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화감의 정체는 바로 메카닉 - 모빌 슈츠의 모습에 있다. 모빌 슈츠의 모양이 전혀 사람같아 보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조종간이 노출되어 있어 조종사 캐릭터가 훤히 보인다. 디자인으로만 따지고 들자면, 괴작도 이만한 괴작이 없을 듯하다.

제품 사진
서양의 모빌 슈츠 - 과학적 이성에 대한 신뢰
모빌 슈츠는 대개 "거대한 힘의 상징" 으로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어떠한 것을 강하다고 느끼느냐" 라는 점이다. 똑같은 모빌슈츠지만, 이 점에 대해서 동양과 서양은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양에서의 모빌슈츠의 개념은 크게 아래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 자동차처럼 사람이 조종간을 잡고 움직이는 거대한 장치. (ex. 매트릭스의 APU)
- 착용자의 힘을 강화시켜 주는,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처럼 된 장치. (ex. 스타쉽 트루퍼스의 강화복powered suit)

1906년 출판된 <우주 전쟁> 벨기에 어판에 실린 삼족 보행 메카닉의 일러스트.
눈치챘겠지만, 이들은 모두 19세기 말 ~ 20세기 중반의 SF물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시기는 근대 서양에서 발생한 계몽주의적 신념 -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 - 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과학적 이성의 상징이 기계인 만큼 이러한 사조는 기계 문명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미래파 예술 등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서양의 모빌 슈츠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즉, 서양의 모빌 슈츠란 그 개념이 " 과학적 이성의 집적체" 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니 공돌스러운(-_-;) 외모를 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매트릭스의 APU로 대표되는 전자가 흡사 포크레인처럼 "기계스러움" 을 강조한다면, 스타쉽 트루퍼스의 강화복으로 대표되는 후자는 말 그대로 각종 첨단 장치가 부착된 옷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차이 정도가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런 일러스트이다.
<트랜스포머> 처럼 인간형의 로봇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평소에는 자동차 모습을 하고 있다가 변신한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기계 분위기를 많이 풍긴다. 건담처럼 사람이 타는 것이라기보다 자체적인 생명체라는 점은 물론이다.

<매트릭스3(2003)>의 APU.

<스타쉽 트루퍼스>(1997)의 강화복.
일본의 모빌슈츠 - 남성성에 대한 동경
하지만 동양 - 혹은 일본에서의 모빌슈츠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데, 바로 이것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남성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아직 조종간을 통해 움직이는 로봇인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철인 28호>부터 슈퍼 로봇물의 정의를 만든 나가이 고의 <마징가Z>, 아직까지도 관련 상품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기동전사 건담> 까지 대부분의 작품들은 정의와 평화는 싸움을 통해서 지키는 것이라는 강함에 대한 미덕, 혹은 남성 사회의 사고방식2을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모빌 슈츠라는 물건은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성인 남성을 닮아가는 것이 당연3하고 -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최소한 서양의 모빌 슈츠러럼 기어와 피스톤이 삐적삐적 튀어나와서 진짜 기계 냄새를 풍기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우주세기 매니아들은 요즘 나오는 건담들에 대해 "뿔만 달리면 다 건담이냐?" 며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 말은 정곡을 찔렀다. 모르는 사람이 건담을 보면 당장 기억나는 것이 일본 사무라이의 투구를 닮은 뿔이다.(거꾸로 말하면 건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위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사무라이는 일본 문화에서 강한 남성성의 아이콘 비슷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메카물이 강한 남성적 힘에 대한 동경을 담은 이상, 애시당초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사무라이와 건담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지적이 있어 왔고, 아래 사진의 미술 작품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학적 이성과 남성의 신체 사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마징가 Z> 나 <기동전사 건담> 등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로봇" 이란, 다름 아닌 사람 형체를 한 거대한 무언가이다. 그런 우리네에게 엑소포스의 디자인은 기괴해 보일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을 비롯한 서양인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문화적 차이라는 것은 결국 이런 것 아닐까?
ps) 사진을 보다 보니 의외로 간지난다. 특히 부품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자신만의 로봇 메카닉을 만든다던가(이거 아주 중요하다), 테크닉 시리즈의 부품을 적극 활용하여 개조한다면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ps2) 후일담이지만, 엑소포스 시리즈는 27개나 되는 모델이 발매되고 기업 홍보용 세트가 출시되는 등 꽤나 잘 팔렸다. 전체 모델 수가 10개도 안되는 바이킹 시리즈와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이 팔린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