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렇게 게이머의 성취욕을 자극하고, 그 자체로 몰입할 수 있는 게임플레이를 제공하면 끝나는 것일까? 태합5는 닌자나 상인, 대장장이 등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지만 게임플레이의 중심이 되는 무사를 중심으로 보면, 이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 무사가 진급하여 성주가 되고 국주가 되면 전쟁으로 다른 다이묘의 영토를 정복해야 하는데, 이 부분부터 게이머에게 별다른 성취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상점에서 물건을 깎는 데도 값을 흥정할 수 있는 미니게임이 준비되어 있다.
따라서 게이머는 그 많은 성을 계속 깨고, 깨고, 깨고, 또 깨고, 다시 깨고, 일백번 고쳐 깨야 한다. 이 순간부터 성장은 재미가 아니라 고통과 지겨움이 된다. 전투로 성을 빼앗는 것 외에 뭔가 신경을 쓸만한 거리를 만들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제작진의 주의가 미치지 못한 점이 아닌가 싶다.
소재의 원죄
태합입지전이 가진 장점은 곧 단점이기도 하며, 이러한 컨셉의 게임을 제작할 때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을 시사한다. 바로 이 게임의 소재 자체가 원죄인 것이다.

하지만 개울 하나 건너 사는 한국인들조차도 이것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아니, 이 소재가 친숙한 사람은 소수 매니아들을 제외하면,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당연히 게임이 만들어내는 가상 현실에 감정이입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건 단순한 언어의 장벽 그 이상의 것이다. 언어는 번역하면 되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인 Code는 번역이 불가능하다. 게임의 목표 자체가 전국시대를 체험하며 성취감을 만끽하는 것인 만큼 게이머가 체험할 수 있는 현실감이 반토막나는 일본외 시장은 애시당초 무리다.

좋은 반면교사: 미디블 토탈워는 모든 유럽인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성공했다.
암울하게도 이러한 상황은 태합5에 그치지 않는다. 뉴스위크 2004년 10월 13일자에 의하면 최근 북미에서 일본 게임의 판매량과 판매 순위는 바닥을 모르고 급감하고 있다. 98년의 시장점유율 49%가 2004년에는 29%로 곤두박질쳤다. 뉴스가 나온 이후 사태는 오히려 더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왜 발생했을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일본 게임들이 변화하는 게임시장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 원인이 크다고 본다.
최근 게임의 그래픽스 기술은 현란할 정도로 발전했다. 이는 단순히 게이머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로 게임에 있어 게임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토양이 더 중요해졌다는 이야기다. 과거엔 그래픽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 속 세계는 그야말로 추상적인 세계였다.
하지만 이제 게이머들은 그들이 보는 세계와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 미국인들은 더이상 공감하기 힘든 일본식 캐릭터와 일본식 가상경험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소비자 취향도 변했다. 본래 게임 산업은 8세~12세의 아동을 겨냥한, 완구 산업의 일환이었다.(닌텐도도 장난감 회사였다.) 당연히 장난감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스타일의 마리오나 요시 같은 캐릭터는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졌다.
하지만 북미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평균 연령이 33세라는 최근의 통계가 보여 주듯, 과거에 이런 캐릭터가 보여 주던 호소력은 반토막났다. 그 자리는 GTA의 순 미국식 터프가이들이 차지해 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서드 파티에서 압도적으로 밀렸던 xBox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을 잘 파악해 홈그라운드라도 제대로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게다.

탁월한 선택: 닌텐도는 신작에서의 링크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나는 한국 영화산업의 부흥의 원인이 보편적 호소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헐리우드 상업영화 어설프게 흉내내지 않고, 우리가 사는 시대에 우리가 경험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등장하면서 한국 영화는 소위 '떳다'.
우리는 게임에서 뭔가를 경험하기를 원한다. 이 경험에는 게임 디자인뿐만 아니라 외형적인 소재나 즐기는 방법(과금 체계라던지)역시 포함된다.
특히 소재에 대한 제약은 게임 인구가 늘어나면서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 이슬람권 국가에 십자군이 무쌍난무하는 게임을 갖다 팔 수도 없지 않은가. 흡사 드라마 PD나 영화 PD들이 소재를 놓고 끙끙 앓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난 정말 골치아픈 직업을 택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뭐 그래도 좋아서 하는 거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