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의 전통 문화 중에 다도(茶道)라는 것이 있다. 차를 달이고 대접하고, 마시는 과정의 예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도를 행하는 것을 다회(茶會)라고 한다. 일본 만화를 보다 보면 무사나 검객들이 함께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다실(茶室)이란, 바로 그 다회를 위한 장소를 의미한다. 보통 정원에 연결해서 짓는 경우가 많다. 지난 27일, 도쿄 관광을 시켜주겠다는 도쿄대 학생들을 따라간 우리가 가게 된 하마리큐온시 정원(浜離宮恩賜庭園)도 그런 다실을 가운데 둔 정원 중 하나였다.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면서 정원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다실
입구에서 나눠준 팸플릿을 찬찬히 살펴보던 내 눈이 한 곳에서 멎었다. 팸플릿에는 정원의 약도가 실려 있었다. 거기에 의하면, 정원의 한 구석에는 이 정원에서 벌어진 오리사냥에서 죽어간 오리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곳이 있었다. 이 정원은 본래 도쿠가와 쇼군의 오리사냥 전용 정원(주: 지금처럼 대중들에게 공개된 것은 메이지 이신 이후 덴노天皇의 재산이 되면서부터다.)이었다. 오리 사냥을 하면서 노는 곳이니, 당연히 오리가 많이 죽었을 것이다. 그 오리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충칭 폭격의 희생자들. 1941년 6월. http://en.wikipedia.org/wiki/File:Casualties_of_a_mass_panic_-_Chungking,_China.jpg
종교적인 평온함을 주는 정원. 수천만 명이 죽고 죽이는 전쟁을 결정한 덴노. 그 덴노가 위로하는 오리들의 영혼.
으스스함이 느껴졌다. 마를린 맨슨의 콘서트도 그보다 더 그로테스크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3.

살 흔들어 두 손으로 잡고 조심스럽게 마시는 일본의 녹차. 녹차가 좀 밋밋한 만큼, 떡은 굉장히 달다.
여기에 대해서는, 영국의 평론가 콜린 윌슨(Colin wilson)의 말이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것은 악이 아니라 무관심의 문제다. 대량 학살의 대부분은 희생자를 자신이나 자신의 처자식과는 다른 종으로 생각하는 데서 온다. 고기를 먹고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소나 양고기를 자신의 살로 생각하고 있지 않듯이 말이다."(주: <내전: 인류사의 불행한 동반자>에서 재인용. 월간 Geo 1998년 6월호, pp.41) 사람들은 흔히 문명이 발달한 20세기에 어떻게 그 많은 잔혹 행위가 일어났는지 궁금해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깝다. 발달했기 때문에 더 잔혹해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잔혹이란 대개 직접 하는 것이었다. 그 수단도 신통치 않았다. 가해자는 직접 피해자들을 죽이고 고문해야 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복잡한 사회 구조는 거리낌없이 잔혹을 행하는 유용한 도구다. 중요한 과학 실험이라고 하면서 전기 충격기를 쥐어 줬더니 옆사람이 반 죽을 때까지 충격기를 눌러대더라는 심리학 실험 따위는 농에 불과할 정도다. 스케일도 크다. 발달한 과학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을 효과적으로 살해하고 고문할 수 있다. 직접 손을 놀릴 필요가 없으니 죄책감도 없다.
수백년 전에 죽은 오리떼에게 젯밥을 먹이면서 산과 들에 가득찬 시체들을 외면할 수 있는 대범함이란 여기서 나온다. 감탄스러운 문명의 편리함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그 그로테스크함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다.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솔직히 나도, 거기서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명제는, 자신의 기괴함을 감추고 싶은 인간들의 변명일 뿐이다.
4.
내력이야 어쨌든, 히마리큐온시 정원은 좋은 곳이다. 아직 12월이지만, 따뜻한 일본의 기후 덕분에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 온다. 도쿄대 검도부 친구들이 이 정원을 "일본 전통의 아름다움" 이라고 소개한 것이 이해가 갔다.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어 함께 어울리는 경험은 하기 힘들다.
참고문헌
<일본 다도의 마음>, 센 겐지츠 / 나야 소탄 저, 박전열 역, 월간 다도, 2006




2009/09/16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