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날 학교에 가니 과연 총학선거 시즌이다 싶었다. 본래 우리 학교는 연말에 총학생회 선거를 하지만, 작년 총학생회 선거 때 투표자 수가 전 학생수의 50%를 못 채워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됐다. 그래서 재선거가 이번 4월에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학생회관 앞에 총학생회 선거뉴스가 비치되어 있길래 한 부 집어서 찬찬히 읽어봤다. 잘 읽어나가다 마지막 면.. 선거에 대해서 쓴 칼럼이 석 점 실려 있었다. 그런데 얼레? 쥬이쌍스 소속 사람이 쓴 것만 두 개잖아? 학교 내에 모임이 얼마나 많은데 왜 얘네만 두 개야? 어리둥절해졌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 어리둥절함은 분노를 넘어 분기탱천으로 치달았다.
1.
" (선거에 입후보한 다른 선본들의 마초적인 이미지에 대해서 설명한 뒤)...Suprise 선본이 강력한 마초성으로 지난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한 바 있다... 들으려 하지 않는 학우들을 향한 공허한 외침과 이미지 선거가 계속되고 있고, 올해는 이 이미지에 남성성이라는 코드가 추가되었다."
쥬이쌍스의 "타찌" 라는 사람이 쓴 "마초 이미지로 성공하기" 라는 글의 일부다. 원문을 다 읽어 봐도 알겠지만 글쓴이는 여성주의자로서, 밑줄 친 것과 같은 "남성적 이미지를 통해 득표하고자 하는 현실"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그 논리 전개가 참으로 해괴하다. 앞 문단에서는 이번 선거에 나온 세 선본 중 두 선본인 정도선언 선본과 Nu 선본에 대해서는 후보들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남성적인 행동방식이나 말버릇을 근거로 하여 "총학생회 정/부후보들이 남성적 이미지를 통해서 득표하고자 하는 듯하다" 라는 주장을 이끌어 낸다.
그런데 Suprise 선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이러한 근거는 쑥 빠진다. 아무 근거를 얘기하지 않고 곧바로 "마초성으로 지난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했다" 라는, 검증 없는 주장만이 나온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투표는 비밀선거로 치뤄지기 때문에, 누가 어떤 선본에 표를 던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Suprise 선본의 최다 득표 원인은 마초성이다." 라는 주장이 가능한가? Suprise 선본에 표를 던진 학우들을 표본추출해서 표를 던진 이유를 설문조사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 문장이 가진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Suprise 선본은 무산된 지난 선거에서 득표수 1위를 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 문장은 지난 선거에서 Suprise 선본을 지지한
상당수 학우들을 "마초적인 이미지에 혹해서 투표했다"고, 지적 수준을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고보면 오히려 이 글을 쓴 사람의 지적 수준이 의심스럽다.
2.
글쓴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런데 Suprise 선본이 재미있다. 각기 대한민국 해병대 / 육군 만기 전역을 프로필에 당당히 개제하고 출마한 이 후보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비호 하에 쿨하게 자라난 남자 대학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양복 광고를 찍듯 감각적으로 '잘' 찍힌 그들은 지난 11월 선거에서 여성정책에 대한 질문에 '자치단위에 맡겨 두면 될 것'이라는 답을 꺼낸 바 있다. 그들이 펼치고자 하는 '복지'가 어느 범주까지 포함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여성정책에 대해서 그저 자치단위에 맡겨 버리는 그들의 무성의한 태도를 보았을 때 그들이 상정하는 대다수의 학우들의 안에 여학우라는 지위가 얼마나 들어가있는지는 심히 걱정이 된다.
지난해 여성정책이 전무했던 그들은, 이번 재선거에 강의실 언어 성폭력 해결보다는 '생리휴강'이라는 무난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Suprise 선본의 정후보와 부후보는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적인)가부장제의 비호 하에 쿨하게 자라난 남자 대학생의 전형이다.
2. 남성중심적인 이들은 여성정책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히 걱정스럽다.
그러니까, 이 선본의 남성중심적인 후보들 때문에 이들이 당선된다면 앞으로의 학교 안에서 여성에 대한 복지에 심각한 애로사항이 발생할 것이라는 류의 의견전개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 인권위원장 회장을 맡은 바 있고 강남역 찌라시, 노가다, 순두부가게 카운터 등등 온갖 직업을 전전한 정후보나
우유배달을 하면서 뮤지션의 길을 걸어온 부후보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비호" 아래 쿨하게 자라난 남자 대학생의 전형인가? 글쓴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주변에 저렇게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온 남학생이 있는지, 눈을 씻고 찾아보라.
그리고, 막강한 비호를 받고 자라서 저렇게 "막사는" 인생살이를 경험했단 말인가? 이게 과연 정상적인 현실인식 하에서 가능한 판단인가? 이 따위 현실인식을 근거로 글을 쓰는 이유가 뭔가?
"무섭지? 그러니 여학생들은 Suprise에 투표하지 마" 이렇게 은근히 압박주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닌가?
3.
글을 읽고 나서 피식 웃었다.
이런 수준 이하의 글이 선거뉴스에 당당히 실리는 걸 보면 총학생회 선거가 확실히 학우들의 관심을 못 받긴 못 받는 모양이다. 선거뉴스에 관심을 기울인 학우가 많았더라면, 아마 글쓴이는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비에 몸이 남아나질 못했을 것이다.
글쓴 이에게 한마디 하겠다. Suprise 선본이 싫으면 그냥 싫다,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해라.
괜히 선본들의 남성중심적 행동을 비판하는 척하면서 Suprise에 대해서 앞뒤 안맞는 편견 뒤집어씌우기와 인신공격을 하려고 들지 말고. 마음에 안 들면 논리적으로 비판을 하면 될 일이다. 대학생이면 이미 지성인의 범주에 드는 성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