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일본의 창세기

그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도쿠가와 바쿠후를 무너뜨리려는 유신지사들과 지키려는 신선조(新選組신센구미)의 대결이다. 일단 "이야기" 라는 것 자체가 대립이 필수인 만큼,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싸우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손색이 없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 또한 또렷한 개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신선조의 경우는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강렬한 최후를 맞았다. 이 또한 전통 무사 사회의 이상적인 도덕률이었으니, 그 극적인 모습 또한 꽤나 매력적일 법 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이야기가 각종 문화 컨텐츠에서 수도 없이 재탕되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시바 료타로의 <타올라라 검>에서부터 신선조가 잠깐 배경으로 등장하는 만화 <바람의 검심>까지. 수많은 소설, 영화, 만화, 게임이 이들을 소재로 했다. 게다가 이런 류의 작품들은 지금도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으니, 수를 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게다.

유명 만화 <바람의 검심>의 등장 인물로 비교적 잘 알려진 사이토 하지메(齋藤一). 실존인물이며 신선조의 주요 멤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아 훗날 경찰서장직까지 맡았다. <바람의 검심>의 작가 와쯔키 노부히로 또한 신선조의 열렬한 팬이며, 언젠가 신선조를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무사답지 못한 무사
<바람의 검 신선조>는 바로 그 시기를 살아간 한 무사에 대한 이야기다. 요시무라 칸이치로. 영화는 우연히 만난 칸이치로의 제자와 칸이치로의 전우였던 사이토 하지메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 인물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영화는 정 많고 순박한 요시무라 칸이치로(左)와 날카롭고 냉정한 사이토 하지메(右)를 대비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칸이치로는 그야말로 돈에 환장한 인간이다. 신선조 대원을 할복시키다가 칼날이 상했다는 이유로 수고비를 더 받아내는 것 따위는 약과다. 하지메의 살인행위에 대해 입을 다무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항상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신선조가 쇼군과 막부의 인정을 받게 되어도 별 흥미가 없다. 그의 관심은, 그렇게 해서 월급을 얼마 더 받을 수 있느냐는 데 있을 뿐이다. 하지메는 이 인간을 마음속으로 경멸한다.

진정한 무사의 길은 무엇인가
비오는 날 밤, 하지메가 칸이치로에게 묻는다. 무사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단지 죽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살고 있는것 뿐이라는 하지메에게, 칸이치로는 "죽고 싶지 않으니까 사람을 벨 것" 이라고 너무나도 솔직한 답변을 한다.
죽는 것이 싫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대답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무사에게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사도>의 저자 니토베 이나조는 "의무는 태산보다 무겁고,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일본의 무사도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중 하나가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다. 무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의다. 삶에 미련을 남기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신의를 지키지 못하고 구차해지기 쉽다. 일본 문화가 죽음을 미화하는 것에는, 그러한 배경이 있다.


따뜻한, 하지만 불친절한
가슴이 따뜻해지는 좋은 영화지만, 분명한 한계 또한 가진다. 이 영화가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은, 요시무라 칸이치로라는 주인공이 보여 주는 행동 덕분이다.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당시의 사건 전개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이 건너뛸 수밖에 없3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는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영화가 되어버렸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신선조와 유신지사들은 일본의 신화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소재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이게 문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주 극단적으로 평이 갈린다. "계속 사람 죽이다가 가족 사랑 얘기하고 감동을 쥐어짜려 하는 지루한 영화" 아니면 "진짜 감동적인 최고의 영화". 일본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보통 후자의 평을 내놓는다.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이 영화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네이버 영화투표에서 8.2점이라는 후한 점수는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