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17일 오전 10시
노르웨이 - 베르겐
오전 8시. 우리는 베르겐에 도착했다.

한 폭의 그림 같던 베르겐 시의 뒷산 풍경. 안개가 끼어 있다.
청어와 상인들
우리에게 생선이란 그저 먹을거리의 한 가지에 불과하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육류가 대량 사육/도축 시스템이 갖춰진 현대에 비해, 중세시대에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기는 아주 힘들었다. 그나마 겨울 같은 때만 되면 먹일 건초가 모자라 가축들이 비쩍 마르곤 했기 때문에, 고기는 정말 귀한 음식이었다. 향료에 절인 쇠고기 같은 비싼 음식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가난한 평민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잘 해야 햄, 소시지나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정도였다.
그나마 이것도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중세 유럽은 어디건 할 것 없이 천주교를 믿었는데, 덕분에 육류를 먹을 수 없는 종교적인 단식일이 많았고 또 엄격하게 지켜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말린 생선이나 소금에 절인 생선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식량이었다. 비교적 가격도 싸고, 오랫동안 상하지 않아 부담없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1이었다.

청어. http://www.flickr.com/photos/cv47al/357521017/
이렇게 되면 해상 교역 산업도 덩달아 발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청어를 염장하거나 대구를 말리는 데 필요한 소금 뿐만 아니라, 내장을 빼내고 염장 작업을 수행하는 일꾼들이 먹을 식량이나 맥주 등도 보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리가 끝난 생선을 유럽 시장에 내다 파는 것도 수지 맞는 장사였다.
상업 도시들의 동맹

중세 북유럽에서 주로 쓰였던 선박, Cog. 현대의 복원품이다. http://www.flickr.com/photos/yetdark/3808894679/

지금도 베르겐 항구 앞에는 각종 모피와 해산물을 파는 재래식 장터가 문을 연다.

한자 동맹 박물관Hanseatic Museum에 재현되어 있던 당시의 거래 모습. 마른 대구의 무게를 다는 모습이다. 박물관 전체가 당시의 창고 등을 재현해 놓은 곳인 데다가 설명도 많지 않아 모르는 사람은 별로 볼 것이 없고 심심하다.
이렇게 된 이상 봉건 왕국이나 영주들은 한자 동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동맹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영향력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예를 들어 1471년 전쟁에서 승리한 요크 집안의 에드워드가 잉들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자, 그에게 전쟁 자금을 대 준 한자 동맹은 잉글랜드의 양모 수출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한자 동맹은 발트 해에서 잉글랜드에 이르는 북해의 상업을 거의 독점했다.이들은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서 외국인이 새 배를 사거나 선장으로 취직하는 일, 상품을 선적하는 것을 금지하여 독점 체제를 계속 유지했다.

한자 동맹은 상품들을 처리하기 위해 주요 교역 도시에 상관(商館, Kontor)을 설치했다. 여기에는 상인들이 머물 숙소 뿐만 아니라 상품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도 함께 있었다. 베르겐의 브뤼겐Bryggen은 바로 베르겐에 설치된 한자 동맹의 상관으로, 역시 한자 동맹의 도시였던 브뤼주 시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목조 건물들인 만큼 여러 번의 화재를 겪었지만, 그 때마다 원래 모습 그대로 다시 복구되었다. 아직도 한 지붕 아래 숙소와 창고가 함께 있는 건물 십여 채가 남아 있어 중세의 도시 풍경을 보여 주고 있다(한자 동맹 박물관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선 가게도 여기에 있었다. 비록 생선 가게는 수리중이었지만.).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유는 건물 지을 자리가 모자라서 그렇다고 한다. 1979년 Unesco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Brygge_Norway_2005-08-18.jpg
한자 동맹의 황혼
중세의 산물이었던 한자 동맹은 근세식 절대 왕정 국가가 등장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한자 동맹이 고집하던 교역권 독점이라는 방식은 중세에는 막대한 상업 거래를 가능케 했지만, 국왕이 권력을 장악한 절대 왕정 국가에서 이런 것을 허용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1597년의 런던 상관Steelyard이 폐쇄된 한자 동맹은 1669년의 한자 회의를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동맹의 주요 도시들 중 하나였던 베르겐은 각국의 공예품을 취급하고 선박업 등에도 손을 대 계속 그 번영을 이어나갔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베르겐은 북유럽 최대의 항만 도시였다.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에 단 하나 있던 맥도날드 햄버거집. 피요르드 관광을 떠나기 전 햄버거 하나 사먹었는데, 누가 노르웨이 아니랄까봐 가격이 아주(...).
참고문헌
C. Ernest Fayle, A Short History of the world's shipping industry, Routledge
(김성준 역, <서양 해운사>, 혜안, 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