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日色` 一色… 3.1절이 부끄럽다 [헤럴드경제 2005-02-28 12:32]
이번 삼일절은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결국 또 신문을 보다가 속이 뒤집어지고 말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삼일절이나 광복절과 같은 민감한 때면 으레 등장하는 "요새 젊은것들 대가리 속이 일본넘이 된 넘이 많아서 문제다! 문제야!" 하는 투로 민감한 국민감정을 살살 자극하는 기사다.
그동안 그렇게 많이 써댔으면 이제 슬슬 지겨울 법도 한데, 세상엔 나와는 다른 사람이 많은 모양인지 기사 밑에 이에 얼씨구 절씨구 장단을 맞추는 리플이 잔뜩 달렸다. 분명, 기자들도 이 재미에 이딴 글을 지겹지도 않게 써재끼는 것일 거야.
뭐 일본 상품 화형식을 하던 때에 비해서 국민들의 수준이 훨씬 성숙하긴 했지만.
이 기사가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으시는 분들을 위해서 내가 찬찬히 하나씩 설명을 드리겠다. 왜 이게 웃기는 개소리인지.
서울 명동거리. 젊은이들이 넘친다. 패션만 보면 일본인 관광객과 구별이 어렵다. 노점상인들은 "말투, 행동 등도 일본인 뺨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야 서울 명동거리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라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지만(난 용산에서 논다) 언론에서 맨날 입방아 찧어대는 저놈의 "일본식 패션"은 사실 허구다. 왜냐구?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전에 대량소비사회로 진입한 사회다. 그런 풍족한 사회인 만큼 웬만한 스타일들은 이미 전부 다 일본사회의 방대한 문화적 소비 목록 속에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즉, "일본 사람들이 하는 패션"이라는 건 처음부터 허구의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이제 그만큼 문화적 아이템이 다양해지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 만큼 일단 그전에 보던 것과 다른 스타일의 옷차림이 횡행하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 것을 가지고 "일본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거지다.
굳이 일본식이라고 할 만한 거라면 요새 일본에서 유행하는, 그래서 나도 거리에서 상당히 자주 봤던 고딕식 옷차림 정도일 터인데(일본식인지 독일식인지는 차치하고), 난 어찌된 게 코믹월드 코스프레장이 아닌 이상 고딕식 옷차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나하고 문화적 코드가 비교적 비슷한 사람들이 즐기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무슨 "일본식 패션" 이 거리를 활보한다고?
3ㆍ1운동 86주년이자 광복절 60주년을 맞는 2005년 대한민국 신세대의 현주소다. 젊은이들 사이에 무작정 `일본 따라하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 패션만이 아니다. 일본식으로 `입고` `먹고` `놀고` `생각하자`는 `닛폰 필(Nippon feel)` 현상까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무작정 일본 따라하기가 극에 달한다면 이런 기사가 나올 것도 없지 않을까? 어차피 대세가 되어버린 것이니까. 그리고 절대 다수의 신세대들이 일본을 따라한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증명된 사실, 혹은 추세인가? 정말? 그 많은 신세대들을 다 갖다 확인이라도 했단 말인가?
직장인 양기준(가명ㆍ33) 씨는 월 15만원가량을 일본만화, DVD 등을 구입해 수집하는 데 쓰고 있다. 희귀 만화를 구하려고 일본을 들락거린 것만도 세 차례라고 말한다. 양씨는 "한국 만화나 DVD는 소장가치가 전혀 없어 돈을 쓰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일본판은 정말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죠. 우리나라는 일본의 발끝에도 따라갈 수 없다니까요"라며 일본 문화 찬양에 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열렬히 수집하고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므로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없다. 적어도 그것이 남들에게 폐를 끼치치 않는 이상은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가정한 위에 성립하고 있으며, 이는 각 개인간의 다양함을 존중하며 보호한다는 뜻 또한 가진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웬 잔소리?
혹자는 양씨의 일본 문화 예찬이 문제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오호라,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언제 한국 언론이 한국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클 수 있도록 보태라도 줘 봤나? 만화는 언제고 게임과 함께 "때려죽여야 할 대표적인 유해물" 이었고, 한 신문에는 만화가들의 소중한 작품 발표 공간인 잡지가 폐간되었을 때 청소년 유해 매체가 하나 또 사라졌다면서 경축하는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한국만화가 이만큼 버텨 온 것도 대견한 일이며, 되리어 일본만큼 발전하는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와 같은 것이다.
일본은 만화를 전국민이 사 본다. 헌 만화책을 구하기 위해 내가 북오프라는 헌책방을 들렀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조용히 서서 펼쳐든 각종 만화책에 열중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이었다. 만화 잡지는 지하철 개찰구 앞 가판대, 편의점에 항상 수북이 쌓여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가고 즐거워했다. 일본 만화는 이러한 사랑을 받아 커왔고 또 발전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전세계에서 인정받은 일본만화나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도 열광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하지만 언제 한국 언론이 대여점 때문에 만화 사보는 사람이 없어 죽겠다는 만화가들의 절규에 귀 한번 기울어 봤나. 영등위의 고무줄 잣대, 어거지 심사에 비판 한 번 제대로 해 봤나. 애니메이션 역시, 다 완성된 한국 애니메이션들이 수익성이 없다는 극장주들의 편견으로 상영관에 못 걸릴 때 정부에 애니메이션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해 봤나? 대체 기자들 당신들이 한 게 뭔데? 정치인들하고 어깨동무하고 술 처마신 거?
(물론 나 역시 대여점 건에 대해서 절대 깨끗한 편이 아니다. 그래도 많이 사려고 노력해서 책장 한 칸 정도는 꽉 채운다.)
최근엔 서울 강남 유흥가 일대에서 남성 전용 `이메쿠라(イメクラㆍ이미지클럽)`까지 암암리에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메쿠라는 1980년대 초반 일본 도쿄 유흥가를 중심으로 생겨난 성매매 형태의 하나. 손님인 남성이 지하철 안, 고등학교 교실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각종 변태 성행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중 가장 인기가 높은 상황 설정은 지하철이나 비행기에서 성추행범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직장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인데 강남에서 운영 중인 A이메쿠라 측의 설명에 따르면 지하철에서는 승객과 비행기에서는 미모의 스튜디어스(?)와 미묘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직장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것이 이 기자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가보다. 섹스와 성적 판타지는 떼서 생각할 수 없는 것, 성에 비교적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그리고 장사에 능한) 일본인들이 먼저 상품화했을 뿐이다. 돈이면 못 사는 것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섹스 판타지를 사고파는 것이 그렇게 죄가 되나? 아주 전국민 머리 깎이고 수도 시키시지 그래?
이 외에도 고스프레(costume playㆍ만화영화의 주인공 의상을 실제로 만들어 입는 놀이), J-POP(일본 록음악), 아니메(animationㆍ일본 만화영화) 등에 대한 국내 토종 `오타쿠`(단순히 마니아를 넘어 폐쇄적이고 전문적인 집단을 일컫는 말)족의 세(勢)가 넓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독도 등 민족 문제와 관련한 일본발 망언에 대해선 별 반응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일본에 10년은 뒤진다"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나" 등 자조 섞인 일본 찬양가가 젊은이들 사이를 떠돌고 있다.
드디어 본좌에 대한 공격이 나오고 말았다.(안 나오면 섭하지.. 응?) 자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코스프레, J-POP, 아니메 등에 대한 국내 토종 `오타쿠`족의 세(勢)가 넓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코스프레에 대해서 말하자면(용어 이름도 틀렸다.), 아니메에 열광한 미국인들이나 유럽인들도 많이 즐기는 문화다. 세일러문을 코스프레한 유럽의 미소녀 사진이나 자프트 군복을 입은 미국 청년(정말 잘 어울렸다.)의 사진이 그리 보기 힘들지만은 않다. 한국만 그렇다고? 모르면 나대지나 마라.
일본의 음악적 다양성을 고려해서 볼 때 J-POP이 일본 록음악이라는 것은 역시 억지에 불과하며, 한국 음악에 없는 그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나 역시 크라잉넛이 군대가자 좀 더 신나는 음악을 찾다가 포르노 그라비티나 High and Might Color를 즐기게 됐고, xJapan의 음반을 듣게 됐고, 독특한 창법에 끌려 Angela의 팬이 됐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책임은(그런 게 있다면)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맨날 거기서 거기인 붕어들 음반만 내대는 대책 없는 음반사들에게 하는 게 옳다. 소비자들에게 원하는 걸 주라구. 싫으면 우린 국경을 넘어서라도 갖고 싶은 걸 가지고 말 테니까.
오타쿠에 대한 쓸데없는 증오감이나 얼빵한 정의 역시 눈에 걸린다. 오타쿠라는 집단이 탄생한 진원지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그 근원지가 맞지만, 취향에 따라 오타쿠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 오타쿠도 있고, 역사 오타쿠도 있다. 즉, "오타쿠 = 일본문화"라는 등호는 성립하지 않는다.
설령 성립한다 한들, 그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건 개인 취향이고, 그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음, "반면 독도 등 민족 문제와 관련한 일본발 망언에 대해선 별 반응이 없다." 저런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죄다 친일파 찌꺼기쯤으로 몰아붙이려는 의도가 다분히 배어 있는 문장이다. 이보쇼, 기자 당신이 그걸 다 확인했소? 대체 어디서 저런 결론이 나왔는지 난 정말이지 알고 싶소. 당신이 보기엔 "일본식 문화를 즐기는 것 = 나라 팔아먹는 것" 이란 말이지? 아주 상투틀고 살라고 하지?
마지막. "오히려 "우리는 일본에 10년은 뒤진다"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나" 등 자조 섞인 일본 찬양가가 젊은이들 사이를 떠돌고 있다."
객관적인 수치로 봐서 한국하고 일본의 차이는 독일하고 헝가리간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돈 벌려면, 앞으로 한국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려면 일본에 대한 지식이 필수인 것이다. 우린 아직도 일본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워야 한다. 내가 일본에서 나온 PS2 게임을 분석하면서 관찰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우리를 강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곧 자조 섞인 일본 찬양가라고? 그럼 구한말의 개화 노력 역시 자조 섞인 외세 찬양가란 말인가? 그래서 구식 대포 가지고 서양 전함 앞에서 개기다가 박살이 났구나? 표주박으로 벼락 막기 놀이는 제발 혼자서만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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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결론은 이거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고통을 받은 한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일본의 문화, 일본의 생활 방식은 배척되어야 한다" 농담을 해도 너무 진지하게 한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일본 극우파는 한 덩어리로 묶어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지만 일본의 대중문화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다. 되리어 이러한 눈가림 때문에 일본 대중문화의 일각에서 나타나는 극우주의를 못 알아봐서 정작 미우라 켄타로 등의 일본 극우주의 만화는 한국에 정식 번역됐다. 코미디를 해라 코미디를...
한 술 더 떠서 코미디같은 것은 이런 기사에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고민은 코빼기도 뵈지 않는다는 거다. 국민 감정 자극하기용 기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 신문사, 정말이지 좋은 직장 아닌가? 대책 없는 헛소리나 찍찍 써재껴도 월급 나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