가 전파되는데, 이 때도 미라의 풍습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최종 처리를 붕대로 감는 대신 옷을 입힌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인 미라 염습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신의 보존이란 사후의 부활을 믿는 기독교적인 신앙과 양립할 수 있는 일면도 있었을 것이다. 애시당초 미라를 만든 이유가 부활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육체가 훼손되면 죽은 자가 부활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이쯤 가면 궁금해진다. 과연, 이것이 우연한 공통점일까?
기독교와 조로아스터 교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비교적 알려져 있다. 조로아스터 교는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sda)로 대표되는 선과 악의 싸움, 최후의 심판을 주 교리로 한다. 그리고 이는 훗날 유대교와 기독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기예수에게 경배했다는 세 명의 동방박사(Magi)도 본래 조로아스터 교의 사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조로아스터 교는 기원전 1800년경 이란 지역에서 창시되어 기원전 5세기에는 그리스 지역까지 퍼진 종교다. 그렇다면 그리스와 이란 사이에 있던 이스라엘 역시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이란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의 문화적 영향 또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고대 지중해 지역은 예로부터 무역을 통한 문화의 전파가 활발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3.
애시당초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한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사막 생활에 지친 그들이 황소 모양의 우상을 만들었다가 모세에게 박살이 났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왜 하필 황소였을까? 이집트 신화의 아피스 신은 황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산의 상징이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한 이들이 이걸 몰랐을까?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오시리스에 대한 신앙은 멀리 프랑스 지역까지 전파됐다. 이스라엘은 예외였을까? 예외가 아니라면, 최후의 심판이라는 교리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예수의 첫 이적은 결혼식에서 물을 와인으로 바꾼 것(요한복음 2:1)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보인다. 시기적으로도 먼저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4.
끝없이 늘어진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기독교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온 것일까. 성당에도 안 나가면서 이런 발칙한 의문까지 품다니, 영세를 주셨던 신부님이나 교리를 가르쳐 주신 수녀님이 들으면 기절하실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궁금한 건 궁금한 것인데.
장 베르쿠테 저 / 송숙자 역,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 시공사, 1997
프랑수아즈 뒤낭 저 / 이종인 역, <미라: 영원으로의 여행>, 시공사, 1996
2005년 8월 9일 [시각 불명]
영국 런던 - 대영박물관
1.
고대 이집트의 벽화. 통채로 벽에 걸려 전시되어 있다.
2.
붕대에 감긴 미라와 관.
이쯤 가면 궁금해진다. 과연, 이것이 우연한 공통점일까?
선왕조 시대(BC3100) 이전에는 사막에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매장했다. 모래가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시신이 양호하게 보존되곤 했다. 이것은 더 잘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했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조로아스터 교는 기원전 1800년경 이란 지역에서 창시되어 기원전 5세기에는 그리스 지역까지 퍼진 종교다. 그렇다면 그리스와 이란 사이에 있던 이스라엘 역시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이란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의 문화적 영향 또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고대 지중해 지역은 예로부터 무역을 통한 문화의 전파가 활발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3.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 죽은 자가 명계를 여행하는 데 대한 안내서 겸 마법 주문 모음집이다. 이 글은 125장이 특히 유명한데, 저승의 왕인 오시리스에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내용이다. 악행이 선행보다 많을 경우, 오시리스 곁의 아미트 여신이 죽은 자를 씹어먹는다.
예수의 첫 이적은 결혼식에서 물을 와인으로 바꾼 것(요한복음 2:1)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보인다. 시기적으로도 먼저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디오니소스를 묘사한 모자이크.
끝없이 늘어진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기독교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온 것일까. 성당에도 안 나가면서 이런 발칙한 의문까지 품다니, 영세를 주셨던 신부님이나 교리를 가르쳐 주신 수녀님이 들으면 기절하실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궁금한 건 궁금한 것인데.
참고문헌
장 베르쿠테 저 / 송숙자 역,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 시공사, 1997
프랑수아즈 뒤낭 저 / 이종인 역, <미라: 영원으로의 여행>, 시공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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