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필수재료

2005/02/15 14:54
국민은행 전 노조간부 3명 횡령혐의 기소
노조간부가 억대 조합비 횡령, 가정부 고용 등 유용

나의 노동조합에 대한 기억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의도에 있었던 이라크 파병 반대 시위에 나갔던 나는 술에 벌겋게 취해 대열에서 떨어져 나온 전경들에게 주먹질을 하는 민주노총 아저씨들을 보게1 되었다. 이러다보니 시위대의 일은 둘이 되어버렸다. 하나는 파병 결정 표결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회의사당으로 전진하는 것, 또 하나는 이런 개념없는 인간들을 떼내는 것.

이런 경험이 있다보니 은행의 노조간부가 조합비를 횡령했다는 소식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솔직히 노조 간부들이 조합비를 횡령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는 소문은 이전부터 있어 왔고, 실제로 확인된 예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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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활동방향이라는 게 어찌 이다지도 웃겨 보이던지...

이번 주 한겨레21 커버스토리([1], [2])는 대기업 노조에 대한 이야기였다. 얼마 전 터진 기아차 노조의 취업비리2 사건을 소재로 한 기획기사 같은데, 여러 모로 인상깊은 구절이 많다. 일부만 인용한다.

오래전부터 '위기'가 닥쳤지만 노조는 항상 "개인 비리가 터질 때마다 집행부가 사퇴한다면 노조는 회사가 장악하고 말 것" 이라거나 "노조를 회유하고 길들이기 위한 자본의 음모·기획" 이라고 강변하며 사태를 피해가기 바빴다. 비장한 각오와 자기 성찰 대신 회사쪽의 노무 관리에 책임을 돌리면서 조직을 옹호하는 사이에 노동조합운동은 더욱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 부위원장을 지낸 하부영씨는 "국민들이 '이게 아니다'라고 지적할 때도 노동운동이 옛날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 이미 여러 노조에서 부정부패와 타락의 문제가 불거졌으나 노동운동이 미봉책으로 묻어두고 칼을 대지 못했다 ... 노조가 87년 대투쟁 이후 또 다른 권력으로 등장했지만 사회적 책임을 지는 일은 회피해온 것이 사실" 이라고 말했다.
기사의 요점은 대기업 노조는 자기 반성이라는 게 별로 없었다는 얘기 되겠다. 문제가 생기면 회사나 자본가 핑계만 대고 넘어가는 데 바빴지, 자기네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곰곰이 고민해보는 건 대략 생략하고 있는 거다. 휘하에는 왕처럼 조합원들을 거느리고 파업을 두려워하는 회사에서는 각종 특혜를 받아먹으며 지낼 요량이면 그놈의 노동조합이라는 간판은 떼버리고 조폭으로 전업하는 게 더 솔직할 것 같다. 그러면 최소한 도덕적인 의무는 없을 테니까 속은 더 편할지도 모른다.

권력을 가진 곳에는 언제고 비리와 무개념이 꼬일 기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을 탓하기 전에 해야 정말 할 일은 자기성찰이다. 어쩌면 개념의 필수 재료 자체가 자기 반성일지도 모른다.
  1. 이런 인간들을 제외하면 시위현장은 전혀 폭력적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줄다리기를 하는 운동회 분위기가 딱 적당했다. 심지어 점심 먹을 때는 가지고 온 음료수를 전경들과 나눠 마시기도 했다. [Back]
  2. 한겨레 21 기사에 의하면 이번에 비리가 터진 곳은 17대 집행부라고 하는데, 16대 집행부도 비리 때문에 물러났고 17대 집행부 역시 이미 한 번 비리 문제로 불신임 이슈가 있었다고 한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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