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16일 오전 8시
덴마크 - 코펜하겐

프레데릭스하운
아침 여덟시. 우리는 덴마크 북단의 항구도시 프레데릭스하운FrederiksHavn에 도착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어제 아침 이후 제대로 못 먹은 것은 물론이고, 저녁에는 기차 기다리느라 내내 서 있었다. 게다가 편안하지도 않은 자세로 잠을 잤고, 그나마 쪼개서 자야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항구로 향했다. 상황이야 어쨌든, 오늘은 노르웨이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 집으로 비행기는 3일 뒤인 8월 19일 런던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8월 18일 저녁 오슬로 공항에서 런던으로 가는 RyanAir 항공기를 예약해 두었다. 노르웨이로 가지 못하는 사태 -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여행 계획이 망가지는 것 따위는 둘째 문제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국제 미아가 된다.

도착한 우리를 반겨 주는 북유럽 식의 뾰족한 교회탑
오후 한 시, 우리는 배에 올랐다. 새벽부터 애들을 깨우고 표를 사러 돌아다닌 나는 배에 오르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2.

북해를 건너가는 크루저 안.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직 한창 북해를 건너가는 중이었다. 할 일이 없어서, 일행에게 짐을 맡겨 둔 채로 크루저 안을 구경했다. 돈은 없고 물건은 비싸니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배 안에는 이것저것 각종 시설들(식당, 카페 등등...)이 많았다. 재미있었던 건, 크루저 안에 공항처럼 면세점이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잠깐 아이쇼핑을 하고 나오려는데, 장난감 코너에 크루저 회사 로고가 찍혀 있는 레고 트럭이 눈에 띄었다. 레고 사가 다른 기업과 협력해서 홍보용 세트를 내놓는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았지만 저렇게 큰 모델을 팔지는 않는다. 역시 레고의 고향인 덴마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있으면 사왔을 텐데.
아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일행에게 돌아왔다. 우리는 이렇게 상자 안에 재미없게 박혀 있느니 차라리 갑판에 올라가서 바다라도 구경하는 게 낫다는 데 동의했다. 갑판에 올라가니, 우리처럼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무심코 아래 바다를 내려다 봤는데, 에머랄드빛 파도가 보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예쁜 바다는 처음 봤다. 나오길 잘했다 싶었다.


시원하게 바다를 가르며 달려가는 크루저.
오후 다섯 시, 우리는 노르웨이 남부의 항구도시 라르비크Larvik에 도착했다.


우리가 타고 온 크루저.
다행히 조금만 있으면 오슬로로 가는 기차가 있다. 유로 셀렉트 패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르웨이에서도 기차는 모두 무료다. 그것 하나만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역 벤치에 앉아 쉬면서 기차 시간표를 들여다봤다. 오늘 밤까지 오슬로에 가고,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자자. 그러면 내일(8월 17일)은 베르겐과 피요르드를 구경하고 그 다음날(8월 18일) 오슬로를 구경하자. 그날 저녁에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그 다음날에는 런던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자. 어쨌든 보려고 했던 건 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짝 위안이 됐다.

크루저와 같은 큰 배만 있는 게 아니라, 작은 개인 요트들과 어선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오후 다섯시 반. 우리는 오슬로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침도 못 먹고 점심도 배 안에서 부실하게 먹었는지라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예상보다 금액은 크게 깨졌고, 여행자 수표는 한 장밖에 안남았고 게다가 물가도 비싸니 뭐 하나 먹을 수도 없었다. 신용카드 도난 가능성 때문에 여행자 수표를 가져가기로 한 결정(그리고 여행 경비를 빡빡하게 계산한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새롬군이 신용카드를 가져오긴 했는데, 사용 한도가 작아서 마음대로 쓸 수도 없었다.

기차 안에서 찍은 예쁜 집들.
지지리도 궁상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설탕은 탄수화물 덩어리이니 이걸 먹고 에너지를 낸다면 못 버틸 것도 없겠다 싶었다. 사탕 빠는 기분으로 각설탕을 하나씩 입 속에 넣었다. 나름 진수성찬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