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모르면 중간이나 가던가

[한겨레 21]’아나운서 비키니’ 가 진보일까

1.

인터넷에서 뉴스 리플들을 보다 보면 실성한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게 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건만 오늘은 정말 제대로 웃었습니다.

요새 아나운서들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까 Tv라고는 보는 일이 없는 저도 아나운서 이름 정도는 듣게 되는데 이번엔 <한겨레21>이 성경환 MBC 아나운서 국장을 인터뷰한 모양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부연 설명하자면 이 사람은 SBS ‘생방송 모닝 와이드’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김주희 아나운서(26)의 미스 유니버스 참가 문제가 불거지자 미디어 오늘과 인터뷰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로서 선정적인 장면이 예상되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나가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한다. 뉴스의 신뢰성과 앵커의 선정성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 의사를 밝힌 사람입니다. 뭐 이쯤 되면 이름은 기억 안나시더라도 누구인지는 기억나실 거에요.

바로 그 김주희 아나운서. 난 시원시원해 보이는 인상이 그저 예쁘기만 하던데…

“벗으니깐 좋던데” 하는 식의 성적인 리플들이나 기사도 제대로 이해 못한 또라이틱한 반응들은 제쳐두고 나머지 리플들을 찬찬히 읽어보자면, 배꼽잡고 웃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겁니다: 보수와 진보의 의미 자체를 잘 모르고 있다는 거죠.

2.

보통 보수(conservatism)를 오래된 것, 진보(progressivism)를 새로운 것으로 해석하는데, 물론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한때는 나치즘도 진보적인 사상으로 취급된 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봅시다: 보수주의는 대체 뭘 보존(conservate)하겠다는 걸까요? 살짝 거칠게 말하자면 바로 자유 경쟁과 시장경제입니다. 이들은 개인의 자기 결정과 그 책임능력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즉, 보수주의의 특징은 바로 개인의 자기 결정을 강조한다는 것이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니 당연히 정부 기관은 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수주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개인의 행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보수주의자 집단인 공화당은 총기 소지를 개인의 자유라고 주장하여 옹호합니다. 총기를 가지고 사고를 치면 법적인 책임을 물면 된다는 식입니다. 개인적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죠.

경제적 문제에 있어서도 시장의 기능에 문제의 해결을 맡깁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강자인 기업주들이 이걸 좋아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회사에 인력이 좀 많다 싶으면 “기업주의 자유에 따라” 해고해 버려도 별 탈 없거든요.

반대로 진보주의는 사회의 안전과 질서, 약자에 대한 보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진보주의자는 이놈이고 저놈이고 돈에 눈이 벌개지는 시장주의와 경쟁중시는 인간성을 파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법적인 수단을 통해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약자를 보호해야 하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미국의 진보주의자 집단인 민주당은 총기 소지를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전 인구를 무장시키고도 남을 총이 거리에 굴러다니니 이 총이 밀매되어 범죄에 사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희생자는 저소득층 백인이나 흑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라는 판단 때문이죠.

경제적 문제에서도 시장의 기능을 신뢰하지 않고 약자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자연히 기업주는 싫어하겠지만 노동자들은 환영하겠죠.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게 할 테니까요.

일단 두 사상 사이의 원론적인 차이점을 설명했는데, 실제 현실에 있어서의 두 사상은 굉장히 따지기가 복잡한 문제입니다. 두 사상 모두 뿌리박은 사회적 현실이나 역사에 깊숙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요즘과 같이 복잡해진 사회에서는 단순히 칼로 무썰듯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낙태나 동성애자 결혼 등의 문제는 틀림없이 개인의 결정권에 속하는 문제인데도 미국 공화당은 이것을 반대합니다. 왜? 이건 기독교 정신을 중요시하는 미국 보수주의의 특징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낙태는 살인이요, 동성애는 사탄의 행위거든요. 반대로 민주당은 낙태의 권리를 옹호하고, 동성애자나 이민자 등에게 호의적입니다. 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라는 판단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사형제에 대한 찬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찬반, 통일 문제에 대한 생각 등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형제를 반대하거나 양심적 병역 거부를 옹호하거나,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은 진보적인 사람이겠지요. 반대의 경우는 보수적인 성향이 짙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3.

미인대회 문제에 대해서도 보수와 진보는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자신의 능력 – 육체적 매력 – 으로 돈을 버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보적 시각에서는 미인대회란 결국 인간을 상품화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이렇게 놓고 인터뷰를 보니 성경환 국장은 진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가 대중 앞에 비키니 입고 나서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보이고 있을 뿐, 미인 대회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은 안 보이거든요.

기사 밑에 붙은 “민주화가 곧 진보” “보수는 낡은 것, 나쁜 거고 진보는 새로운 것이니 좋은 것” “별 시답잖은 것에 진보란 말 쓰네” 라는 사람 등 별 희한한 해석들을 다 보다보니 하도 허탈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허헛.

  • 칼로 무썰듯 쉽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서 좀 거칠게 옮겼습니다. 그러니 속칭 먹물 좀 묻으신 분들은 생략이 많은 걸 이해해 주시고 좀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길 ^^

좌파와 우파의 개념과 그 기원(네이버 오픈백과)