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델프트
"야경"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듯이 네덜란드는 16세기 70년에 걸친 독립 전쟁을 치르고서야 비로소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초대 국왕으로 추대되어 이 전쟁을 지휘한 사람이 바로 오렌지 공 빌렘 1세이며, 그가 살면서 전쟁을 지휘한 곳이 바로 델프트입니다. 그는 현 네덜란드 왕가의 시조이기도 하며 오렌지색은 지금 네덜란드의 국색(國色)입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전쟁이었으니 당연히 신교 네덜란드를 이끄는 귀족 빌렘 공은 가톨릭 스페인 그리고 교황령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또 네덜란드 북부 일곱 주는 독립된 주이기 때문에 빌렘을 제거하면 네덜란드 독립군의 단결을 효과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런 모양이니 빌렘을 죽이지 못해 안달을 낸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1582년 주앙이라는 프랑스인이 빌렘 1세 암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칩니다. 암살자가 빌렘의 바로 눈앞에서 권총을 쏴서 수염과 머리카락에 불이 붙을 지경이었고 빌렘은 목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저승 문턱을 왔다갔다했습니다. 다행히도 하인들의 손가락으로 상처를 막는 헌신 끝에 빌렘은 17일만에 다시 살아납니다.
그 뒤로도 빌렘에 대한 암살 공작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583년에는 빌렘을 독살하려던 계획이 (그것도 두 번이나) 발각됩니다. 심지어 빌렘 1세의 같은 고향 사람이 빌렘 1세가 사는 저택을 통채로 폭파시켜 버리려다가[...] 잡히는 사고가 두 번이나 벌어지기까지 합니다.
결국 빌렘을 암살하는 데 성공하는 것은 1584년 발타자르 제라르라는 프랑스인입니다. 그런데, 그 내역이 좀 엽기적입니다.
발타자르 제라르는 아버지가 가톨릭 교도에게 살해당한 신교도로 위장하여 빌렘에게 접근, 성실함으로 신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암살 지령을 받고서도 무기 하나 준비를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참 난감했겠죠.
그러던 어느 날, 사람 좋은 빌렘 공은 돈도 한푼 없어 가난했던 제라르에게 금일봉을 내립니다. 얼씨구나 싶은 제라르는 이 돈으로 빌렘 공의 경호원에게서 권총 두 자루를 샀고,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빌렘 공을 저격했습니다. 빌렘 공은 즉사했습니다. (박물관 계단 옆에 있는 벽에 커다랗게 총탄이 맞은 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언뜻 보면 대포라도 맞은 것 같더군요.)
사람 좋았던 빌렘은 자기가 낸 돈으로 암살을 당한 셈이죠. 제라르에게 권총을 판 경호원은 수치심에 자살했고 뚜껑이 열린 네덜란드 인들은 제라르를 잡아 달궈진 쇠집게로 살을 뜯어내고 결국은 내장을 파내 죽입니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에서는 그를 성자로 추대하고 "가톨릭의 적"이 죽은 것을 기념하여 교회의 종까지 울리게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