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트의 효용
요새 온라인게임은 개나 소나 RPG라는 장르명을 들고 나온다. 그러다보니 레벨과 퀘스트의 개념 또한 전투기 슈팅 게임의 총알 쏘는 버튼만큼이나 일반화된 느낌이다. 과거에는 RPG 게임의 전매특허에 가까웠던 요소들이지만, 이제는 슈팅이든 전략이든 퀘스트의 개념이 없는 게임이 더 보기 힘든 것 같다.
인도-유럽을 오가는 도중의 직찍 한 컷.
1. 명시적인 보상
- 퀘스트는 "이것을 하면 이러저러한 보상을 준다" 를 제시한다. 명확한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게이머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 이야기
- 대부분의 퀘스트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 솔직히 말해 안 그런 게 별로 없을 정도.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꽤나 유리해진다. 적절하게 작은 이야기를 끼워 넣으면 게임 속 세계를 훨씬 현실감있게 할 수 있다.
3. 다양한 게임플레이 유도
- 죽어라 몹만 잡던 게이머도 충분히 보상만 주어진다면,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퍼즐을 풀거나 아이템을 찾게 된다. 게임플레이를 그만큼 풍부하게 하기 때문에, 게이머가 지루함을 느끼는 데 걸리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이쯤 되고보면 아무리 뻔한 시스템이라고 해도, 게임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확실하고도 검증된 시스템을 걷어차기가 쉽지 않다. 대항해시대 시리즈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단, 그 형태가 좀 특이하다.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퀘스트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경우, 전통적으로 퀘스트는 단 하나만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이래도 별 문제가 없긴 했다. <대항해시대2>의 경우 조합에서 주는 퀘스트는 별 의미가 없었다. 웬만한 퀘스트로는 천여 닢 정도 버는 게 보통이었다. 게임을 해 본 사람은 알지만, 이걸로는 선원들 밥값도 나오지 않는다. 그 시간에 보물을 찾아다니든 장사를 하든 해적질을 하든, 뭘 해도 퀘스트보다는 낫다. 스토리가 그리 모자란 게임도 아닐 뿐더러 게임플레이가 요구하는 활동이 충분히 다양하기 때문에 딱히 지루하지도 않다. 퀘스트가 있어야 할 필요성이 사실상 0인 셈이었다.
덕분에 <대항해시대2>에서의 퀘스트 기능은 그야말로 별 의미 없는 시스템이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딱 그 정도 수준.
화면 왼쪽에서 아낙네가 걸어가고 있는 건물이 바로 조합 건물인데, 솔직히 들어갈 일이 거의 없었다.(...)
형태는 다르지만 이것이 진짜 퀘스트 노릇을 했다.
<대항해시대4>에 등장한 한양. 갓 쓴 사람이 묘사된 조합 간판이 꽤나 재미있다.
불필요한 유산
지금 유저들은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반쯤 농담삼아 <대인도시대 온라인> 혹은 <대향료시대 온라인> 이라고 부른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붙은 데는 내력이 있다. 유저들이 게임 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인도에서 귀금속·향료를 사다가 유럽에 갖다 파는, 속칭 "인도 노가다" 기 때문이다. 모험가를 하든 군인을 하든, 게임을 하려면 배나 대포 등을 살 돈도 있어야 하고 각종 스킬도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도 노가다" 보다 확실한 것이 없다. 일단 이걸로 돈도 벌고 각종 항해 기술도 어느 정도 갖춘 다음에 생산 기술을 익히든 모험 기술을 올리든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캘리컷에 죽치고 앉아서 보석값 좀 안내려가나1 지켜보는 것이 일이 되었다.
다른 MMO 게임들도 속칭 "레벨업 노가다" 는 있으니까, 여기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아닐지 모른다. 문제는 그 과정이 지나치게 반복적이라는 것이다. 게임이 게임인지라 유럽 - 인도 사이의 항로를 한 번 가려면 족히 1시간 반은 걸린다. 그 과정 또한 꽤 지루하다. 이 정도니 유저들이 떨어져나가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대항해시대 온라인에도 퀘스트 시스템은 있고, 이는 게임플레이를 다양화하는 등 본연의 임무를 수행한다. 인도를 어디든 배를 타고 오가는 도중에 뭔가 색다른 할 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인지는 의심스럽다. 대항해시대 온라인 역시, 이전의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퀘스트를 단 하나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이전 시리즈들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항해 시간이 엄청나게 길다. 이 긴 시간 동안에 퀘스트 한두 개로 유저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한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유럽과 인도를 오가는 도중에 기항하는 항구들은 사실상 정해져 있다. 캘리컷 - 잔지바르 - 케이프타운 - 리스본. 퀘스트들을 바꿔 가며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상은 둘째치고 이걸 해야 좀 덜 지루하다.
어쨌거나,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퀘스트 시스템은 기존 시리즈의 요소 중 별 의미없는 하나를 온라인 게임에 억지로 붙여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패키지 게임 시대의 말도 안되는 유산을 왜 아직도 가지고 있는 걸까. 궁금하다.

-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돈도 많이 벌고 레벨도 많이 올라가니까. [Back]
TAG 대항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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